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에게 동료가’… 정신장애인동료지원센터의 동료상담가 수업에 가다
‘동료에게 동료가’… 정신장애인동료지원센터의 동료상담가 수업에 가다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0.12.22 1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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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미디어가 씌운 편견, 안타까워"
객관적인 판단보다 경험에 비춘 조언하는 것이 ‘동료지원가’
지난 11월 동료상담가로 거듭나고자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는 이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정신장애인동료지원센터를 찾았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예지 기자] = 지난 11월,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을 동료로 받아들이고 돕고자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왔다. 이 마음 따뜻한 사람들은 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에 모여 동료상담가로 거듭나고자 열띤 훈련을 이어가고 있었다.

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는 2020년 한국장애인재단 프로그램 지원사업 수행기관으로 선정돼, 정신장애인 동료상담가 양성과정을 운영했다.

이 과정에 참여한 구성원들은 정신장애를 진단받은 지 최소 10여 년이 된 일명 '전문가'들이다. 처음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의 혼란, 강제 입원했을 때의 겪었던 고립감, 치료가 지지부진하다고 느낄 때의 좌절감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없는 공감과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인재들인 것이다.

수업이 진행되는 회의실에서 취재를 준비하고 있자 그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짧은 소개와 인사를 주고받은 뒤 생각해뒀던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돌아온 것은 "기자님은 정신장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생각지 못한 역질문이었다.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실례가 되지 않을까. 정신장애인 당사자들과 직접 만나 대화를 해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솔직하게 답하기로 마음 먹었다.

"정신장애는 누구나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미디어에서 조현병이나 조울증 같은 정신장애를 범죄와 연결해 보도하거나, 극적인 장치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보니까 제 자신이 그런 편견에서 자유롭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지금 여러분들과 마주 앉아 있는 게 두렵다는 뜻은 아니고요..."

눈치를 보며 끝내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당사자들은 오히려 편견에 익숙하다는 듯 의연하게 답하기 시작했다.

○○ "많은 사람들이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것처럼 정신장애인을 무서운 사람, 인격이 파탄난 사람, 나를 해칠 것 같은 사람으로 보는 건 맞아요. 저도 처음에는 위험한 사람이었을 수 있죠. 그런데 꾸준히 치료를 받고 약에 익숙해지다보니 공격성, 폭력성은 거의 없어요.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재완 " 정신장애와 범죄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뉴스에서는 '강력범죄가 일어났는데 가해자가 조현병이 있더라'는 식으로 보도해서 가해자의 정신장애가 범죄 원인인 것처럼 만들어버리는데... 사실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비장애인이 더 많다고 하더라고요."

△△ "저는 피해망상이 있었어요. 길 가던 사람들이 갑자기 나를 해코지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갑자기 화가 치밀어오르고는 했어요. 약을 먹기 시작한 후로는 그렇게 갑자기 화가 나거나 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TV에서는 정신장애인은 아예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시한폭탄처럼 묘사를 하니까... 당사자로서 안타까워요."

잠시 편견에 대해 터놓고 난 뒤에 수업은 시작됐다. 수업은 정신과적 상담에 관한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진행됐다. 담당 사회복지사 이한결 씨는 "이 책에는 인간관계에 대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서도 잘 나와있어요. 인간의 경험이라는 게 굴곡과 경로가 다양하잖아요. 어떻게 하면 함부로 판단하거나 지시, 명령하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존중을 기반으로 하는 회복언어를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볼 수 있는 주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저 사람은 망상이 있어서 대화할 필요가 없어'라고 단정짓기보다 '이런 방식으로 대화하는 게 좋지'라고 생각을 전환할 수 있도록 유도해줘요"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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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주제 '증상이 없다는 동료와의 상담'을 주제로 참여자들이 시뮬레이션을 이어가고 있다. ⓒ소셜포커스

본격적인 시뮬레이션이 진행됐다. 책에서 발췌한 주제를 놓고 참여자 2명이 각각 상담가와 내담자 역할을 맡는다. 첫번째 주제 '증상이 없다는 동료와의 상담'이다. 재완 씨가 내담자를, ○○씨가 상담가 역할을 맡았다.

재완 : 저는 병이 없고 멀쩡한데 주변에서 자꾸 병원에 가보라고 하고, 병원에 가면 약을 먹으라는데 왜 그래야하는지 모르겠어요.

○○ : 그래도 확진을 받았으면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재완 : 의사도 사람인데 틀릴 수 있지 않나요?

○○ : 의사는 전문가니까 의사 의견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재완 : 자기에 대해서는 자기가 제일 잘 알죠. 저는 제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제 판단이 맞지 않을까요?

○○ : 함부로 자가진단을 내리는 건 위험할 수 있어요. 정신 질환에 대해서 교육을 받은 의사선생님 말을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짧은 시뮬레이션이 끝나면 피드백이 이어진다. 내담자를 맡은 재완 씨는 "훌륭하다. 의사가 객관적 판단을 내릴 거라고 설득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칭찬했지만 사회복지사 한결 씨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선생님이 조현병 확진을 받으신 지가 20년이 됐잖아요? 정신의료체제에 노출된 기간도 그만큼 길기 때문에 왜 아까처럼 대답하셨는지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정신과 의사가 무조건 객관적일 것이라고 얘기하는 건 적절하지 않아요. 정신과를 가보라고 하는 건 동료상담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예요. 동료상담가는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줄 필요는 없어요. 개인의 경험 속으로 들어가서 공감하고 조언하는 역할을 맡아야 해요."

한결 씨의 피드백에 OO씨는 "그렇네요. 치료보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 필요하다고 여기 와서 많이 느꼈는데도 상담을 진행하면 자꾸 틀에 박힌 대답이 나와요"라며 수긍했다.

시뮬레이션이 끝나고 피드백을 주고받고 있는 참여자들. ⓒ소셜포커스

두번째 주제'초발한 동료와의 상담'이었다. □□씨가 내담자를 맡았다. 오랜만의 수업에 상담을 부드럽게 이끌어나가기 쉽지 않다는 반응에 한결 씨가 시범 차 상담가 역할을 맡았다.

□□ : '죽어라', '너는 필요 없는 존재야'라면서 저를 비하하는 소리가 자주 들리고, 남들 눈에 안 보이는 게 보여서 당황스러워요. 일정한 빈도도 없어요. 별안간 그런 소리가 한꺼번에 밀려 닥칠 때도 있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한결 : 그런 소리가 들리면 당황스럽고 생활하기가 많이 힘드실 것 같아요. 그 목소리는 언제부터 들렸나요? 특별한 일이나 계기가 있었나요?

□□ : 자주 들리기 시작한 건 1~2개월 정도 됐어요. 별일은 없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으면 그 일 때문에 그런가보다 할텐데 그런 것도 아니에요.

한결 : 주변 사람들한테 얘기해 본 적은 있나요?

□□ :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아무한테도 말은 못했어요. 처음에는 혼자 참아보려고 했는데 지금은 너무 힘들어서 정신과에 가보고 싶거든요. 그런데 확진을 받고 약을 먹으면 정신병자로 낙인 찍히는 것 같아서 무서워요. 정신과 약을 먹는다고 하면 손가락질 받을까봐요.

한결 : 지금 저랑 대화하는 중에도 목소리가 들리나요?

□□ : 아니요.

한결 : 그럼 저랑 대화하는 건 좀 편하세요?

□□ : 네, 지금은 편해요.

한결 : 그럼 이렇게 편하게 대화할 때는 소리가 안 들리는 것 같네요. 남들의 반응이 두려워서 약점을 공유하기 어려워하는 건 당연해요. 그래도 다 털어놓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아직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어려우시면 저랑 대화를 계속 나눠보시다가 정말 견디기 힘들어지면 그때 저랑 같이 병원에 가봐도 될 것 같아요.

□□씨는 "저도 초발했을 때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몰라서 고민이 많았는데 이렇게 경험이 있는 분의 얘기를 들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같은 아픔이 있다보니까 더 공감 받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어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결 씨는 "모든 결정에 있어서 중심은 내담자인 동료가 되어야 해요. 병원에 갈지 말지, 치료를 포기할지 말지를 직접 결정해주는 게 아니라 동료의 저울 한쪽에 경험에서 나온 의견을 올려놓는 것이 여러분의 몫이에요"라고 마지막 조언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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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난 후 참여자들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소셜포커스

동료상담가는 ‘치료’가 아닌 ‘치유’의 관점에서 ‘정답’이 아닌 ‘더 나은 길’로 동료를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는 길잡이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동료의 길잡이로 거듭나기 위해 교육 과정을 거친 참여자들은 무엇을 느꼈고, 어떻게 달라졌을까?

한결 "정신과 의사나 사회복지사들은 개인의 경험에 대해 깊게 접근하지 말라고 이론상 교육을 받아요. 그래서 보통 진단을 내리고, 필요한 서비스를 파악하기 위한 정도의 상담만 하거든요. 여기 와서는 다들 경험에 대해 얘기하고, 공감하는 훈련을 거치면서 서로에게 많이 위로가 된 것 같아요. 특히 □□선생님은 처음에는 굉장히 소극적이었는데 적극적으로 변하셨어요. 자기표현도 확실히 많이 하시구요."

재완 "정신과 상담을 할 때 받는 조언은 대부분 이런 걸 고치고, 저런 걸 고치라고 해요. 정신장애인을 정신병 환자라고만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여기에서는 비판하거나 고쳐주려고 하지 않고 같은 입장, 눈높이에서 지지해주니까 마음이 편해요."

○○ "나의 병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어요. 예전에는 병이랑 나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괴로워했던 적도 있거든요. 여기서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객관적인 자료를 접하기도 하면서, 나의 병에 대해 한 발 물러나 바라볼 수 있게 됐어요."

△△ “당사자 분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혼자 있으면 나만의 생각에 갇혀있을 때가 많은데 여기 오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취재를 마쳤다고 말하고나자 참여자들은 화기애애한 대화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오고가는 소소한 일상 이야기에 편안한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누구와도 다름없이 평범하고,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들. 바로 그들이 정신장애인동료지원센터에 모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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