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범법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라”
“너희가 범법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라”
  • 염민호 국장
  • 승인 2021.06.22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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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를 범죄자로 단정하는 행위 과연 정당할까?

지난 5월27일에 시작된 일이다.

이날 서체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H회사의 법률대리인이라는 ○○법무법인이 보낸 한통의 서류가 도착했다. 내용은 우리 협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려놓은 2016년 12월호 새보람신문 PDF 파일에 H회사의 서체를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PDF 파일의 서체 정보가 담겨 있다는 증거자료가 첨부되어 있었다. 즉, H회사의 법률대리인은 우리 협회가 H회사의 정품 서체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다는 증명을 하라는 것이었다.

문제가 된 내용을 확인해보니 2016년 12월에 외부 디자인업체에 의뢰해서 제작한 것으로, 협회가 H회사의 서체 프로그램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너무 구체적인 증거자료를 첨부했기에 혹시 더 큰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H회사의 법률대리인에게 연락을 해서 해당 내용을 문의했다.

돌아온 답변은 우리 협회가 정품 서체프로그램을 보유하지 않았다면 저작권을 침해한 불법행위가 되며, 민사 또는 형사상의 처분을 받는다는 것이다. 해결 방법으로 H회사의 정품 서체 프로그램 사용권(라이센스)을 구매할 것을 종용했다. 가격은 110만원을 제시했다.

너무 과도한 금액이라는 생각에 절충을 요청하자 “다른 사단법인의 경우 110만원을 모두 내고 문제를 해결했지만 특별히 영세법인으로 처리해서 66만원에 합의해주겠다”고 했다.

H회사의 법률대리인이 우리 협회를 인지하고 문제를 제기한 것은 확실한 증거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받은 서류를 정식으로 접수하고 H회사 정품 서체 프로그램 구매를 진행하기로 했다. 최종적인 합의 금액은 55만원으로 낮아졌다. 이 금액은 월말까지 비용을 입금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런데 5월 말일까지 업무를 보는 날은 이틀에 불과했다. 더구나 월 마감으로 분주한 상황이어서 지출을 위한 서류에 최종 결재를 받지 못하고 6월 첫날이 되고 말았다. 말일과 첫날에 입금 확인 및 입금을 독촉하는 전화가 계속 왔다. 현재 지출 결재가 진행 중이라는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압박을 해오는 것이 아닌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어 결재 진행을 중단하고 모든 서류를 챙겨서 ‘저작권위원회’를 찾아가 상담을 요청했다.

이 경우 외부업체에서 디자인을 한 것으로, PDF 파일에 H회사의 서체 정보가 남아 있다고 해도 저작권 침해가 아니며 정품 서체프로그램을 구매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날 여전히 H회사의 법률대리인은 “PDF 파일 등 E-Book 형태의 문서를 인터넷에 게시하는 경우는 저작권 저촉을 받는 것으로 빨리 입금을 해야 ‘사건종결처리서’를 발행할 수 있다”며 압박을 계속 했다.

그리고 한 주간이 지나 화요일이 된 날이었다. H회사의 서체를 판매하는 대리점 직원이 문제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며 시비를 걸어왔다. 몇 차례 전화 통화를 하면서 결국 언성을 높이고 전화를 끊게 됐다. 그 이후로는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설혹 이것을 계속 문제를 삼아 고소하거나 민사소송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H회사는 물론 이 회사 법률대리인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협회는 저작권을 침해하려는 고의성이 전혀 없었다. 특히 외주업체에 디자인을 맡긴 것은 종이신문을 인쇄하기 위함이었다. PDF 파일 역시 E-Book 형태로 협회 홈페이지에 게시하기 위해 정당한 가격을 지불했다. 또 우리 협회는 외주업체가 정품 프로그램 사용하고 있는지 일부러 확인해야 할 권리도 의무도 없었다.

평소에 각종 법률용어나 ‘민사 또는 형사상의 조치’와 같은 용어를 담은 문서를 접해보지 못했을 경우 매우 큰 심리적 압박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권리주장이나 권리침해를 주장하며 심각하게 분쟁을 일으키는 것이 생각보다 많다.

특히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며 H회사의 법률대리인과 같이 “정당한 권리를 갖추고 있는지 3일안에 증빙 서류를 보내라”는 문서를 남발하는 변호사사무실이 넘쳐(?)난다. 법률 전문가들이 소비자를 범죄자로 단정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불법행위를 옹호할 마음은 전혀 없다. 저작권을 침해하고 부당한 이득을 얻는 행위는 법률에 의해 엄중하게 처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판결에 의하지 않고서는 유죄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국민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의 주체로써 무죄추정의 원칙을 보장 받아야 한다. 민법(民法)에서도 신의성실의 원칙(信義誠實의 原則)이 근간이므로 각종 권리의 주장이나 피해보상이 모두 이 원칙에 의해 판단을 받아야 한다.

H회사는 서체 프로그램을 소비자에게 공급하기에 앞서 소비자의 권리를 우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너희가 범법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라”하는 것은 회사의 미래를 밝게 볼 수없는 근시안적인 발상이다. 이런 일을 겪으면 이후로 H회사 서체 프로그램을 구매 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우리 협회는 컴퓨터 안에서 실행되는 각종 프로그램 및 저작 도구(tool)에 대한 정품사용으로 정당한 권리를 모두 갖추고 있다.

[염민호 / 한국지체장애인협회 대외협력국장]

증거자료로 첨부되어 있는 문서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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