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느리다며 수습사원 해고한 장애인근로사업장, 진짜 이유는?
일 느리다며 수습사원 해고한 장애인근로사업장, 진짜 이유는?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0.11.09 1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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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 전자제품 생산하던 업체, 마스크 사업한다며 수십억 대출
40명 채용하더니 한달만에 12명 해고… 나머지는 무기한 무급휴가
2억짜리 기계, 7억에 3대 매입… 직원들, 이사진 횡령 의심돼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정립전자가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한 경영난에 장애인 근로자들을 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9일 오후 정립전자 앞에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예지 기자] =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이 방만한 경영의 온상임이 재차 드러났다.

서울 광진구 소재 정립전자는 한국소아마비협회 산하 장애인근로사업장이다. 1989년 설립된 국내 최초 장애인직업재활시설로, 전체 직원의 80% 이상이 장애인 및 소외계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애인 고용을 촉진하는 기업으로써 매년 서울시로부터 9억 원 가량의 보조금을 지원받고 있으며, 우수 사회적기업으로도 선정된 바 있다.

그러나 장애인의 직업생활을 보장해야 할 정립전자가 무리한 경영으로 인한 경영난의 책임을 장애인 근로자들에게 돌리며 물의를 빚고 있다.

LED 조명, CCTV 등 전자제품을 주력으로 생산하던 정립전자는 올해 7월 마스크 생산라인 10개를 갖췄다. 코로나19, 미세먼지 등을 고려했을 때 마스크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본 것이다.

생산라인 가동에 앞서 사측은 매체를 통해 "분당 마스크 300장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 "직원 수를 95명에서 500명 가량으로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홍보했다. 실제로 6월 5일, 제품 검수와 포장을 할 근로자 40명을 신규 고용했다.

하지만 마스크 생산 이후, 경영난에 빠진 사측은 신규 채용했던 근로자 12명을 한 달만에 해고했다. 수습 기간이었던 그들이 해고된 명목은 "일이 느리다"는 것이었다. 해고되지 않은 근로자의 대부분도 무급 휴직을 통보 받았다.

직원들은 정립전자가 경영난에 봉착한 것은 무계획적인 사업 전환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제보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정립전자는 1대에 2억 원 가량의 마스크 생산 기계를 7억 원을 주고 3대 구입했다. 시설비를 포함해 투입한 40여 억 원을 회수하지 못해 30억 원을 추가로 대출 받았다. 이 모든 것을 이끈 시설장은 이미 다른 시설로 자리를 옮겼다. 이에 대해 직원들은 과반수 지인으로 이루어진 이사진이 기계 구입 과정에서 횡령을 한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남지은 정의당 서울시당 부위원장, 정명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장애인노동조합 지부장 (왼쪽부터) ⓒ소셜포커스

남지은 정의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은 "자료를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경영 상태"라고 직원들의 의심이 합리적임을 시사했다. 이어 "서울시로부터 받는 보조금 9억 원은 장애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정립전자는 원래 설립 목적을 잃고 장애인이 노동할 기회를 박탈했다"며 서울시와 광진구에 진상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경영난이 닥치면 장애인 근로자부터 해고하는 정립전자의 만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명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장애인노동조합 지부장은 "2016년에 정립전자 원장과 본부장이 횡령으로 구속됐다. 그 때, 매출 감소와 보조금 중단으로 경영이 어렵다며 장애인 근로자 13명을 해고했다"고 발언했다.

이어 "수십년간 전자기기를 생산해온 업체가 돌연 마스크 업체로 변모를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불법생산이 자행되고 비리 의혹까지 제기되는 판국"이라며 "장애인 노동자를 생산력으로 평가하나. 해고된 근로자들을 당장 복직시키고 부당행위를 명명백백히 밝혀라"라며 광진구청, 서울시, 고용노동부에게 요구했다.

정립공대위 이규식 씨, 전 정립전자 노동자 한군희 씨. ⓒ소셜포커스

정립공대위 이규식 씨는 "정립전자는 90년대에도 시설장의 변칙적 임기연장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그 때문에 200일간 점거농성을 벌인 적인 결과, 변칙적 임기연장과 더불어 공금횡령 혐의가 드러나 시설장이 구속됐다"며 "이사진을 해임하고 정립전자가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란다"고 발언했다.

전 정립전자 노동자 한군희 씨는 "정립전자에서 30년간 일했다고 하면 사회복지사들이 그 비리 많은 곳에서 어떻게 30년을 일했냐고 놀란다. 현재 이사진들은 이사회를 끌고 갈 자격이 없다"며 "가치있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며 일침했다.

이뿐만 아니라 정립전자는 식약처의 생산 허가가 떨어지기 전 2개월 간 마스크 105만 장을 불법 생산한 의혹도 받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식약처와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가 접수된 상태다.

한편, 한국소아마비협회는 "대표가 독단적으로 움직인 결과다. 우리도 피해자"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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