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역 승강기 이동약자 제도적 우선이용 방안
전철역 승강기 이동약자 제도적 우선이용 방안
  • 조봉현 논설위원
  • 승인 2021.05.31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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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 엘리베이터는 장애인ㆍ노인 등 이동약자 위한 시설
이동약자의 우선 이용은 배려가 아닌 당연한 권리
누구나 이용할 수는 있지만 주객이 전도되어선 안 돼
타이완 전철역 승강기 이동약자 우선 대기선, 우리도 배워야

수원에서 수인선 역세권에 사는 필자는 수원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는 경우가 많다.

휠체어석이 있는 칸에서 내리면 가까운 곳에 환승 및 대합실로 통하는 승강기가 있다. 수원역에서 내리려고 준비할 땐 환승하려는 다른 사람들도 미리미리 차량의 출입문 쪽으로 몰리게 된다.

차량이 수원역에 도착하고 차량의 문이 열리면, 승객들은 승강기를 향해 경주를 하듯이 뛰어간다. 그리고 쫘악 줄을 선다. 물론 다수의 승객은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지만, 이동약자가 아님에도 굳이 승강기 앞으로 줄을 선 사람들이 제법 많다.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필자는 뛰어가는 사람들과 부딪히기라도 할까 봐 조심스럽게 접근하다 보면 항상 맨 뒤에서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승강기를 한두 차례 보내고 나서야 탑승 차례가 돌아온다. 필자 역시 환승 시간이 촉박할 때가 많지만, 재수가 좋은 날이라야 바로 연결되는 차량에 탈 수 있다. 간혹 휠체어를 타고 뒤에 나타나더라도 먼저 서 있는 사람이 길을 열어주는 고마운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자연스럽지는 않다.

장애인, 노인 등 이동약자들은 누구나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승강기 문제로 이러한 일을 자주 겪게 될 것이다. 꼭 수원역이 아니더라도 그러한 경우는 다른 역에서도 만날 수 있다. 특히 환승역에서 자주 발생한다. 필자와 같은 휠체어 이용자가 아니더라도 승강기 앞을 뛰어가는 경쟁에서 이동약자들은 언제나 뒤로 밀리 수밖에 없다.

지하철 승강기 앞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 이동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더 많다.
지하철 승강기 앞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 이동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더 많다. ⓒ소셜포커스

10여 년 전 대전의 어느 지하철역에서 일어난 일이다. 지하철 승강기에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휠체어를 탄 채로 추락하여 사망했다. 비장애인들이 먼저 승강기를 타고 출발해버리자, 뒤에 도착한 장애인의 휠체어가 승강기와 충돌했다. 승강기는 이미 떠나고 없는데, 승강기의 바깥문이 부서지면서 승강통로 사이로 추락한 것이다.

장애인용 승강기를 정작 장애인은 제 때에 이용하지 못하고, 비장애인이 먼저 타고 가버리는 것에 잠시 흥분이 되었을까? 결과는 끔찍한 사고로 이어졌다.

필자의 젊은 시절엔 전국의 지하철역 중에서 승강기를 갖춘 곳이 별로 없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시절이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는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도 유모차를 사용하지 못했다. 초고령 노인들도 지하철 이용이 어려웠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었고, 장애인 등 이동약자의 이동권 평등에 대해서도 제도적인 뒷받침이 가능해진 지 오래됐다. 1997년도에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이동약자에 대한 대중교통 접근성도 개선하기 위해 전국의 지하철역은 승강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5년에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제정되었다. 그리고 아직 승강기 보급이 100%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이제 승강기가 없는 지하철역은 별로 없게 되었다.

지하철역 승강기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계층은 아무래도 노인층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사회에 들어섰고, 초고령사회를 향해 달리고 있다. 그동안 지하철역 승강기 설치를 꾸준히 시행해오지 않았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고령사회를 어떻게 맞이하였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러한 시설들은 어느 날 갑자기 정부가 알아서 해 준 것은 아니다. 법률을 제정하고, 실제 승강기의 보급을 늘리는 데는 장애인 단체와 장애인 권익활동가 등 수많은 사람들이 수년 내지 수십년을 두고 투쟁해 온 결과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역의 경사형 리프트에서 휠체어 장애인의 추락사 등 희생도 여러 차례 겪어야 했다.

지하철역 승강기 설치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간다. 특히 역사(驛舍) 건물이 이미 완공되어 오랫동안 이용해 온 경우에 추가로 승강기를 설치하려면, 역사를 신축할 때 설치하는 것보다 몇 배나 더 든다. 이러한 막대한 예산을 마련하는 데는 「장애인등편의법」이나 「교통약자법」 등 관련 법률의 뒷받침은 물론, 많은 장애인들의 머리띠를 둘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법률제정에도 수많은 활동가들의 피땀이 배어 있다.

지하철역 승강기는 대부분 장애인, 노인 등 이동약자를 위한 시설이다. 법적으로도 그렇고, 지하철역 승강기에는 이러한 내용의 안내표지가 붙어 있다. 어떤 역의 승강기에는 이동약자가 아닌 사람은 탑승을 금지하는 내용이 게시되어 있기도 하지만, 이동약자만 전용으로 이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동약자가 아닌 사람이라도 필요할 때 함께 이용하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

이동약자가 아닌 경우에는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 등 다른 대체통로가 많지만, 이동약자에게는 엘리베이터만이 유일한 층간이동수단이다. 따라서 당연히 이동약자가 우선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전철역에서 승강기마다 교통약자를 배려하자고 안내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배려가 아닌 당연한 권리에 속한다. 법률상으로도 그렇다.

필자는 몇 년 전 타이완을 여행하면서 그곳의 지하철을 이용한 적이 있다. 타이완의 모든 지하철역 승강기 앞에는 두 줄의 대기선이 있다.

한 줄은 하늘색이고, 한 줄은 흰색이다. 하늘색은 장애인·노인 등 우선이용자 대기선이고, 흰색은 일반이용자를 위한 대기선이다. 글자로도 그렇게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그 대기선은 하늘색이 흰색보다 항상 30cm 정도는 승강기에 가깝도록 그려져 있다. 안내선을 기준으로 대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선이용자가 먼저 탑승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시스템이 꼭 도입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휠체어 이용자나 노인 등 이동약자가 자주 겪게 되는 불편도 없어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동약자가 없거나 탑승자가 적어 남는 공간에 비장애인이 이용하더라도 떳떳한 기분으로 탈 수 있다. 탑승자가 많은 복잡한 역에라도 그러한 표시가 도입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지하철 승강기 앞에는 이동약자가 우선 이용하도록 배려하자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소셜포커스
타이완의 지하철 승강기 앞에는 우선이용자 대기선과 일반대기선이 구분표시되어 있으며, 우선이용자가 자동으로 먼저 타도록 구조화 되어 있다.
타이완의 지하철 승강기 앞에는 우선이용자 대기선과 일반대기선이 구분표시되어 있으며, 우선 이용자가 자동으로 먼저 타도록 구조화 되어 있다. ⓒ소셜포커스
승강기 앞의 공간이 좁은 경우에도 우선이용자 대기선은 일반대기선과 구분되어 이동약자를 먼저 유도하고 있다.
승강기 앞의 공간이 좁은 경우에도 우선이용자 대기선은 일반대기선과 구분되어 이동약자를 먼저 유도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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