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 김광환 중앙회장
  • 승인 2020.10.27 09: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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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참된 지도자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사회 지도층이 자신의 신분에 상응하는 높은 도덕적 의무를 감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구 선진국 사회를 들여다보면 달리 선진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유력한 가문이나 지도층 인사가 솔선수범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은 봉사와 희생을 명예롭게 여기는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자신이나 가문의 명예를 위해 높은 도덕성을 유지하려 애쓴다. 부유한 사람은 자신의 재산을 사회 공익을 위해 기꺼이 내어 놓는다. 자녀들에게도 많은 재산을 물려주려 하지 않고 스스로 노력하여 성공하도록 가르친다.

그런데 살다보면 가까이 하기도 어렵고 멀리 하기도 어려운 사람이 있다. 바로 한자성어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다. 특히 이웃집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런 상태가 되면 괴로움이 가중되거나 늘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니 피곤한 일이다.

개인의 삶뿐만이 아니다. 나라와 나라의 사이에도 ‘불가근불가원’의 긴장관계가 형성된다. 특히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웃 나라와의 관계가 그렇다.

국가의 특징을 일부러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해를 위해 간단히 정의해보면 한 국가의 구성은 소통할 수 있는 단일 언어로 뭉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사회 구성원이 문화 전통이나 이념 및 가치관을 공유한다. 우선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면 소통에 어려움이 있음으로 이질감이 가중될 것이다. 생활하는 방식이나 문화적인 가치관이 달라도 서로 동화할 수 없게 된다.

같은 언어권에 살고 있다 해도 지역 고유의 억양 즉, 사투리가 있다. 사투리가 달라서 지역감정이 촉발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언어가 다른 이웃 나라와의 관계는 오죽할까. 국가는 이웃 나라가 강성해지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주적관계는 멀리 있는 강대국이 아니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인접국끼리 형성되는 것이다. 특히 이웃 나라가 군비를 증강하면 더욱 경계해야 한다.

따라서 국제관계는 늘 소리 없는 전쟁터요, 약육강식의 정글지대와 같다. 어제의 적이 오늘은 친구가 되기도 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은 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 때문에 국가는 늘 전쟁을 대비하여 군대를 조직하고 운용한다. 국가가 하는 일은 항상 전쟁을 하는 것이다.

국가 간의 선린관계에서도 전쟁은 계속 이어진다. 일예로 스포츠 경기에서도 전쟁 용어가 사용된다. 바로 대항전의 전(戰)자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흔히 무역 전쟁이라는 낱말도 일상적인 것이지만, 외교전(外交戰)은 소리 없는 전쟁으로 비유된다. 총탄이 빗발치고 여기저기서 포탄이 폭발하는 것만이 전쟁은 아닌 것이다. 이렇게 물리력이 동원되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다. 만일 무력 충돌이 불가피해서 전쟁이 시작될 경우 만일 패하게 되면 나라를 잃을 수 있다.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최후의 수단으로 전쟁을 치르게 될 경우 군인은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희생해야 한다. 특히 신체 건강이 왕성한 시기의 청장년들이 실전에 투입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모든 국민이 국방의무를 수행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소모하면서도 이를 아깝게 여기지 않는 것은 국민 모두의 생명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堡壘)인 까닭이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공평한 국방의무를 감당해야 함은 당연하다. 이를 회피하거나 특별한 예외 적용을 받은 사람에 대해서 분노하는 까닭은 다른데 있지 않다. 누구나 한번은 국가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본인일 수 있고 자식일 수 있으며 가족 중 하나는 반드시 치러야 할 신성한 과정이다.

우리의 우방국인 미국은 수많은 인종이 섞인 다민족 국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역사가 짧은 나라이지만 최근 100년의 흐름 속에서 세상 중심에 우뚝 서 있다.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유지하며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그렇지만 대표적인 특징을 꼽으라면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군인의 명예를 가장 높이 예우한다는 것이다. 미국 국민은 일반 병사와 장교를 구분하지 않는 공평한 예우와 존경을 보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를 살펴보자. 천안함 피격사건은 매우 가슴 아픈 기억인데 이념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며 관점이 엇갈리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생존 장병의 명예를 지켜주지 않는 모습은 통탄스러운 것이다.

“군대에서 푹 썩고 돌아온다”고 표현했던 어느 통수권자의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국가 존립의 보루가 되는 국방의무를 이렇게 폄하하면서 어떻게 국군을 지휘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아직도 의문이다.

요즘 자기 자식만큼은 특별히 소중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 지도층 인사들의 행태가 마음을 몹시 불편하게 한다. 염치를 모르는 이들의 뻔뻔스러움이 사회 구성원의 마음에 극심한 반감을 심어주고 있음을 깨닫기나 할까?

정치인은 국민의 신뢰가 있어야 하고, 사회지도층은 그 삶이 깨끗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이 어쩔 수 없이 그 존재를 곁에 둘 수밖에 없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관계는 정말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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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2020-10-27 11:39:42
우리네 회장님 좋은글 감사합니다. 우리 장애인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 노력하시는 모습이 너무 보기에도 좋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과 행운이 충만한 나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