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 호호! 후후!”의 차이점을 아시나요? “박장대소” 웃음치료 현장을 가다
“하하! 호호! 후후!”의 차이점을 아시나요? “박장대소” 웃음치료 현장을 가다
  • 박지원 기자
  • 승인 2020.11.09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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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웃음치료사 양성 과정 “웃을 일 없어도 웃다보면 환한 미소가...”
5년 전 망막변성으로 시력 잃은 최명애 씨, 첫 강의 도전 “눈물바다 웃음바다”
“웃음치료사는 남을 웃겨주는 개그맨이 아냐...” 스스로 웃음 찾아가는 여행길
단풍잎이 떨어지는 11월 초입, 「웃음이가득한자조모임」을 찾아갔다. 코로나보다 강력한 웃음바이러스로 무장한 시각장애인 웃음치료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신나게 박수를 치며 웃고 있는 이부기 씨의 모습.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코로나 블루가 덮친 어두운 사회 속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붉은 단풍이 떨어지는 11월 초입, 「웃음이가득한자조모임」 한 켠에서 미래의 웃음치료사를 꿈꾸는 시각장애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만큼 강력한 바이러스가 ‘웃음 바이러스’가 아닌가. 오늘 수업을 맡은 황의경 강사가 “박장대소 웃음 준비!”를 외치자 모두 강의실이 떠나가라 웃으며 박수를 쳤다. 어느새 기자의 입가에도 기분 좋은 웃음이 새어나왔다. 웃음치료사 양성 과정의 가장 큰 장점은 웃음치료를 배우는 장애인의 마음이 가장 먼저 치유가 된다는 점이었다.

웃음치료사 양성 수업은 한국장애인재단의 ‘2020년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선정이 되어 올해 7월에 문을 열었다. '다름이 또 다른 힘이 되는 세상'을 모토로 진행되는 ‘프로그램 지원사업’은 사단법인, 비영리 장애인단체를 비롯한 당사자 자조모임의 창의적인 프로그램들을 발굴해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황의경 강사가 “박장대소 웃음 준비!”를 외치며 먼저 웃음보를 터트리자, 모두 강의실이 떠나가라 웃으며 박수를 쳤다. ⓒ소셜포커스

하하! 호호! 후후!가 우리 몸에 주는 효과를 아시나요

오늘 수업의 주제는 ‘생기발랄’이다. “생기발랄, 생기발랄 짝짝짝!” 마치 주문을 외우듯 자신에게 외쳐본다. 황 강사는 수업 내내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해주고 수강생들이 큰 소리로 따라 외칠 수 있도록 이끌어갔다.

“강사는 목소리에 힘이 있고 자신감이 있어야 돼요. 내 얼굴부터 생기와 활기가 돌아야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돼요. 틀려도 괜찮아요, 용기를 가집시다! 장길수 씨 봐요. 자신감 있게 하잖아요. 자, 다 같이 따라 해봅시다. 나도 할 수 있다!”

최초의 시각장애인 웃음치료사인 장길수 씨를 따라 ‘2호’의 반열에 들기를 바라며, “나도 할 수 있다!”를 힘차게 외쳐본다. 황 강사가 먼저 박장대소하며 웃기 시작하니 다같이 웃음보가 터졌다. 그의 지론은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니 웃고 보자”이다. 이 수업을 통해 웃음을 되찾았다는 전맹 시각장애인 이부기 씨와 대화해봤다. 부기 씨는 강의실에서 소위 ‘명품 웃음’, ‘멋쟁이’로 통한다.

오늘의 주제는 '생기발랄'이다. 내가 먼저 생기와 활기를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줄 수 있도록 신나게 웃어본다. ⓒ소셜포커스

그녀는 “오늘 헤어밴드도 하고 갈색 코트랑 갈색 신발을 신고 왔어요. 저는 안 보이는 대신 감각으로, 촉각으로, 기억력으로 살아가요. 무엇을 입을지 일일이 다 손으로 만져가면서 감각으로 느끼면서 골라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아요”라며 뿌듯해했다.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면서 그녀의 우울감도 깊어갔지만, 웃음치료를 나오는 수요일만큼은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고 말했다. 부기 씨는 “요즘처럼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질 때는 서글픈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웃음치료 나오는 날에는 그런 생각이 싹 사라져요. 강사님께서 일부러 웃으면 더 크게 웃는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웃음소리도 남들보다 더 크게 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전보다 자신감도 붙고 더 활발해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말도 있다. 웃음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웃음소리에 따라 우리 몸의 장기에 각기 다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은 신선했다. 손으로 가슴, 겨드랑이, 배를 더듬더듬 만져보며, 웃음소리를 내본다.

웃음소리가 우리 몸의 장기에 각기 다른 영향을 준다는 내용은 신선했다. 머리, 가슴 밑, 손등 등을 두들기며 우리 몸을 깨워본다. ⓒ소셜포커스

“자, 자기 오른손을 왼쪽 심장 밑에 대봐요. 그 곳을 살짝 누르면서 하!하!하! 웃어봅시다. 심장을 감싸는 근육이 있는 곳이에요. 협심증은 누가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이 아픈건데, 경색은 굳는 거잖아요. 요즘처럼 기온 차가 커질 때면 협심증과 심근경색 발생률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하!하!하! 웃으면 심장이 좋아집니다. 따라해볼까요?”

보기에 민망한 웃음도 있다. 다들 강아지처럼 혀를 내빼고 “헤!헤!헤!”하고 웃어본다. "헤헤헤" 소리는 혀운동을 할 수 있어 치매예방에 좋다고 한다. “후!후!후!”는 오장육부가 들어있는 복부가 들락날락하니 내장이 좋아진다. 이번에는 한 손가락을 얼굴 앞에 두고 촛불을 불 듯이 “호!호!호!”하고 외쳐본다. 신장과 콩팥 운동에 좋다고 한다. 인체의 신비를 품고 있는 웃음이야말로 보약이 따로 없었다.  

 

웃음바다 눈물바다, 최명애 씨의 웃음치료 실습날

오늘은 최명애 씨의 강의 실습날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우쿨렐레를 가슴에 안고 단상에 선다. 그녀는 5년 전 망막변성증 판정을 받고 시력을 점점 잃다가 4년 전 완전히 앞을 보지 못하게 됐다. 웃음치료를 받기 위해 춘천에서 서울까지 오고 가는 열혈 수강생이다.

그녀는 처음 장애판정을 받았던 날을 회상했다. “저는 제 모습이 참 싫었어요. 30대 후반에 망막변성을 앓고 그 전에도 불편했지만 병이라는 걸 몰랐어요. 자꾸 부딪치고 넘어지고 전동휠체어가 앞에 있는데도 그것을 쳐서 할머니가 넘어질 뻔도 하고... 젊은 사람이 똑바로 안 보고 다닌다고 뭐라고 하더라고요. 망막변성증은 결국 실명한다는 공포가 너무 심했어요. 제 속도 좁아지고 여유가 안 생기니까 가족한테도 자꾸 안 좋은 말만 내뱉게 되고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오늘은 최명애 씨의 웃음치료 실습날이다. 5년 전 망막변성증으로 시력을 잃게된 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던 그녀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소셜포커스

고통스러운 나날 속 그녀가 붙잡은 지푸라기는 ‘웃음’이었다. “어느 날 여성시대 라디오를 듣는데, 웃음치료로 우울감을 극복했다는 사연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수소문 끝에 웃음치료 수업을 찾아가게 됐어요. 사실 처음에는 웃는 것보다 우는 걸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장애 때문에 스스로를 혐오했던 시간들, 고통스러운 날들을 울면서 모두 털어놓고, 그 자리를 다시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채워갈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자, 여러분도 손바닥을 비벼서 따뜻하게 만든 후에 심장을 지긋이 눌러보세요. 그리고 말해보는 거에요. ‘ㅇㅇ야 사랑해~ 괜찮아, 잘하고 있어’ 이렇게요. 저는 그렇게 점점 나아졌어요”라고 말했다.

모두 따뜻해진 손바닥을 가슴에 대고 자신에게 ‘사랑’을 이야기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따뜻하게 미소를 짓는 사람도 이 순간만큼은 모두 치유의 과정을 겪고 있었다. 명애 씨는 누군가 사랑해 줄 사람이 없을 때는, 자기 스스로가 사랑을 해주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손바닥을 심장에 갖다 대는 행동만으로도 사람과 사람이 가슴을 맞닿아 포옹하는 효과를 낼 수 있게 되고, 우리 몸이 치료하는 물질이 만든다고 말했다. 명애씨가 우쿨렐레로 김세환의 ‘사랑하는 마음’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자, 모두 한 목소리로 따라 부르며 마음을 나눴다.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좋은건 없을걸

사랑받는 그 순간보다 흐뭇한건 없을걸

사랑의 눈길보다 정다운건 없을걸

스쳐닿는 그 손끝보다 짜릿한건 없을걸

혼자선 알 수 없는 야릇한 기쁨

천만번 더 들어도 기분좋은말 사랑

명애 씨는 "사랑을 말하면 우주에 있는 사랑의 기운을 끌어당기고, 반대로 상대에게 나쁜말, 미운말을 하면 그 말이 부메랑처럼 나에게 돌아와서 내 몸을 상하게 한다고 해요. 내가 몸의 오장육부를 꺼내서 마사지를 해줄 수 없으니 예쁜 말과 웃음으로 내장에 생기를 넣어주는 것이 웃음 운동이에요. 우리 힘들수록 나와 타인에게 사랑을 말하고, 웃으면서 살아가요!"라고 말하며 수업을 마쳤다. 미래의 시각장애인 웃음치료사에게 큰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최명애 씨는 웃음치료를 통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면서 점점 회복해갈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명애 씨가 우쿨렐레로 김세환의 '사랑하는 마음'을 연주하자 모두 따라부르며 마음을 나눴다. ⓒ소셜포커스

시각장애인은 표정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온전히 목소리에 의존해야만 상대방의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다. 가르치는 강사도 목소리로만 정보를 전달해야하니 애로사항이 클 법도 한데, 강의 내내 지치지않는 에너지로 수강생을 독려하는 황의경 강사는 웃음치료가 최고의 대체의학이라고 자부했다.

황 강사는 “전문가들도 정말 더 이상 치료가 어려운 암환자들, 중증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은 ‘웃음치료’가 유일하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합니다. 시각장애인분들은 제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저는 이 분들 얼굴을 볼 수 있잖아요. 오늘 수업에 임한 수강생들도 아직 강사로 현장에서 뛰기에는 많이 부족하지만, 제 눈에는 콩나물에 물 주듯이 조금씩 자라나는 것이 보여요. 박수나 웃음소리, 목소리에 자신감이 붙어가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웃음치료 연구소 황의경 강사 ⓒ소셜포커스

그러면서 “코로나19 때문에 비장애인 웃음치료사들도 상황이 많이 어려워졌어요. 대면으로 가르쳐야되는데, 일이 절반 가량 줄었죠. 지금은 봉사하는 마음으로 가르치고 있어요. 무엇보다 장애인들이 가지고 있는 ‘낙심’하는 마음, ‘나는 안돼!’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요. 웃음치료는 웃게 만드는 개그맨이 아니에요. 스스로 웃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안내자예요. 이를 위해서는 장애인 당사자가 먼저 색안경을 벗어야 돼요. 색안경을 끼면 남도 못보지만, 나도 못 보게 되니까요. 내가 웃으면 가정이 웃고 사회가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웃음치료사 양성 과정을 기획한 웃음이가득한자조모임 오병철 담당자는 “웃음치료강사마다 가지고 있는 재능들이 다 달라요. 웃음치료라고 해서 웃게만 하는게 아니라, 각자가 가진 재능을 활용해서 사람들을 동참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시각장애 쪽은 웃음치료 프로그램이 흔하지 않거든요. 시각장애인 강사는 대본을 보고 말할 수가 없으니까 강의 전반을 다 외우고 말해야 되는 어려움도 있구요. 강사 개인이 가진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정규과정을 마치면 자조모임식으로 모여서 각자 실력도 점검하고, 일자리까지 연계될 수 있도록 꾸준히 지원해갈 예정입니다”라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이 만드는 ‘웃음소리’에는 단순히 ‘기쁨’과 ‘즐거움’만 담긴 것이 아니라, 삶을 향한 '희망'과 세상을 향한 '외침'이 녹아져있었다. 이 웃음소리를 오래 들을 수 있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미소를 머금고 발걸음을 옮겼다.

웃음이가득한자조모임을 기획한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오병철 소장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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