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후 나의 일상을 되찾고 싶어요..."
"사고 후 나의 일상을 되찾고 싶어요..."
  • 박지원 기자
  • 승인 2020.12.15 1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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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ㆍ증증장애인의 일상복귀위한 전환재활시스템, 국내는 여전히 지원책 미비
공급자 중심 의료재활에 치우쳐있어... 장애정체성 인정할 교육ㆍ심리재활도 중요
'일상홈'으로 사회복귀 성공한 휠체어 댄스스포츠 채수민 선수 사연 눈길 끌어
15일 오후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중도·중증장애인의 일상복귀 재활시스템 구축을 위한 토론회’가 진행됐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중도중증장애인이 요구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치료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회적 재활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 척수장애인이 사고를 당한 후 치료를 하는 과정에는 약 29개월이 소요된다. 척수장애인들은 의료적인 재활서비스가 주어진 후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달라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러나 여전히 지원책은 미비하다.

15일 오후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중도ㆍ중증장애인의 일상복귀 재활시스템 구축을 위한 토론회’가 진행됐다. 대부분의 척수장애인이 손상 직후 사고 이전의 일상으로의 복귀를 꿈꾸지만, 재활치료를 위해 병원을 전전하는 소위 '재활난민'의 신세가 되는 경우가 많다.

변화된 몸을 받아들일 심적 여유와 동기부여 등 심리재활은 더욱 어렵다. 원직무에 복귀하지 못하고 직업을 잃어 생계전선에서 방황하는 사람들도 있다. 20대 이상 중도장애인 비율이 82.8%로 장애인 중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의료재활에서 사회재활로 이어지는 모든 단계는 당사자와 가족의 몫이 되어온지 오래다.  

토론회를 주최한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 ⓒ소셜포커스

발제를 맡은 박종균 나사렛대학교 인간재활학과 교수는 의료재활에 치우친 대한민국의 재활시스템을 비판했다. 의료재활에서 직업재활로 바로 뛰어넘어가고 있어 당사자들이 휴유증을 겪고 있다는 것.

박 교수는 "우리나라 의료재활은 굉장히 잘 구축되어있다. 작년에 스웨덴에서 뇌성마비 자녀를 둔 부모를 만났는데 의료재활을 위해 한국에 오고 싶다고 말하더라. 그러나 교육·사회·심리·직업 재활은 거의 없다시피하는 것이 중도장애인 재활의 결정적인 문제"라며 꼬집었다.  

그러면서 "사고 이후 장애를 수용하고 장애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심리재활의 역할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밖에 나가서 휠체어를 타고, 교통수단 이용하는 사회재활도 마찬가지다. 이런 경험이 쌓인 후에 직업재활 단계로 넘어가야하지만, 중간 과정이 생략되니 당사자 스스로도 저항이 생기고 고립되는 방향을 택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사회복귀를 위한 병원의 재활치료(의료재활)와 지역사회복귀의 중간 단계인 전환재활서비스가 절실하지만, 국내는 일부 재활병원과 산재보험에서만 시행하고 있다. 

나사렛대학교 인간재활학과 박종균 교수 ⓒ소셜포커스

해외의 경우 이야기가 다르다. 영국은 스톡맨디빌레 척수센터를, 스위스는 패러플래직센터 척수손상센터를 운영하며 척수장애인의 재활치료부터 사회복귀 및 사후관리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다. 미국은 시카고 재활병원과 미시건 대학 척수재활센터에서 이미 척수손상모델시스템을 구축한 상태다. 

뉴질랜드와 스웨덴의 경우 자립생활코치, 재활코치 등의 전환재활서비스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스위스의 RSS센터는 종사자 40% 이상이 척수장애인으로 장애를 입은 당사자의 삶을 이해하며 전문적인 재활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박종균 교수는 "직업재활의 경우 직업은 고용노동부가 담당하고 재활은 보건복지부가 담당한다. 재활체육도 재활은 보건복지부, 체육은 문화체육관광부 이런식이다. 분절적으로 업무를 하니 부처간 조율이 안된다. 대통령 산하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를 상설 운영해야한다. 직업재활법과 장애인복지법도 개정해서 전환재활서비스를 법적으로 보완하고 예산도 확보해야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중도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제고됐으면 좋겠다. 직원이 사고를 당해서 중도장애인이 됐을 때 원직장으로 복귀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 당사자들도 마찬가지다. 스위스 RSS센터의 사례처럼 척수장애인 당사자가 치열하게 공부하고 노력해서 전환재활서비스 전문가로서 인정받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라고 제언했다.

휠체어 댄스스포츠 채수민 선수 ⓒ소셜포커스

한편, 이날 휠체어 댄스스포츠 채수민 선수가 토론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채 선수는 과거 실용무용과에 진학해 춤 추는 것을 좋아하던 발랄한 여대생이었다. 그러나 2017년 11월 26일 예상치못한 낙상사고를 당하게 되면서 척수장애를 입게 됐다. 사고 당시 기억이 없다는 채 선수는 눈을 떴을 당시 이미 아주대학교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고 고백했다.  

사고 전 실용무용과에 재학했던 시절 모습. (사진=채수민 선수)

채 선수는 1년 2개월 간의 시간동안 재활에 매진해야했다. 재활치료를 이어가던 중 국립재활원에서 휠체어 댄스스포츠를 소개받게 됐고, 꿈에 그리던 학교 복학을 위해 운전 면허도 취득하면서 사회 복귀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열심히 재활 훈련에 임했지만 실제 사회에 나가자 현실은 녹록치않았다. 

채 선수는 "병원에서 이론적인 근력운동, 생활훈련을 받았음에도 실제 상황이 되니까 너무 막막하더라고요. 당시 센터장님이었던 최혜영 의원님을 만나게 되어서 '일상홈'에 들어가게 됐고, 담당 선생님께서도 생활형 밀착지도로 한 달동안 함께 생활해주시고 도와주셔서 혼자서 할 수 있는 활동 범위가 많아지게 됐어요"라며 회상했다.

채 선수는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서울특별시협회에서 진행하는 '일상홈'을 통해 성공적인 사회복귀를 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화장실 가는 것, 샤워하는 것, 차를 타고 내리는 것, 집안일하는 것, 장보기 등 이런 사소한 것도 어떻게 하지라는 벽을 깰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아요"라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채수민 선수는 사고 후 한국척수장애인협회의 '일상홈' 프로젝트에 참여해 성공적으로 사회에 복귀했다.
(왼쪽) 당시 일상홈 코칭을 맡아주었던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전 센터장)과 찍은 사진.
(오른쪽) 일상홈 프로젝트를 마친 후 스스로 운전해서 동기의 댄스교습소에 축하인사를 전하러간 모습. (사진=채수민 선수)

그러면서 "실제 저보다 먼저 다친 언니는 사회에 나오기 두려워했는데, 제가 스스로 운전해서 병문안도 가고 열심히 휠체어를 미는 그런 모습을 보니까 용기를 얻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언니가 퇴원하고 휠체어 펜싱선수생활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현재 유튜브 채널 '이지트립'에서 리포터로 활동하고 있는 채수민 선수는 일상홈과 같은 척수장애인의 사회복귀와 자립 프로그램이 확대되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채 선수는 "지금 저의 모습은 앞서 말씀드린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거에요. 많은 척수장애인분들이 당당하게 사회로 나와서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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