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도 못하게 하실 건가요?"… 공직선거법 개정 요구 이어져
"대통령 선거도 못하게 하실 건가요?"… 공직선거법 개정 요구 이어져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1.04.19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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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전동휠체어 타고 올라가게 벽돌이라도 대달라" 부탁도 거절
"걸어가서 투표할 수 있지 않느냐"… 발달장애인 '2시간' 걸려 혼자 투표
장애인 유권자들 "내년 대선, 지방선거는 부디…"
장애인 유권자들이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라며 19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진정서를 제출하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예지 기자] = 4·7 재보궐 선거가 끝난 지 약 열흘이 흐른 19일 오후, 장애인 유권자들은 또다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앞에 모였다.

장애인 유권자들이 "모든 장애인이 각 장애유형에 적합한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선거관리 지침을 개정하라"고 요구해왔으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앙선관위)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장애인 참정권 침해 사례는 지난 4·7 재보궐 선거에서도 이어졌다. 지체장애인들은 투표소가 1층에 있더라도 단차 때문에 입장을 못 했고, 발달장애인들은 가족 등 동행인의 선거조력을 받지 못해 투표권을 포기해야 했고, 시각장애인들은 점자공보물 면수 제한으로 비시각장애인과 동일한 정보를 전달받지 못했다.

중앙선관위가 계속해서 장애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2022년 3월 대통령 선거와 6월 지방선거에서도 같은 일들이 반복될 것은 불보듯 뻔한 상황이다.

이에 시각, 청각, 지체, 자폐성 장애인 각 1명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문재인 대통령과 박병석 국회 의장, 이외에 각 정당 원내대표를 상대로 차별진정을 제기하고 이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인권위가 정부와 국회, 각 정당에 공직선거법 개정을 시급히 권고해달라고 요구했다.

중앙선관위가 장애인차별금지법과 헌법을 위반해 엄연한 국민인 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직선거법 위반이 아니다"라는 입장만 고수하는 이상, 공직선거법 개정이 유일한 장애인 참정권 보장의 길이라는 입장이다.

지체장애인 당사자 김진우 활동가는 20cm짜리 단차 때문에 투표를 포기해야 했다. ⓒ소셜포커스

전동휠체어 이용자인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김진우 활동가는 "20cm짜리 턱 때문에 선거를 할 수 없었다"고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김진우 활동가는 "턱 앞에 벽돌이나 뭐라도 놓고 올라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무시 당했다. 투표소는 1층에 위치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침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발언했다.

이어 "국가가, 정부가 장애인을 과연 무엇으로 보는지 의심스럽다. 장애인도 국민이기에 당당하게 참정권을 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당사자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남희 활동가는 "점자공보물 면수가 2배 늘었다고 해서 완벽히 동등한 정보를 제공받지는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남희 활동가.
ⓒ소셜포커스

박남희 활동가에 따르면 글자로 된 공보물에는 있지도 않은 내용이 점자공보물에는 들어가 있다든지, 공보물을 담은 유에스비 중 하나는 오류로 인해 포맷되어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등 시각장애인을 위한 공보물 자체에 문제가 많았다. 그나마도 유에스비 공보물은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12명의 서울시장 후보 중 단 4명만 배포했다.

선거 당일에도 문제는 이어졌다. 선관위 측이 투표소에 투표보조용구를 미리 배치해놓지 않아 박남희 씨는 선거관리위원들이 우왕좌왕 보조용구를 준비할 동안 멍하니 기다려야만 했다.

발달장애인 선거조력인 허용 지침이 지난해 총선 전 삭제된 뒤 개선되지 않아, 발달장애인 혼자 2시간이 걸려 투표한 사례도 있었다. 

해당 사례가 있었던 마포구의 한 투표소 선거관리위원은 발달장애인 유권자가 기표소에 어머니와 함께 들어갈 수 없도록 막았다. 어머니가 "아들은 20살 이후 항상 내 도움을 받아 투표해왔다", "아들은 수능 때도 3명의 선생님의 도움 아래 시험을 치렀다"고 부탁했으나 선거관리위원의 답은 "지침상 불가능하다"가 전부였다.

발달장애인의 어머니에게는 중앙과 마포구선관위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문의하라고 한 뒤, 선관위 주무관에게는 "(발달장애인 유권자가) 혼자 걸어가서 투표할 수 있다"고 신체적인 장애가 없다는 사실만을 전달했다. 그 말을 들은 담당주무관은 "기표소에 둘이 들어갈 수 없다"고 답변했을 뿐이다. 

이어 해당 선거관리위원은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그 어머니를 임시투표소로 데려가 "어떻게 투표하는지 알려주고 혼자 투표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던 어머니는 반복해서 투표 방법을 알려주고, 기표소 밖에서 전전긍긍 아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여러번 알려주었음에도 투표용지를 접지 않고 투표함에 넣으려고 하는 아들에게 용지를 접으라고 일러주어야 했다. 그렇게 2시간이 걸려서야 발달장애인 유권자는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저녁 약속을 취소해야만 했다.

심지어 장애인 유권자가 선거조력인을 필요로 한다는 이유로 선관위에 제출할 별도의 '확인서'를 요구하는 투표소도 있었다.

한국피플퍼스트 김대범 활동가.
ⓒ소셜포커스

한국피플퍼스트 김대범 활동가는 "선관위에 제출할 확인서가 필요하다며 장애인 당사자의 이름과 생년월일, 동반자의 이름 등 개인정보를 수집했다"며 "선거를 하기 위해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는데 꼭 확인서까지 제출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애인 유권자가 권리를 행사하는데 그것을 선관위가 확인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며, 필요 이상의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가 장애인 차별이 아니냐는 것이다.

김대범 활동가는 "선관위는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시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도움을 줘야하는 곳인데, 자신들이 마치 갑인 듯 행동하며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은 장애인을 동등한 국민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조속한 공직선거법 개정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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