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선량한 차별주의자’ 입니까
당신은 ‘선량한 차별주의자’ 입니까
  • 김희정 기자
  • 승인 2021.03.22 0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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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FOCUS - 선량한 차별주의자]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는 세상으로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저│ 창비 │ 15,000원

최근 미국 애틀랜타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으로 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해 8명이 숨졌다. 미국 내에도 이 사건을 ‘인종 차별 증오 범죄’로 다루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호주에서 유학한 지인은 아시아계 학생들에게는 말조차 걸지 않던 몇몇 대학교수의 태도에 받은 상처를 털어놓았다. 한국에서 ‘다수’였던 이들은 물리적 국경을 넘자 ‘소수’이자 차별의 대상이 되었다.

굳이 국경까지 넘지 않아도 평범한 일상 속 차별은 흔하다. ‘우리 아이가 빌라에 사는 아이와 어울리지 않으면 좋겠어요’, ‘양쪽 부모 다 있는 집이랑 친구해야지’, ‘아파트 내 임대동은 외관을 다르게 하고 출입 동선을 분리해 주세요.’ 이처럼 가정 혹은 거주 형태에 따라서도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마주한다.

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 김지혜 교수는 혐오 표현에 관한 토론회에서 무심코 ‘결정장애’란 표현을 썼다가 한 참가자로부터 왜 그런 표현을 썼는지 질문을 받았다. ‘장애’를 붙여 표현하는 건 ‘부족함’, ‘열등함’을 의미하고, 장애인은 늘 열등한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김지혜 교수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차별이 더 이상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며, ‘선량한 마음’만으로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자각에서부터 시작됐다.

“사람은 대체로 평등을 지향하고 차별에 반대한다.” 차별은 부당한 것이고, 평등을 지켜져야 하는 중요한 가치라고 배웠고, 선량한 시민들 대부분 ‘관념적으로’ 동의한다.

그래서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차별은 차별로 인해 불이익을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차별이 구조화된 사회에서는 개인이 행하는 차별 역시 관습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내가 차별을 하고 있다고 쉽게 생각하지 못한다.

‘차별’을 자각했다면,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다양성’에 대한 포용이다. ‘너는 우리와 달라’와 같은 말에 담긴 비주류를 지칭하는 의미의 ‘차이’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상대적인 관점의 ‘차이’다. 저자는 특정한 사회적 맥락에 따라 누구나 ‘차이’를 가진 ‘소수’의 위치에 설 수 있음을 이해하고, 인간을 본질적으로 가르는 차이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발간 1년도 지나지 않아 10만 부 판매를 돌파, 기념 리커버판이 출간됐다. 잇따른 아동 학대 사건, 성소수자의 자살 등의 소식으로 ‘차별금지법’ 등 사회적 약자 보호에 대한 논의도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 나라의 성숙도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불평등한 세상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는 저자의 제언처럼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통해 차별 감수성의 온도가 높아지고, 개인의 다양성이 존중받는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바란다. 

[소셜포커스 김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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