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감정 표현이 어렵지 않아요!”
“더 이상 감정 표현이 어렵지 않아요!”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0.12.24 11: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기장애인인권포럼, 한국장애인재단 지원받아 성인 중증 발달장애인 감정수업 3년 연속 운영
활동 마무리하며 집중상담·가족과 함께하는 워크샵 진행
강사진 “올해 키워드는 ‘자립’… 스스로 꾸리는 일상 속에서 적절하게 감정 해소하길 바라”
경기장애인인권포럼의 '성인 중증 발달장애인의 감정을 찾아서' 프로그램 현장을 찾았다. 첫번째 내담자 훈렬씨가 강사진과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예지 기자] = 지난 달, 일산에 위치한 경기장애인인권포럼(이하 경기포럼)을 찾았다. 경기포럼은 한국장애인재단으로부터 프로그램 지원을 받아 '성인 중증 발달장애인의 감정을 찾아서'을 지난 2018년부터 3년째 운영해오고 있다.

방문한 날은 활동을 마무리 한 뒤, 집중상담이 필요한 두 사람을 선정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첫 번째로 집중상담을 마친 사람은 감정수업의 '최고참'인 훈렬 씨다. 2018년부터 꾸준히 프로그램에 참여해왔다는 훈렬 씨는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갖게 된 잘못된 가치관을 하나하나 깨나가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먼저 상담을 마친 훈렬 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훈렬 씨는 활동을 통해 잘못된 가치관을 하나하나 고쳐나가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소셜포커스

Q. 이 프로그램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2018년에 두 번째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는데, 그 이후부터 단 1년도 안 빠지고 3년째 참여하고 있죠."

Q. 지금까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알게 된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무리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사람한테 강압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또 다른 사람들이, 특히 여자친구들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몰랐어요. 선생님들이랑 얘기하면 그나마 사람들한테 편하게 하는 걸 배우는 것 같아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나요?

"역할극을 해봤던 게 인상 깊었던 것 같아요. 다른 기관에 가서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았고요. 내일은 워크샵이 있어요. 내일도 잘 할 수 있도록 기대를 해보고 있습니다."

Q. 아쉬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2018년부터 2019년, 올해까지 참여하고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수업이 3번이나 끊어졌어요. 많이 함께하기 어려워서 아쉬웠어요."

 

두번째 내담자 ○○씨가 고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두 번째 내담자는 ○○씨다. ○○씨는 발달장애인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감정의 해소가 절실한 시기에 경기장애인인권포럼을 만나 올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날 집중상담에서 ○○ 씨는 친구와 관계를 이어나가는 법에 대해 강사들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나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Q.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고민을 털어놓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전에는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법을 몰라서 혼자 울기만 하고 심한 우울감을 느끼곤 했거든요. 감정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왔어요. 처음에 왔을 때는 어색하고 얼떨떨했는데 조금씩 내 감정에 대해 이야기할 줄 알게 됐어요. 그러고 나니 작년에는 우울감이 너무 심해져서 2번이나 입원했었는데 올해는 그만큼 심하게 우울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Q. 이번 워크샵에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워크샵에 엄마랑 같이 가거든요. 여태까지는 엄마한테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 '이만큼 힘들다' 솔직하게 다 털어놓아본 적이 없어요. 공감받고 싶은 것보다 엄마가 나 때문에 마음 아프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더 커서요. 이번 워크샵에서 제가 주인공이 되어서 1인극을 할 예정인데 그때 엄마한테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다 보여주고 싶어요."

 

연극인인 세 명의 강사진, 경기포럼의 홍재희 사무국장은 매년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이들이 자신의 틀을 깨나갈 수 있도록 장을 열어준 사람들은 바로 세 명의 강사진, 그리고 경기포럼 홍재희 사무국장이다. 3년째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도 매년 치열하게 기획 회의를 한다는 그들과 대화를 나눠보았다.

Q. 올해로 3년째 성인 발달장애인 감정 수업을 진행해오신 걸로 알고 있어요. 매년 프로그램 기획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일단 해마다 센터하고 의견을 모아서 올해의 목표를 세워요. 매년 달라지지 않는 대전제 하나는 '감정에 대해 이해한다'예요. 나아가 감정과 친해지고, 감정을 응용하는 법을 깨닫게 하는 게 목표죠. 올해는 '자립생활'이란 키워드에 중점을 뒀어요. 스스로 꾸려나가는 일상 속에서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해소하는 법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자 했습니다. 또 기획회의를 할 때 훈렬 씨처럼 이미 수업을 들었던 분들한테 피드백을 받으려고 해요. 그 의견들을 반영해서 큰 틀을 세우고, 세부적인 내용은 유연하게 수정하는 편이에요.

Q. 훈렬 씨한테 듣기로는 수업에 참여자 의견을 그때그때 반영할 때도 있다고 하던데요.

발달장애인 분들과 함께하는 수업에서는 특히나 융통성이 중요하더라구요. 왜냐하면 발달장애의 정도나 행동 범위를 '스펙트럼'이라고 하는데, 구성원 간의 스펙트럼의 편차도 크지만 개개인의 스펙트럼도 상당히 넓고 예측하기 어렵거든요. '꼭 정한대로만 해야 돼'라고 강사들이 고집을 부리면 결국 아무도 그 수업에 대해 만족하지 못해요. 강사도, 참여자들도요. 최대한 참여자 분들이 원하는 내용을 반영하려고 노력하죠.

Q. 개개인의 스펙트럼을 파악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특히 갑자기 공격적인 행동을 할 때가 가장 당황스럽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몰라 난감했죠. 그래서 회의를 굉장히 많이 해요. 어느 분이 가끔 도전적으로 행동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요. 또 어느날은 중증장애인으로 알고 있던 분이 경증 정도의 성향을 보이는 날도 있어요. 활동 중에 그 차이를 느끼고 회의에서 공유하죠.

Q. 강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아무래도 참여자들의 긍정적인 변화를 포착했을 때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런 순간이 있었나요?

처음에는 자기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기 낯설고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뭘 따라서 해보자고 해도 안 하고, 의견 표현도 전혀 안 하시고... 몇 주 동안 진전이 없다고 생각한 적도 많은데 각자 자기 속도대로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열어나가고 있었나봐요.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이게 좋아요', '저건 싫어요' 본인 소견을 표현하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주기도 하셨어요.

○○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강사진들. ⓒ소셜포커스

Q. 소극적인 분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비장애인들은 암묵적인 사회적 약속을 바탕으로 말하고 행동하는데, 여기 모인 사람들은 바로 그 약속에 적응하기 어려운 분들이잖아요? 그래서 여기에서만큼은 우리끼리 새로운 약속을 해나간다고 생각해요. 참여자들이 편안하게 느끼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적절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같이 찾아가는 거예요.

Q. 선생님들도 계속해서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 나가셔야겠네요.

맞아요. 항상 시행착오의 연속이에요. 여러가지 방법을 구상하고 시도해보고 '이런 방식은 안 통하는구나',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깨우치는 거죠. 그리고 그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정답을 갖고 수업에 임하면 원하는 결과가 안 나왔을 때 더 괴롭거든요.

워크숍 당시 사진. 참여자 중 한 명이 무대에 올라 자신의 일기를 읽어나가고 있다. ⓒ소셜포커스 (사진=일산포럼)

Q. 워크샵 메인 코너를 1인극 형식으로 꾸미신 이유가 있을까요? 또 무대 위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저희가 다 연극하는 사람이다보니 결국 저희한테 익숙한 방식으로 결과물을 도출하려고 한 거예요. 저희는 잘 포장하는 역할을 하는 거고 안에 있는 내용물들은 참여자 분들이 활동을 통해 얻어낸 것들이겠죠.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무대 위에서 풀어낼 거고, 그 모습을 보면서 가족 분들이 자녀에 대해 몰랐던 점을 발견하길 바랐어요. 가족관계를 긍정적으로 이끌어나갈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경기포럼이 참여자들의 추억을 담은 포토북을 사진집을 제작했다. ⓒ소셜포커스

경기포럼은 프로그램을 마치며 참여자들에게 추억을 선물하기 위해 사진집을 준비했다. 프로그램을 하며 만들었던 추억은 참여자들과 그 가족의 마음 속에 아주 오래 남아있을 것이다.

워크숍 당시 단체사진. ⓒ소셜포커스 (사진=일산포럼)

* 경기포럼이 진행한 워크샵은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시행 이전에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진행되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