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보면 달라보여요”... 장애의 재해석 논문 수상팀을 만나다
“다르게 보면 달라보여요”... 장애의 재해석 논문 수상팀을 만나다
  • 박지원 기자
  • 승인 2020.12.17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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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애인재단, 2020년도 논문지원사업 ‘장애의 재해석’ 우수논문 발표
복지부 장관상에 이동약자 무장애 스코어 개발한 서울대학교 이선재 씨 외 3명
‘고전 「장자」에서 장애를 찾다‘, ’장애는 나눔을 제약하는가‘ 등 색다른 주제 눈길
「이동약자 무장애관광 스코어 개발 : 지역의 물리적 환경을 중심으로」라는 연구주제로 우수논문상(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한 서울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이선재, 남정훈, 이현우, 정연중 씨. ©소셜포커스
한국장애인재단이 지난달 18일 ’2020 논문지원사업 장애의 재해석 논문발표회‘ 시상식을 가졌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한국장애인재단에서 진행하는 2020년도 논문지원사업 「장애의 재해석」 수상자들을 만나봤다. 이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장애’를 재조명한 연구물을 공유하고, 장애인 인식개선 및 연구 확대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았다.

지난 11월 18일 서울 중구 순화동천에서 진행된 논문발표회 현장에는 5개의 연구팀이 직접 논문을 발표하며 치열한 경쟁을 연출했다.

우수논문상(보건복지부 장관상)은 「이동약자 무장애 스코어 개발 : 지역의 물리적 환경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한 이선재ㆍ남정훈ㆍ이현우ㆍ정연중 씨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사장상은 「장자의 장애형상과 그 함의」를 주제로 한 이두은ㆍ조혜진 씨와 「장애인의 기부와 자원봉사 행동에 관한 연구 : 장애는 나눔을 제약하는가?」를 주제로 한 이종화ㆍ손영은 씨가 수상했다.

재단 이성규 이사장은 “고생해주신 자문위원들과 연구진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참여자들의 논문이 외부에서도 우수하게 인정받아서 다양한 판로 개척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재단도 논문지원사업 활성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동약자 무장애관광 스코어 개발 : 지역의 물리적 환경을 중심으로」라는 연구주제로 우수논문상(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한 서울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이선재, 남정훈, 이현우, 정연중 씨. ©소셜포커스
「이동약자 무장애관광 스코어 개발 : 지역의 물리적 환경을 중심으로」라는 연구주제로 우수논문상(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한 서울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이선재, 남정훈, 이현우, 정연중 씨. ©소셜포커스

Q. 먼저 우수논문상 수상을 축하드려요. 이동약자의 무장애관광 스코어 개발에 관한 연구였죠?

네 맞아요. 석사 때부터 노인들의 보행 이동 데이터를 활용해서 연구를 해왔어요. 노인들이 도시에서 어떻게 걸어다니는지 분석하는 연구인데, 이번에는 장애인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했죠. 재단에서 연결해주신 자문위원님께서 잘했다고 칭찬해주셔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수상하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Q. 이번에 개발하신 ‘무장애 관광 스코어’에 대해서 소개해줄 수 있나요.

기존 배리어프리(BF) 인증의 경우 항목 수가 많아서 전반적인 만족도는 알 수 있었지만, 특정 기능을 만족하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어요. 예를 들어, 어떤 관광지가 장애인 접근성은 좋은데 관광지로서의 매력도는 떨어질 수 있잖아요. 단순히 ‘대체적으로 만족’ 이렇게만 나오면 이용자가 해당 관광지에 직관적인 평가를 내리기 어려우니까요.

저희가 개발한 ‘무장애 스코어’의 경우 이용자가 원하는 세부적인 기능을 확인할 수 있도록 △이동성 △편의성 △여가성 △매력성 이렇게 4가지 항목을 나눠서 3가지 차원의 지표를 개발했고, 다각도로 접근할 수 있게 제작했습니다.

Q. 연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아무래도 비장애인의 시선으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요. 누구나 당연하게 즐길 수 있다고 생각이 되었던 관광지도, 무장애정도 스코어를 보니 사실 이동약자는 전혀 즐길 수가 없는 정도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도시건축 전공이다보니 장애인을 비롯한 이동약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아서 처음에 용어정의부터 시작했어요.

살펴보니 이동약자의 범위가 어린이, 노인, 임산부, 장애인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영유아도 바퀴가 달린 유모차를 타고 다니니까 일시적인 이동약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갑작스러운 사고로 당장 내일 걷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일생의 어느 단계에서는 누구나 이동약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 논문 사업으로 저 또한 인식변화에 도움을 받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해요.

Q. 이번 논문을 통해서 앞으로 기여하고 싶은 바가 있다면?

도시 환경이 바뀌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과 많은 예산이 소요돼요. 그래서 저희는 효율적인 접근방식을 택해서 이미 무장애 관광지로 잘 형성되어있는 곳부터 빠르게 정보를 제공하고자 했어요. 실제로 어플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어요. 누구나 즉석에서 가고자 하는 관광지의 무장애 점수를 확인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 단계로 한층 나아가는 것이죠. 실제 어플 서비스를 시작하면 사용자들이 주는 피드백을 토대로 점수 체계도 더 정교하게 만들어갈 예정이에요. 단순 연구로만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Q. 어플 출시라니 너무 기대되네요. 감사한 분들에게 인사 전한다면?

자문위원님과 후배들에게 감사해요. 힘든 순간이 많았는데 자문해주신 우송대학교 이채식 교수님이 중심을 잡아주셨어요. 저희가 지표를 만들고 점수를 매기다보니 자칫 자의적인 해석이 들어갈 수도 있거든요. 그때마다 객관적으로 조언해주셨어요. 또 후배들과 함께 토론을 하니까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게 되고 미처 몰랐던 부분들도 알게 됐어요. 재단의 논문지원사업 취지가 정말 좋은데 아직까지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아쉬워요. 많이 성장할 수 있고 재미난 연구도 마음껏 할 수 있으니 많이 참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사장상은 ‘「장자」의 장애형상과 그 함의’를 주제로 연구한 베이징대학 중국고대문학과 이두은 씨와 전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조혜진 씨가 수상했다. 인터뷰에 임하고 있는 이두은 씨의 모습. ©소셜포커스
이사장상은 ‘「장자」의 장애형상과 그 함의’를 주제로 연구한 베이징대학 중국고대문학과 이두은 씨와 전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조혜진 씨가 수상했다. 인터뷰에 임하고 있는 이두은 씨. ©소셜포커스

Q. 어떻게 「장자」라는 중국 고전에서 ‘장애’를 찾아보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중국 고전에는 장애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이 있어요. 보통 공자-맹자, 유가-도가, 노자-장자 이렇게 비교를 하는데, 특히 유가 쪽에 장애를 다루는 문헌들이 많아요. 맹자와 유가는 장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국가와 사회가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수용하고, 그들에게 타당한 복지를 실현할 수 있을지를 다루고 있어요. 중국 고전 「예기」에서도 지체장애인, 시각장애인 등 장애 유형을 열거하면서 그들에게 어떻게 적합한 일자리를 제공할지 의논를 하거든요. 그러나 저는 장애를 시혜적인 관점이 아닌 색다른 관점으로 설명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장자」라는 작품이 끌렸나봐요. 장자는 장애를 역설적, 반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런 역발상이 아주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Q. 장자가 해석한 장애에 대해서 쉽게 설명해줄 수 있나요?

우선 장자는 사회 통념을 따르지 않고 거기서 벗어난 사람을 ‘기인’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 자신의 아내가 죽었는데 장례식장에서 노래를 하고 북을 치는 장면이 나와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애도’가 아닌 장자가 생각한 ‘애도’는 곡 대신 노래를 하고 춤을 추는 것이었어요. 이렇듯 사회 규범이나 사회적 통념을 탈피한 모든 것을 장자는 ‘기’라고 부르고 그 연장선에서 ‘기인’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어요.

이게 장애와 무슨 상관이 있나 싶으실 수 있는데, 장자가 말하는 ‘기’나 ‘기인’이라는 개념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겉으로 보이는 외형적인 기형과 불편함을 그 자체로 수용하려는 태도이거든요. 장자는 몸이 불편한 것과 상관없이 본래 타고난 것을 ‘천(天)’이라고 보고, 인위적인 사회 통념을 지양하고 자연스러운 본래의 성질을 추구했거든요. 그래서 기인이나 몸이 불편한 장애인을 기존의 제도가 아닌 하늘이라는 자연의 범주 속에 넣어서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해했죠. 장애를 바라보는 선입견 자체도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하나의 인위적인 허상이기 때문에요.

Q. 장자의 독특한 인간론을 설명하면서, 연구자도 영향을 받은 것이 있다면?

사실 「장자」라는 작품을 기존 학자들이 연구해왔던 틀 속에서만 바라봤지, ‘장애’라는 주제로 바라본 건 처음이에요. 그러나 당시에도 고대인들은 우리와 비슷한 일상을 살고 있었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별하는 편견도 여전했죠. 고대인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굉장히 진지한 태도로 임하고 있어요. 요즘은 사회 현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보다 뉴스나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잖아요.

자신이 직접 종사하거나 연구하지 않는 이상 특정 문제에 대한 괴리감이 상당한데,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고대인들의 진지한 탐구 자세가 본받을만하다고 생각됐어요. 더 나아가 고전 작품이나 인문학이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다각도로 적용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Q. 베이징대학교에서 박사 과정 중이신데, 그냥 읽어도 어려운 중국 문학을 한국어 논문으로 설명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인문학이나 철학을 사회복지학적인 측면에서 연구하다보니, 고전문학이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생소하고 낯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이걸 어디까지 풀어내야하는가에 대한 어려움도 컸어요. 지금 코로나 때문에 잠시 한국에 들어와 있는데, 저번 학기부터 온라인으로 대체해서 수업을 듣고 있어요.

저는 사실 대학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하면서 처음 중국어를 배운 케이스라 아직도 많이 어려워요. 장자를 비롯한 모든 작품을 중국어 원문으로 읽어야 하니까 번역본도 참고하면서 열심히 분석했죠. 자문위원님께서 정말 많이 도움을 주셨어요. 지금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학문과 사상가들을 비교연구하고 있어요. 앞으로 더 좋은 논문으로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사장상은 「장애인의 기부와 자원봉사 행동에 관한 연구 : 장애는 나눔을 제약하는가?」를 주제로 한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회복지정책협동과정 이종화 씨와 연세대학교 사회복지전문대학원 노인복지전공 손영은 씨가 수상했다. ©소셜포커스
이사장상은 「장애인의 기부와 자원봉사 행동에 관한 연구 : 장애는 나눔을 제약하는가?」를 주제로 한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회복지정책협동과정 이종화 씨와 연세대학교 사회복지전문대학원 노인복지전공 손영은 씨가 수상했다. ©소셜포커스

Q.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이 아닌 나눔과 봉사의 ‘주체’로서 분석하셨습니다. 주제 선정 계기가 있나요?

제가 연구하는 분야가 기부와 자원봉사 등 나눔 행동에 관한 분야거든요. 혹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기부와 자원봉사 분야에도 존재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데이터를 살펴보게 됐어요. 통계청에서 제공하는 ‘사회조사’라는 전국 단위의 조사인데,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나눔과 봉사 비율이 큰 차이가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됐죠. 되려 자원봉사는 장애인이 더 많이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것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면 장애인을 시혜적인 관점으로 보는 고정관념을 깨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Q. 논문을 준비하면서 난감했던 순간이 있었다면서요.

처음에는 연구자 입장에서 이걸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왜냐하면 이론상으로 접근했을 때 기부나 자원봉사는 인적·사회적 자원이 많은 사람이 한다고 알려져 있거든요. 돈이 많은 사람이 기부를 많이 하고, 시간이 많거나 학력 수준이 높은 사람이 자원봉사를 많이 한다는 조사 결과가 많아서 장애인이 나눔을 더 많이 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고심을 많이 했죠.

그러다가 해외 연구 중 SOC이론(선택최적화보상이론)을 보게 됐어요. 누구나 살아가면서 나이가 들고 은퇴하고 건강이 악화되고 돈이 없어지는 등 자원이 제한되는 경험을 하게 되잖아요. 이 때 사람들은 그나마 남아있는 자원을 활용해서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달성하고자한다는 이론이었어요. 장애인의 나눔도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 있겠더라고요.

장애인들이 평균적으로는 비장애인에 비해 학력과 소득수준이 낮은 편이지만, 그 안에 나눔에 대한 열정과 가치는 절대로 작지 않았어요. 많은 장애인들이 자기 시간을 내서 나눔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고, 실제로 자원봉사 비율도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2배 가량 높게 나타났어요.

종교가 있거나 시민단체에 참여하는 장애인은 기부도, 자원봉사도 많이 하고요. 복지관 등 사회복지시설을 이용하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인적 자원을 갖추고 있는 장애인이 사회관계망이 적은 장애인보다 더 많은 나눔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기관·시설 등에서 수혜자로 활동하다가 봉사자로 역할을 바꿔서 봉사를 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Q. 이번 연구가 장애인 인식개선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도 이런 연구 결과물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국내에서 장애인을 나눔의 주체로 생각하고 진행하는 학술 연구가 거의 없어요. 20여년 간 3~4편 정도에요. 장애인을 수혜자로만 생각하니 연구자들의 시각도 굉장히 편향되어있죠. 문제는 이런 연구자들의 시각이 나라의 정책과 제도 수립에 많이 반영된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먼저는 연구자들의 시각부터 바뀌어야한다고 생각해요. 

또 이런 시각들이 잘 반영될 수 있는 곳이 사회복지 현장이에요. 사회복지 실무자들이 장애인이 나눔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사회운동을 통해 이슈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장애인 자원봉사 프로그램이나 소액 기부 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있죠. 이런 실질적인 활동을 구현할 수 있는 분은 저같은 연구자, 전문가가 아닌 실무자들이에요.

또 언론도 장애인의 나눔과 관련된 단순 미담만 조명하지 말고, 장애인이 참여하는 체계적인 나눔 봉사 프로그램 등을 다루면 장애인 인식개선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시민들도 장애인의 ‘나눔’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2020년 논문지원사업 「장애의 재해석」 논문집'은 한국장애인재단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논문지원사업과 관련된 문의는 한국장애인재단 연구기획팀(☎02-6399-6235)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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