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식개선 기여… ‘다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
장애인식개선 기여… ‘다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
  • 서인환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8.12.0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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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연 작가 두 번째 서적 출판

류승연 작가는 한국일보 소속 국회 출입 정치부 기자로 생활하다가 사내 결혼을 하고, 쌍둥이 아이를 임신하여 출산 과정에서 발달장애 아이를 갖게 됐다.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장애인 부모로서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장애아이의 치료에 매진했고, 장애현실에 눈을 뜨면서 한국일보에 칼럼리스트로서 장애인식개선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류승연 작가 입장에서는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에 이은 두 번째 책이지만, 셈터 출판사 입장에서는 아우름 시리즈 서른 두 번째 출판물이다. 류승연 작가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와 책의 내용을 어울려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말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이 책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장애인에 대한 시선이 얼마나 힘들게 하고 주눅 들게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여러분은 사람들이 주시하고 따라다니는 시선이 있다면 어떻게 느낄 것인지 에를 든다. 장애인에 대한 복지 예산은 장애인을 둔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문제이므로 예산 국가책임제라는 개념 도입이 필요하다고 ‘장애인부모연대’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장애는 사회에 통합되지 않고 수용되지 않을 경우 고립된 섬에 사는 것과 같아서 ‘장애도’에 산다고 표현한다. 이 섬을 벗어나려고 하다가 표류하여 죽을 수도 있고, 섬에서는 존재의 가치나 존엄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마치 소록도의 한센인 마을에 장애인이 모여 사는 것을 연상시키며 통합이 아니면 통제의 대상이 되는 비극이 온다고 말한다.

함께 살아야 하는 공존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먹이사슬 사회를 말한다. 장애인과 가까이 하면 피해를 입을까 부모들은 학생시절부터 어울리지 말라고 하지만, 이는 먹이사슬 사회를 배우게 해 누구에게는 ‘갑’이지만, 언젠가 또는 누군가에게는 ‘을’이 되어 먹이사슬의 무한한 순환구조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공존의 방법으로 장애인을 도움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하거나 장애를 극복할 문제가 아니라는 의식을 먼저 가져야 한다. 편견 없는 동등한 사람으로 장애인을 존중하고 상호 노력해야 한다고 작가는 공존의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은 위험한 존재인가? 다른 장애 유형은 위험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발달장애인은 위험하여 가까이 하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발달장애인의 상동행동은 스스로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행동일 뿐, 그리고 개별적 표현방식일 뿐 그러한 생각은 편견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발달장애인에 대해 많은 오해를 가지고 있는데, 알아듣지 못한다고 여긴다. 상호작용이 부족하여 표현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알아듣지 못한 것은 아니다. 발달장애인을 사람 흉내를 내는 존재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걱정 없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정할 수 없는 몸 안에 갇혀 산다고 해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누구나 몸과 정신을 완전히 통제하고 조정하는 사람은 없다.

작가는 장애인을 가진 가족은 불행한가라고 질문한다. 힘들지만 불행한 것은 아니며 나름의 성취감과 행복이 있다. 주의산만으로 지하철에서 혐오물이 되어버린 경우, 등교전쟁 등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아는 만큼 이해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

작가는 장애인을 대상화하는 것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고정관념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 주도자가 아닌 대상물 취급을 받는 것, 도움의 대상이 되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서로 어우러져 적응해 가는 것이 장애 이해 교육의 목표여야 한다고 말한다. 대상화가 편견이며, 선의의 특별대우도 낙인이다.

쌍둥이 장애인 누나인 딸이 장애인 모임에서 ‘장애인과 뭐 하고 놀아?’, ‘누가 장애인 아니랄까봐’라는 말을 하자 작가는 가족인 딸이 이런 말을 하다니 하고 놀라 꾸짖었는데, 딸은 장애인과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하는지 질문을 했을 뿐이고, 장애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면서 ‘장애인 아니랄까봐’라는 자연스러운 말이 왜 문제인가라는 반문을 듣고 나니 딸이 자신보다 더 감수성이 있다고 느껴졌다는 고백은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다.

장애 개념 자체에는 가치 판단이 없으나 사용하면서 가치판단이 들어간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장애인 행동이 변태로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자주 접할 기회만 있었어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때로는 눈감아주고 반복경험을 하도록 기회를 주기 바란다는 당부도 한다. 서로에게 익숙한 풍경이 되어야 한다는 희망도 말한다.

작가는 장애인의 자세유지를 위한 보조기가 특수학교에서는 보조의자라고 하여 통제수단으로 쓰임을 고발한다. 교사의 손이 부족하면 한 사람씩 서비스하기 위해 묶어서 안전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이는 잘못이다. 사람들은 발화능력을 나이로 여기며 존중하는 것 같은 존댓말을 사용하지만 사실은 자기결정권과 인격을 무시하는 행동이 될 수 있다고 꼬집는다.

작가는 방송이미지에 대하여도 이야기한다. 조롱, 극복, 희생, 엘리트 이미지, 성공 사례와 미담 사례 등은 모두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파한 이미지들이다. 노골적 비하발언을 피해 최근에는 ‘동네 바보 형’과 같이 세련된 표현을 사용하지만 이 역시 좋지 않은 용어이다. 장애는 개인적 특성이며 다름은 틀린 게 아니다.

장애인을 피하라고 가르치는 선을 긋는 엄마는 자식을 잘못 가르치는 것이며 다양성을 배울 기회를 뺏고 이타심을 잃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장애아를 공공의 적으로 보기보다 각자 자식에 더 치중해야 한다. 비정한 사회에서는 학부모들이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모여서 장애아이를 가장 먼저 적으로 여기지만 그런 사회에서는 장애인이 사라지면 그 다음은 자기들끼리 능력의 크기와 부를 재며 또 다른 먹이를 찾으며 부산행의 존비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노화는 나이에 의해 기능저하를 말하는데, 누구나 다 늙어가는 것이므로 예비 장애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성인 발달장애인이 갈 곳 없는 상황에 복지법은 난공사라 표현한다. 그리고 장애인 교육도 비판한다. 무늬만 통합인 통합교육이라며 통합 환경 없이 맞춤형이나 개별화가 허울뿐인 특수교육이 실시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복지는 국민의 부담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보험이다. 약육강식의 갑질의 문화와 상대를 비교하며 경쟁하는 문화, 다르면 소외시키는 문화에서 벗어나 장애 노동권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직종 아이디어의 실현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작가는 마지막으로 장애가 아니라 삶을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보건기구의 장애개념인 ICF를 소개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활동, 참여, 환경, 개인 특성과 취향으로 건강을 평가하는 것으로, 신체적 장애를 넘어 종합적으로 개인을 봐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작가의 글은 작가 개인의 생각을 정리하였다고 논평한 기사들도 있는데, 일반화되거나 장애인식개선교육의 교재에 나올 법한 이미 객관화된 내용들이다. 다만 그것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해하기 쉽도록 잘 설명하고 설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쌍둥이를 낳은 과정에서 먼저 딸을 낳기 위에 너무 힘이 들어 잠시 쉰다는 것이 장애아이를 낳게 된 것 같다고 말하였다. 여러 산부인과 의사들의 의견에 따르면, 한 아이가 태어나고 쌍둥이 둘째가 태어나기 전 산기가 사라지는 경우가 간혹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장애의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작가의 해석에 의한 장애아를 가진 원인이지 의학적으로 밝혀진 원인은 아니다. 혹 이 서적이 장애인식개선 교육 교재로 활용되면서 이것이 장애원인인 것으로 믿어 버릴까봐 하는 지적이다.

이 책을 장애인식개선 교육 교재로 사용하기에는 두 가지 아쉬운 곳이 있다. 장애인복지법을 난공사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왜 난공사라고 하는지 구체적 예를 충분히 들면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자면 갖가지 서비스를 나열만 하였지 보장성이 약하다거나, 짜깁기로 여러 가지 권리선언과 서비스 근거를 언급하지만, 실효성이 약하다는 등의 설명이 있어야 했다. 단지 성인 발달장애인이 갈 곳이 없다는 한 가지 예로 난공사라고 한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다음은 ICF(세계건강분류)에 대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1980년 ICIDH라는 장애분류로 장애 개념을 설명하였는데, 손상이 기능 저하를 가져오고 그것으로 사회적 불리가 온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이미 장애는 개인적 손상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임을 천명하고 있었다.

ICIDH-2(1997년)에서는 기능과 구조의 장애와 활동과 참여 정도를 장애개념으로 보았다. 2001년 ICF에서는 장애개념을 건강과 동일시하면서 ICIDH-2에 사회환경적 요인과 개인적 요인을 추가하여 장애개념을 만들었다. 작가가 장애를 말하는 신체기능과 주조를 벗어나 건강이라는 종합적으로 장애 개인을 이해하는 것이 ICF라는 것은 맞지만, 이는 구조와 기능은 장애이고, 이제는 장애개념이 아닌 건강으로 장애를 대체하여 확대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건강을 장애의 개념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신체적 장애와 사회적 장애 등의 장애개념들이 장애와 건강이라는 설명으로 하다 보니 장애는 신체적인 것이고, 사회적인 것이 건강인 것처럼 오해할 소지가 있어 보인다.

서인환 객원논설위원(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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