"장애인에게 물었다" 전장연 13주년 기념식에 가보니…
"장애인에게 물었다" 전장연 13주년 기념식에 가보니…
  • 박예지 기자, 박지원 기자
  • 승인 2020.10.26 18:1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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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서부터 기어다니느라 무릎이 다 까졌어요"… 휠체어 타고 생활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 임대주택'
중증VS경증 싸움 붙이는 新장애등급제… "활동지원 시간 깎일까봐 종합조사 받기 무서워요"
CRPD 위반하는 중증장애인 최저시급 예외조항… 선택의정서 비준 꼭 필요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인권운동을 시작한 지 13주년을 맞아 지난 23일 마로니에 공원에서 축제를 열었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예지, 박지원 기자] = 지난 23일 볕이 좋았던 오후, 마로니에 공원을 찾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가 장애인 차별에 맞서 굳센 발걸음을 내딛은 지 13주년을 맞아 축제를 벌이는 날이었다. 올해 주제는 장애인탈시설지원법제정이다. 전장연과 뜻을 함께하는 노들장애인야학 등 8개 단체의 부스가 마로니에 공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혜화역 2번 출구에서 엘리베이터 점검 표지판에 마주쳐 한숨을 쉬던 전동휠체어 이용자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다른 승강기를 찾아 돌아서던 그를 뒤돌아보며 계단을 오를 수 밖에 없었던 순간. 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분명 그처럼 힘든 걸음을 했을 이들이 광장 여기저기를 지나고 있었다. 그들이 불편을 겪는 순간이 비단 점검 중인 엘리베이터 때문만은 아닐 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휠체어가 가득한 한 부스 안으로 들어섰다.

자립생활을 시작한 지 2달이 되었다는 노들야학 조창길 학생회장. 중증장애인 우선입주제도를 이용해 내 집을 마련했지만 편의시설이 전혀 없어 바닥을 기어다니며 생활해야 한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소셜포커스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노들야학 조창길 학생회장이다. 뇌병변 장애를 갖고 있는 그는 자립생활을 시작한 지 막 2달이 됐다고 한다. 중증장애인 우선입주 청약에 당첨돼 LH주공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러나 내집마련의 행복도 잠시, 장애인 편의시설 하나 없는 좁은 집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며 토로했다.

"중증장애인 우선입주 제도가 있으면 장애인이 사랍답게 살만한 집을 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 집에서는 휠체어를 타고 생활할 수가 없어요. 현관 폭은 전동휠체어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고, 현관 턱 때문에 휠체어서 내려서 기어 들어가야해요. 화장실 쓸 때도 마찬가지예요. 기어다니느라 무릎이 다 까졌어요. 편의시설을 설치하려면 직접 물어물어서 자비로 설치해야 하거든요. 지금 어느 센터에 물어봐놓기는 했는데 그마저도 언제 설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줄어들까 장애인서비스종합조사를 다시 받기 두렵다던 중증지체장애인 이수미 활동가. ⓒ소셜포커스

자립생활을 하는 데에 충분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수미 활동가도 마찬가지였다. 중증 지체장애인인 그녀는 활동보조 시간이 깎일까봐 서비스종합조사를 갱신하지 않았다. 그녀는 월 500시간의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고 있지만, 이조차 24시간을 보조 받기에는 역부족이다.

"월 500시간이라고 해도 밤에는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더 늘리고 싶어도 종합조사를 다시 받으면 원래보다 더 낮게 나올까봐 겁나서 못해요. 중증장애인 중에 그런 분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예산 책정하면서 중증장애인 예산을 깎아서 경증장애인에게 더 준다고 하는데... 이게 참 그래요. 경증, 중증을 떠나서 서로 어렵게 살아간다는 것 장애인들끼리 더 잘 알거든요. 그런데 경증, 중증 나눠서 장애인들끼리 싸우게끔 만드는 것 같아요."

장애등급제가 폐지된 지 1년하고도 3개월이 지났지만 그녀에게 피부로 와닿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 현실일 뿐이었다.

ⓒ소셜포커스

"원래 장애등급제 폐지 운동의 요지는 '개인별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제공해 달라는 뜻이었거든요. 많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많이, 적게 필요한 사람에게는 적게요. 그런데 말만 경증, 중증 나눠놓아서 참 애매해졌어요. 중증장애인들은 더 살기 어려워졌죠. 또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만든다더니 내년 예산도 없앤다고 들었어요. 그럴 거면 애초에 하지를 말지! 대책없이 안 된다고만 하면... 정부는 탁상공론만 하지, 장애인 입장을 전혀 생각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녀의 아쉬움을 잔뜩 받아적은 뒤 부스를 떠났다. 야외 공연장에는 노래자랑이 한창이었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노랫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귀를 기울인 누군가에게 다가섰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활동가 곽남희 씨다. 시각장애인인 그도 이 곳까지 걸음하기가 녹록지 않았던 것은 휠체어 이용자들과 마찬가지였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활동가 곽남희 씨(시각장애인). ⓒ소셜포커스

"여기까지 오기가 쉽지 않죠.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를 잡아타는 것부터 어려워요. 버스정류장에 점자 안내나 촉지도가 있는 곳이 없어요. 음성안내기도 없구요. 카드단말기 위치는 버스마다 다 달라서 카드 찍기도 불편해요."

노래자랑 예선에서 추가열의 소풍 같은 인생을 부르고 탈락했다는 남희 씨와의 대화를 마치고 잠시 광장을 둘러보았다. 유난히 붐비는 부스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발달장애인들이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나눠주고 있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금세 차가워진 바람에 커피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던 것이다. 커피값은 서명 한 번.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을 촉구하는 서명 운동이었다.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식구들은 장애인 노동권 보장을 위해 CRPD 선택의정서 비준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소셜포커스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팀 김소영 사회복지사는 장애인 노동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 선택의정서 비준이 아주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부와 의회를 대신해 그 중요성을 알리고자 광장 한 켠을 차지했다고.

"지금 우리나라 중증장애인 노동자들은 최저시급도 못 받고 일하고 있어요. 2018년 기준으로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받는 장애인이 9천4백13명이나 돼요. 장애인 고용률 자체도 낮은데 중증장애인들은 최저임금도 못 받으니 장애인 자립 문제가 해결될 수가 없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선택의정서 비준이 굉장히 중요해요. 정부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지키지 않아 장애인의 권리가 침해받고 있는데도, 국내에서 해결이 불가능한 상태잖아요? 국제기구에 이 문제를 알리고 조치를 내려달라고 요구할 필요가 있는 거죠."

그녀는 이 이야기가 기사에 실리는지 재차 물으며 안내책자 2부를 손에 꼭 쥐어줬다. 사진 요청을 꺼리지도 않고 주변 사람들을 모아 단체사진 대형까지 스스로 잡아주었다. 문제를 알리고자 하는 열정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몇 걸음을 옮기자 이음센터의 긴 부스 한 쪽에서 익숙한 이들을 만났다. 이음자립센터의 꿈틀이 공작소 작가들이다. 기사를 통해 만났던 그들에게 인사하자 직접 만든 선물을 잔뜩 쥐어주며 반가움을 표시해왔다. 그 중 기사에서는 보지 못했던, 휠체어를 탄 노년의 신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장애인경영인협회 서정호 회장이었다. 선택의정서 비준이 21대 국회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견을 묻자 서 회장은 너털웃음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장애인경영인협회 서정호 회장. ⓒ소셜포커스

"선택의정서 문제 뿐만이 아니에요. 여, 야당 정치싸움 때문에 장애인 정책은 언제나 뒤로 밀리기만 해왔거든요. 같은 법안이 몇 년이나 폐기 되고, 또 폐기 되는 걸 다들 너무 많이 봤잖아요. 장애당사자 국회의원이 몇 명이나 배출되느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쟁을 중화할 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국민의당 당원으로 가입한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마지막까지 정중했던 노년의 신사. 그가 수십 년간 걸었을 기대와 느꼈던 회의감의 크기를 감히 가늠해보며 고개를 숙였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카메라를 정리하던 중, 멀끔한 골든리트리버 한 마리가 시선을 빼앗았다. 눈길을 못 떼고 웃음을 감추지 못하자 주인이 "만져보셔도 돼요"하며 인사를 허락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인자해보이는 그는 축제참여단체 중 후원하고 있는 곳이 있어 찾아왔다는 박상훈 신부다. 사회의 각종 차별 문제에 관심이 많아 올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연대 회의에도 참석했다고 한다. 비장애인으로서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이 무엇이냐 묻자 그는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라고 답했다.

박상훈 신부. ⓒ소셜포커스

"장애인식개선 교육도 부족한 실정이 안타까워요. 사실 장애는 가치판단의 대상도, 차별의 대상도 될 수 없는데 우리 사회는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 자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장애인권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도 완벽하다고 할 수 없을테지만, 최소한 따라가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본격적인 행사 전 종로노들 동네노래자랑과 장애여성공감의 공연이 열렸다. ⓒ소셜포커스

유난히 좋았던 날씨. 맥주에 음악과 웃음을 곁들이던 사람들의 여유로운 모습. 그 아름다운 풍경을 비집고 개개인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불편을 살펴볼 수 있었다. 우리 정부가 해야할 일이 이런 일이 아닐까? 잠시라도 내어 탁자를 떠나 당사자 개개인을 만나보는 일 말이다. 부디 내년 이 자리에서는 "살만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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찡. 2020-10-26 22:27:48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시설의 갖춤이 시급해보입니다. 힘내세요 ㅠㅠ 응원하겠습니다!

유*정 2020-10-27 08:48:59
중증장애인 우선입주 청약권이 있는 LH주공아파트인데 장애인을 위한 기본적인 배려조차 없는 구조라니.. 참 아이러니 하네요. 이런 불편함이 있는줄 몰랐습니다 반드시 개선되야할 문제네요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