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군이 거액 들인 관광시설, "장애인은 오지 말라?"
강진군이 거액 들인 관광시설, "장애인은 오지 말라?"
  • 조봉현 논설위원
  • 승인 2020.12.14 09: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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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억 들여 최근 개장한 ‘사의재 저잣거리’, 장애인에게는 그림의 떡
사의재 주변의 군청 직영 한옥체험관, 장애인 편의시설 아예 없어
원형도 복원도 아닌 재현시설, 설계단계부터 편의시설 반영해야
원형문화재에도 편의시설 갖춘 다른 지방의 관광시설과 비교 돼

[소셜포커스 조봉현 논설위원] = 전남 강진군이 막대한 주민의 혈세를 들여 직접 설치한 관광시설이 휠체어 이용자 등 이동약자는 전혀 이용할 수 없어 개선이 시급하다.

강진군은 2년 전 강진읍 동성리 정약용 유적지인 사의재 주변에 80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사의재 저잣거리’를 조성하여 개장했다. 앞서 5년 전에는 한옥체험관도 개장했다. 모두가 강진군이 직접 투자를 했으며 직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장애인의 편의시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 휠체어 이용자가 방문하게 되면 아무것도 이용할 수 없다. 체험시설 중심인 이곳은 먼발치서 경관만 바라보다 원망을 안고 돌아서야 한다.

편의시설을 갖춘 곳이 딱 하나 있기는 하다. 저잣거리에 있는 화장실이다. 장애인은 이 화장실만 이용하고 다른 구경이나 체험시설 이용은 아예 포기해야 한다.

다산 정약용의 강진 유배지 첫 번째 거소를 재현한 모습 ⓒ소셜포커스
다산 정약용의 강진 유배지 첫 번째 거소를 재현한 모습 ⓒ소셜포커스

강진은 조선시대 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년이나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다산 선생은 이곳에서 무려 500여 권에 달하는 저서를 쓰는 등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실학사상을 꽃피웠다.

다산이 1801년 강진으로 유배올 때 처음 도착했던 곳은 강진의 동문 밖(지금의 강진읍 동성리)이었다. 한양에서 1,500리를 걸어서 추운 겨울에 도착했으나, 주민들이 다들 껄끄러워했기 때문에 노숙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때 주막집 마음씨 좋은 주모가 방 한 칸을 내어 주었다. 주모의 도움으로 이곳에서 4년간 머물렀는데, 거처했던 방에 사의재라는 현판을 직접 써서 걸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목민심서, 경세유표와 같은 많은 명작을 써냈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강진군은 2006년 이곳에 사의재를 복원했다. 복원이라기 보다는 상상에 의한 재현이었다. 사의재란 '네 가지를 마땅히 해야 할 방'이라는 뜻으로, 곧 맑은 생각과 엄숙한 용모, 과묵한 말씨, 신중한 행동을 가리킨다. 사의재는 주막채와 바깥채, 초정으로 이루어졌다. 실제 지금도 문화해설사들이 주막을 운영하고 있다.

강진군은 앞서 2015년도에는 사의재 옆에 3개 동의 한옥을 지어 한옥체험관을 조성했다. 한옥체험관은 강진군에서 직영하며 관광객들에게 숙박시설로 제공한다.

그러나 강진군청이 직접 운영하는 공공숙박시설임에도 휠체어 장애인을 한 치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는다. 

섬돌, 툇마루 등 전통미를 구현하기 위해서 전면에 경사로 설치가 어렵다면 측면이나 뒤란의 공간을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다.

그리고 사의재 주변으로 ‘사의재 관광 명소화 사업’의 일환으로 사의재 저잣거리를 조성했다. 2015년도에 공사를 시작해 2018년 12월 21일에 개장했다.

사의재를 중심으로 한옥체험 숙박시설, 다산의 정신을 배우는 다산강학당,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제공하는 저잣거리를 조성한 것이다. 동문샘 공원정비, 관광객을 위한 주차장 조성 등을 합하여 약 80억원이 투입됐다고 한다.

사의재 저잣거리에서는 동문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강진전통차 체험관, 한약방, 잡화점 등이 들어섰다. 공예가들을 위한 공방을 비롯해 수제도장, 전통한과, 천연비누, 다산차 전통주, 도자기 판매 및 체험 등 청년창업자들을 위한 공간도 운영한다. 그러나 요즈음은 코로나로 인해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고 있다.

한옥체험관이나 저잣거리에서는 가끔 전통혼례장소로도 이용된다.

2019년 3월부터는 이 ‘사의재 저잣거리’에서 조선 시대와 인물을 해학적으로 재현한 ‘조만간(조선을 만난 시간)’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매주 마당극 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이어진다.

그러나 최근에 설치한 이러한 관광시설이 하나같이 장애인의 이용과 참여가 어렵다. 모두가 장애인 차별시설이고, 이러한 시설을 대책 없이 그대로 운영하는 것은 장애인 차별행위에 속한다.

강진군은 모든 공중시설에 대한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여부를 감독하고 계도를 해야 하는 기관이다. 그럼에도 장애인 불편시설을 선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강진군은 ‘2020 서울국제관광박람회’에서 최우수 마케팅상을 수상했다. 홍보부스에서는 이 사의재 저잣거리에서 실시하는 “조선을 만난 시간”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홍보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장애인 불편시설을 중점 홍보하여 우수상을 탔다. 장애인 입장에서 보면 분통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수관광시설을 평가할 때는 누구나 차별이 없이 동등한 수준으로 이용할 수 있는 지 여부가 반드시 평가요소에 포함되어야 한다. BF인증이 없다면 아예 출품 자체를 못하게 해야 한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제4조에는 “장애인등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장애인등이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를 동등하게 이용할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이 규정되어 있다.

제6조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등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각종 시책을 마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에 대하여 정당한 편의 제공을 거부하는 경우”를 장애인 차별행위에 포함하고 있다. 또 “정당한 편의”라 함은 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하게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설비·도구·서비스 등 제반 조치를 말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장애인등편의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넘었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설치한 지 2~5년에 불과한 강진군의 공공 문화시설들은 이러한 개념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강진군청 관계자는 “군이 직영하는 관광시설임에도 이동약자의 편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한옥의 전통미를 살리다 보니 장애인 편의시설에 소홀한 부분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사의재 주변의 모든 시설은 장애인 편의시설에 소홀한 정도가 아니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옥체험관의 모습, 그러나 휠체어 접근은 일체 허용하지 않는다. ⓒ소셜포커스
한옥체험관의 모습, 그러나 휠체어 접근은 일체 허용하지 않는다. ⓒ소셜포커스
한뼘도 안 되는 단차 하나가 장애인을 울리고 있다. 한뼘 낮추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을까? 개념이 전혀 없는 탓이다. ⓒ소셜포커스
한뼘도 안 되는 단차 하나가 장애인을 울리고 있다. 한뼘 낮추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을까? 개념이 전혀 없는 탓이다. ⓒ소셜포커스
한옥은 뒤꼍이나 측면 공간을 이용하여 경사로나 편의시설을 갖출 수도 있다.
한옥은 뒤꼍이나 측면 공간을 이용하여 경사로나 편의시설을 갖출 수도 있다. ⓒ소셜포커스
80억원을 들인 사의재 저잣거리의 모든 체험 시설은 이동약자에게 ‘그림의 떡’이다. 먼발치서 바라만 보다 돌아서야 한다. ⓒ소셜포커스
80억원을 들인 사의재 저잣거리의 모든 체험 시설은 이동약자에게 ‘그림의 떡’이다. 먼발치서 바라만 보다 돌아서야 한다. ⓒ소셜포커스

다른 지방에는 한옥의 전통미를 살리면서도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춘 시설이 얼마든지 많다. 서울의 여러 고궁들에 출입구의 문턱이나 돌계단이 많지만 대부분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목재 경사로를 덧대거나 덮어서 원형에 손상 없이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대구광역시의 근대골목에 이상화 고택의 경우는 마루 앞에 마당과 같은 높이, 같은 재질로 리프트를 매립해 두고 휠체어 장애인이 방문하면 그 리프트를 이용해서 실내로 들어갈 수 있다. 고택의 분위기를 전혀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편의시설을 갖춘 모범 사례다.

이처럼 원형으로 보존된 문화재임에도 원래 시설과 함께 편의시설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강진의 사의재 및 주변 시설은 원형 문화재도 아니고 복원 문화재도 아니다. 그저 상상에 의해 재현된 문화 시설일 뿐이다. 더구나 최근에 새롭게 신축한 시설이기 때문에 신축하면서 얼마든지 편의시설을 갖출 수 있었을 것이다. 설계단계에서부터 편의시설이 반영되었다면 별도의 예산도 거의 들지 않았을 것이다.

강원도 춘천의 김유정 문학촌에는 전통미를 재현한 초가집들이 여러 채 있다. 모두 경사로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전통미를 훼손하는 게 아니라 가치를 더하고 있다.

강진군청의 공무원들의 장애인 편의시설 및 장애인 차별금지에 대한 인식개선과 이를 위한 교육 등 필요한 조치가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계단과 경사로가 어울리는 고궁의 편의시설은 문화재 훼손이 아니라 가치를 증대시키고 있다. ⓒ소셜포커스
계단과 경사로가 어울리는 고궁의 편의시설은 문화재 훼손이 아니라 가치를 증대시키고 있다. ⓒ소셜포커스
출입구 계단 위에 경사로를 덮었지만 훼손한 것은 아니다. ⓒ소셜포커스
출입구 계단 위에 경사로를 덮었지만 훼손한 것은 아니다. ⓒ소셜포커스
강원도 춘천의 김유정 문학촌에 재현한 전통가옥의 장애인 편의시설 사례, 강진군이 꼭 벤치마킹 해야 할 부분이다.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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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 2020-12-18 11:40:16
강진 거주 장애인들이 참 딱하네요. 한옥체험관의 전통미를 살리려면 장애인 편의시설이나 접근성을 고려해서 설치하면 안되는 거였군요. 강진군청의 관계공무원들은 장애인차별 금지법이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등을 들어본 기억이 있나 묻고 싶네요. 그들에게는 장애인이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고려해야 할 대상이 아니겠지요. 일부도 아니고 전체가 장애인 불편시설로 이루어져 있다니 기가 막히고 할 말이 없네요. 강진군청 공무원들은 의무적으로 받는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은 안받나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