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시선으로 범죄 영화 다시 보기
피해자 시선으로 범죄 영화 다시 보기
  • 김희정 기자
  • 승인 2021.02.08 15:34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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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FOCUS –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사회적 약자’가 영화 속 피해자로 쉽게 소비되는 현실
16편의 범죄 영화와 함께 우리 사회 소외된 약자 들여다보기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 이수정, 이다혜, 최세희, 조용주 저 │민음사│18,000원

“범죄를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는 매체는 관심 없습니다. 여성이나 아동 같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범죄 영화를 다룬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범죄 심리학자 이수정 박사가 네이버 오디오클립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섭외 전화를 받고 처음 내뱉은 말이다. 이후 <씨네21> 이다혜 기자가 합류하면서 시작된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은 네이버 오디오클립 문화 예술 분야 청취율 1위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고, 방송 내용을 추려 2020년 봄, 민음사를 통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다.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은 「적과의 동침」, 「곡성」, 「미저리」, 「살인의 추억」, 「기생충」, 「조커」 등 국내외 유명한 범죄 영화 총 16편을 다룬다. 영화 줄거리에 대한 소개와 함께 영화 속 범죄 유형과 심리를 독해하고 분석한다. 영화와 유사한 실제 사건과 인물도 함께 소개한다. 사이비 종교를 소재로 하는 영화 「사바하」를 다루면서 일본의 ‘옴진리교’, 한국의 ‘아가동산’을 이야기하고, 디지털 성범죄를 다루는 「걸캅스」에서는 ‘버닝썬 사건’과 ‘정준영 사건’을 함께 조명하는 식이다.

이수정 박사는 수많은 범죄 영화에서 여성이나 아이들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단순히 피해자로 소비되고 마는 현실을 지적하며 “범죄에는 틀림없이 고통당하는 피해자가 실존”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내내 영화 속 피해자가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임을 상기시키고, 우리 스스로 그리고 우리 사회가 제도적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목소리를 높인다.
 

가정 폭력, 아동 학대, 스토킹, 디지털 성범죄, 왜 미리 막을 수 없는가

책 1부에서는 「가스등」, 「적과의 동침」, 「돌로레스 클레이번」 3편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가정 내 폭력을 돌아본다. 이수정 박사는 “현재 한국 가정 폭력 처벌법의 기본적인 목적은 가정을 보호하는 것이지 피해자의 생명권 보호가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반의사 불벌죄(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 표시를 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가 존재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부부간 폭행, 아동 학대가 방치되는 이유가 “여전히 가정 유지가 제일 중요하다는 가부장적인 사고”에 있음을 지적한다.

2부에서는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왜곡된 믿음에 복종할 수 있는지, 권위에 대한 복종, 종교에 대한 그릇된 신념 등을 살펴보며, 3부에서는 「미저리」, 「걸캅스」, 「살인의 추억」 3편의 영화를 통해 스토킹, 디지털 성범죄 문제의 심각성을 돌아본다. 많은 국가에서 아동 유인 방지법이 존재하지만, 우리나라는 온라인상에서 성매매를 목적으로 아이를 유인하는 행위를 하더라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함정 수사도 할 수 없다.

4부는 영화 「기생충」, 「숨바꼭질」, 「조커」를 소개하며 빈곤 계층 혐오와 계층 간의 갈등을 다룬다. 영화 「숨바꼭질」에서 빈곤층이나 노숙자, 정신 질환자,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공포를 보여주며 사회적 약자가 수상쩍은 사람으로 묘사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 이수정 박사는 “그게 가장 큰 해악입니다. 시선이 과도하게 단정적이고, 인종, 성별, 계급에 대한 차별을 은연중에 유발할 수 있습니다.”라고 지적한다.

마지막 5부에서는 청소년 가출팸을 소재로 한 「꿈의 제인」, 성범죄 수사 과정을 다룬 미국 드라마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팔려 가는 소녀들」을 통해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 기반 성매매 실태를 고발하고, 성범죄 ‘피해자다움’에 대한 그릇된 통념을 이야기한다. 또한 아이들을 착취해 금전적인 이득을 올린 불법 채팅 앱 업체들이 IT 재벌이 되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래도’ 천천히 나아지는 사회
범죄가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날을 향해

책의 시작은 흥미로운 범죄 영화 줄거리지만 그 끝은 현실에 존재하는 피해자와 맞닿아 있다. 나아가 실재하는 범죄의 선제적 예방과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2020년 3월 31일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1쇄가 발간된 이후 약 1여 년이 지났다. 이수정 박사는 책과 각종 방송, 인터뷰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성년자 의제 강간 연령’의 상향을 주장해왔다. 미성년자 의제 강간 연령은 지난해 성폭력처벌법이 개정되면서 마침내 13세에서 16세로 상향됐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던 스토킹 처벌법이나 아동 학대를 사전에 예방하거나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논의 역시 활발해졌다. n번방과 아동 학대 사건 등 국민 모두를 경악게 한 사건 이후라는 것이 뼈아프지만 이수정 교수가 ‘그래도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다.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은 시즌 2를 시작하며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여전히 순항 중이다. 구독자 수는 3만 명에서 9만 명으로 늘었다. 오디오 클립으로 시작해, 책, 영화까지 다가오는 설 연휴에 즐길만한 콘텐츠로 안성맞춤이다.

[소셜포커스 김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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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 2021-02-10 12:14:57
옴마야.. 호기심 자극하네예... 서점 레스고~^^

진*훈 2021-02-08 16:56:20
기사만 읽어도 너무 재밌네요! 찾아서 읽어봐야겠어요.

노*규 2021-02-08 16:13:45
이전 기사에서도 느낀 건데 책을 읽고 싶게끔 소개해주시네요.
좋은 책 많이 공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