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강한 장애인들의 가죽공예 작품, 한 번 보실까요?

'꿈틀이 공작소' 가죽공예 수업을 가다! 가지각색 카드지갑, 윷놀이판, 팔찌도 미래의 가죽공예 예술가를 꿈꾸며... 가죽공예 4-5년 최고참과 기초반의 케미 전원 탈시설 장애인으로 최종목표는 스스로 일자리 창출 "경제 자립 꿈꿔요"

2020-10-16     박지원 기자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두꺼운 가죽에 색을 입히고, 문양을 찍어내고, 바느질을 하면 완성되는 나만의 작품. 바로 가죽공예다. 가죽이 주는 분위기 때문일까. 서울시 영등포구 당산동에 위치한 누리공방은 유달리 가을을 먼저 맞이하고 있었다. 그 곳에서 가을의 따뜻함을 가진 진석 씨와 소년같은 얼굴을 한 승우 씨를 만날 수 있었다.

김진석 씨(40대/뇌병변장애)는 벌써 가죽공예 4년차에 접어든 베테랑이다. 오늘 그가 만들 것은 '카드지갑'이다. 바느질을 해야 하는 고난이도의 작품인데 그의 꼼꼼한 성격 덕분에 능숙하게 해낸다고 한다. 유달리 말수가 적은 그였지만 오늘 인터뷰를 위해 힙합 모자를 쓰고 왔다며 수줍게 자랑을 했다.

그는 탈시설 후 현재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이음센터)에서 지원하는 생활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센터의 추천으로 가죽공예를 시작하게 된 그는 "원래도 가죽공예에 관심이 있었어요. (시설에 있었을 때) 자물쇠, 열쇠 등 광내는 작업을 많이 했거든요"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오늘 그가 칠할 색깔은 '갈색'이다. 손가락에 장갑을 끼고 차분하게 가죽에 물을 들여간다.

진석 씨의 맞은 편에는 넓다란 윷놀이판에 신나게 칠을 하는 진승우 씨(30대/지적장애)가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키티와 파스텔 톤을 좋아한다는 그는 9월에 열린 기초반 수강생 중에서도 고참에 속한다.

올해 7월에는 장애인식개선을 위해 프리마켓에서 직접 만든 가죽공예 작품들을 판매했다. 승우 씨는 "그때 저희 아버지가 오셔서 오렌지색 가죽 윷놀이판을 사가셨는데 그게 마침 딱 제가 만든 거였어요. 신기하게 그걸 고르시더라구요. 기분이 정말 최고였어요. 오늘 만든 윷판으로 아버지랑 윷놀이도 할거에요. 제가 윷놀이를 잘해서 제가 항상 이겨요"라며 뿌듯해했다.

이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은 '꿈틀이 공작소'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2017년부터 이음센터에서 간헐적으로 시행하다가 지난해 한국장애인재단의 '2020년도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선정된 후 상설 운영하게 됐다. 한국장애인재단은 수요가 높고 필요성이 있음에도, 예산 등의 문제로 열악한 환경에서 장애인의 사회참여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장애인 단체의 프로그램을 선정해 지원하는 사업을 매년 실시하고 있다.

이음센터의 김은환 사회복지사는 "이번 프로그램의 최종 목표는 '일자리 창출'이에요. 가죽공예 작가로 양성을 해서 제품 판매가치까지 높일 수 있게 훈련하고 있어요"라며 "지난 7월에 경험을 쌓고자 직접 만든 가죽공예제품과 수제청을 가지고 홈캉스 프리마켓에 참여했는데, 다들 손님 응대도 잘하시고 너무 즐거워하셔서 기회가 되면 또 참여하려 해요"라고 말했다.

한편 '꿈틀이 공작소'는 현재 기초반 4명, 제작반 4명으로 나뉘어 주1-2회 운영되고 있다. 수강생 모두 탈시설 장애인으로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경제적 여건을 마련하고자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

올해 기초반에 처음 입성한 김진균(30대/뇌병변장애) 씨는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수업에 임하고 있다. 그날 그날 만들고 싶은 게 다르다는 진균 씨는 오늘 팔찌와 나뭇잎 장식을 골랐다. 원하는 모양틀을 골라 가죽에 물을 묻힌 후 망치로 두들기면 예쁜 문양이 새겨진다. 그런데 오늘따라 망치질이 영 시원치가 않다. 이내 강사님이 "오늘 반찬이 부실했나~? 뭐 드셨어?"라며 장난을 쳤다.

진균 씨가 만드는 팔찌에 새겨진 "Disability Pride"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장애를 당당하게 여기는 자부심을 표현하고 장애인식개선에 기여하려는 뜻을 갖는다. 진균 씨는 원래 체육 프로그램 '보치아'에 참여하다가 코로나 사태로 복지관이 휴관하면서 가죽공방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진균 씨는 "집에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일자리에 도움이 될까해서 나오게 됐어요. 처음에는 자신이 없었는데 지금은 재밌어요"라고 소감을 말했다.

역시나 가장 분주한 건 강사였다. "망치질할 때 손 조심하세요~", "시간 많으니 천천히 하셔도 돼요~", "다 하셨어요~? 이제 다음 단계하셔야죠~" 오늘은 기초반과 제작반이 함께 있어 다른 날보다 더 바쁜 모습이다. 장애정도에 따라 수강생이 만들 수 있는 작품과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개별 수강생에 맞게 교육을 해야 한다.

심상억 강사는 5년 전 공방을 차린 후 이음센터와 오랜 기간 함께 가죽공예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심 강사는 "처음 장애인분들과 수업을 시작할 때 쉽지만은 않았어요"라며 "어쩔 때는 고집을 부리다가도 차분히 설명해드리면 또 수용하세요. 무엇보다 착실하고 요령도 안 피우고 열심히 하시니까요. 앞으로 지원이 더 확대돼서 일자리까지 연계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가죽에

느즈막히 지각생 김대규(40대/지적장애) 씨가 들어왔다. 아침밥을 먹고 오느라 늦었다는 그는 가죽공예만 5년차인 최고참이다. '녹색'을 유달리 좋아해서 항상 녹색 작품만 만드는 그였다. 대규 씨의 작품 상자에는 푸릇푸릇한 작품들이 한가득이다.

대규 씨는 학대피해소에서 나와 현재 지역사회로 자립을 마쳤다. 경계성 장애로 낯을 많이 가리지만, 청개구리같이 반항하는 개구쟁이 수강생이었다. 오늘 늦어서 마음이 다급했는지 천천히 해야 하는 색칠 작업을 급하게 하다가 핀잔을 들었다. 망치질을 너무 세게해서 가죽이 망가지자 또 한 소리를 들었다. 시무룩할 법도 한데 꿋꿋하게 작업을 하는 그에게 잘한다고 칭찬을 하니 "저는 원래 잘해요"라고 맞받아친다. 모두 웃음보가 터졌다.

코로나로 인해 '꿈틀이 공작소' 수업도 휴식기를 가져야 했다. 제일 먼저 윷놀이판을 완성하고 수다를 시작한 승우 씨는 "코로나 때문에 잘 못 나가는데 집에 있으면 허전하고 분위기가 영 별로에요. 한강공원가서 운동도 하지만 공방 오는게 제일 재밌어요. 특히 팔찌 만들 때요! 다음 주에는 공공일자리 사업 참여자들이랑 할 윷놀이판을 더 크게 만들거에요"라고 신나게 말했다.

수업의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는 김은환 사회복지사는 '꿈틀이공작소' 사업으로 구상하는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했다. "아직은 1년차라 시작 단계이지만 사업이 끝나는 3년차까지 온라인 판매, 프리마켓, 사회적 기업까지 할 수 있는 게 정말 많아요. 장애인이 스스로 일자리를 창출해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갈 계획입니다. 미래의 가죽공예 작가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라며 당부의 말을 전했다.

심 강사의 손길로 어려운 마무리 작업까지 마치자 완성품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밋밋했던 소가죽에 장애인들의 손길이 닿자 멋진 수제품으로 변신하는 과정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기념 사진을 찍자는 말에 모두 약속이나 한듯 오늘 만든 작품들을 들어올린다. 사진 속에는 미래의 가죽공예 작가들의 순수한 열정이 담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