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피해 장애인도 자립할 수 있을까?
학대 피해 장애인도 자립할 수 있을까?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0.11.04 16: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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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학대피해장애인 지역사회 통합지원을 위한 실천연구대회 3일 개최
자립지원 대응책 촘촘히 마련해야… 종사자 위한 쉼터 운영매뉴얼도 발행
개개인에게 적합한 지원 필요해… ICF, OTIPM 등 국제지표 적용 시도
복지부 "탈시설로드맵 올해 말 나온다… 의원들, 예산 위해 동분서주 중"
학대피해장애인의 자립지원대책 논의를 위한 '2020년 학대피해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지원을 위한 실천연구대회'가 3일 오후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출처=유튜브 생중계 캡쳐)

[소셜포커스 박예지 기자] =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는 학대 피해 장애인의 자립 지원 대책에 대해 논의하고자 '2020년 학대피해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지원을 위한 실천연구대회'를 3일 오후 이룸센터에서 개최했다.

연구소는 지난 2016년부터 5년간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를 운영해왔다. 그간 실무자들은 장애인권익옹호기관과 학대피해장애인쉼터의 역할을 분명히 정의하고, 피해장애인의 지역사회 정착을 당사자 의사를 중심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연구를 진행해왔다.

이날 연구소는 5년간의 연구 결과의 산물인 학대피해장애인쉼터 운영 매뉴얼을 발표하고, 여러가지 한계에 대한 대응책을 함께 논의했다. 대회는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실시간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송출됐다.


■ 피해당사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해야 적절한 지원 할 수 있어

연구진은 피해장애인에게 필요한 지원을 보다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ICF(국제기능장애건강분류)와 OTIPM(작업치료중재과정모델)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ICF란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건강판단지표다. 한 사람의 건강을 평가할 때 장애, 신체적 손상, 생활참여, 사회참여 등등 다양한 촉진요인과 방해요인을 고려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 기술을 통해 개인의 심리까지 반영한다.

OTIPM은 작업치료를 받는 당사자에게 적절한 치료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개발된 모델이다. 

지석연 시소감각통합상담연구소장은 "작업치료도 이 치료가 적절한지, 목적이 있고 의미가 있는지 당사자가 자각하지 않으면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학대피해장애인이 대부분 발달장애인인 것을 생각하면, 이런 부분을 더 촘촘하게 마련해야할 것"이라며 "이번 연구에서는 피해장애인 지원체계단계에 ICF와 OTIPM을 적용해보았다"고 발표했다.

(출처=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피해장애인지원센터가 제시한 학대피해장애인지원체계는 총 5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피해장애인의 지역사회 정착에 초점을 둔 단계는 3, 4단계다. 피해회복지원과 자립준비를 지원하는 이 과정에서 개인의 필요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지원한다면 더욱 자립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석연 소장은 "학대를 경험한 장애인에게는 다른 장애인보다 가중된 어려움이 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개인을 연구해서 피해장애인 지원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단순히 피해자를 분리,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상황과 요구에 맞게 지원계획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복실 서울특별시발달장애인지원센터장은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유의미하다. 그러나 실제로 이 결과를 현장에 적용하기에 어려움이 없는지, 종사자들이 이 지표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지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을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 쉼터, 재정 부족으로 운영 열악…  합리적 예산 반영 없이는 개선 불가능해

현재 운영되고 있는 학대피해장애인쉼터는 전국 14개소다. 경기도에만 2개소가 운영되고 있고, 올해 말까지 경남과 세종, 인천에 새로 3군데가 개소하면 총 17개 시·도 중 16개 시·도에 쉼터가 갖춰지게 된다.

천천히나마 쉼터 갯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국회의원실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쉼터의 운영 상태가 상당히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애인복지법상 쉼터 1곳의 정원은 8명이나 정원이 4명인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인건비가 부족해 종사자 정원 6명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건희 원장.
(출처=유튜브 생중계 캡쳐)

경기도피해장애인쉼터 보듬의 이건희 원장은 "예산이 부족하다. 센터 1곳의 연간예산은 1억 4천5백40만원이다. 문제는 과연 이 금액으로 상시 운용인력 6명, 입소정원 8명, 주7일, 24시간 등 복지법 시행규칙을 준수할 수 있느냐다. 합리적인 예산 반영 없이는 여성, 남성 쉼터를 따로 동시에 운영하면서, 야간 당직근무자를 동성으로 배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예산 부족에 대해 토로했다.

운영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감염병 사태에 신규 입소자 격리도 쉽지 않다. 실제로 이건희 원장은 "입소 전에 신규입소자를 격리할만한 공간이 없어서 사무공간에서 종사자와 함께 격리시킬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사무공간이 폐쇄되니 운영 전반에도 지장이 생겨 추가적인 독립 공간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이건희 원장은 "강력범죄 피해자 트라우마 통합지원기관 스마일센터는 입소자 각자에게 독립 공간을 제공한다. 학대피해장애인쉼터도 현재 공용주거 형태에서 독립주거 형태로 전환해 나가야한다"고 주장했다. 

신용호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장은 "예산과 종사자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쉼터 갯수부터 천천히 늘려가고 있지만 그것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노인재활시설 내에서 그룹홈 형태로 쉼터를 운영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 피해회복 후 지역사회로 돌아온 장애인…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 아끼지 말아야

피해장애인에 대한 지원은 크게 피해회복지원과 지역사회정착지원,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김슬기 대한작업치료사협회 사무총장에 따르면, 피해회복을 위한 지원은 비교적 초기 대응이 잘 갖춰져 있다. 국가대응체계가 해마다 마련되고, 사례가 쌓여가고 있다. 하지만 피해장애인이 안정적으로 지역사회에서 자립하기에는 아직 많은 문제가 있다.

이슬기 사무총장
(출처=유튜브 생중계 캡쳐)

이슬기 사무총장은 "개인적 특성과 능력에 따른 적절한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피해장애인은) 정서적으로 고립된 생활을 이어갈 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면 남아있던 기능마저 저하될 우려가 있다"며 "지속적으로 학대 당하며 일상생활이 타인에게 좌우되던 장애인들은 도움을 꺼리는 등 특성이 있다. 이러한 개인적 상황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건희 보듬쉼터 원장은 자립정착금에 대해서도 "전액 광역지자체비로 지원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의견을 제시했다. 현재 서울, 경기, 전남에서는 탈시설 기조에 따라 장애인자립정착금을 각각 조례로 제정해 실시 중이다. 서울에서는 시설 퇴소자, 경기도는 학대피해 중증장애인, 전남은 학대피해장애인에게 정착금을 지원한다.

문제는 주거지에 따라 지원 여부가 결정되니 피해장애인의 거주지선택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것이다. 같은 광역자치단체 안에서도 그렇다. 경기도는 정착지원금은 도비 30%, 시군비 70%의 비율로 마련하고 있다. 정착지원금 조례는 경기도 31개 시군 중 15개 시군이 시행하고 있어 이 외 지역에 거주하면 신청이 불가하다.

신용호 장애인권익지원과장은 "올 연말쯤 탈시설 로드맵이 발표될 듯하다. 전달체계는 읍·면·동 행정센터를 개편해 확충하고, 사례관리사를 배치하는 등 시범사업에서 해왔던 것들을 바탕으로 제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탈시설이란 막연히 '나갈래, 안 나갈래?'의 문제가 아니라 객관적인 도구나 지표를 통해 이 사람이 지역사회의 기존 인프라에 적응할 수 있냐, 없냐를 판단하고 지원하는 것이 먼저인 문제다. 다만 지금 노인에 대한 평가도구는 마련되어 있는데 장애인 지표 개발은 연구자들이 기피하는 편"이라며 지석연 시소감각통합상담연구소장에게 협업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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