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없이 설치된 장애인 편의시설, 사람 잡는다
개념 없이 설치된 장애인 편의시설, 사람 잡는다
  • 조봉현 논설위원
  • 승인 2021.07.27 11: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원영통 봉영로의 장애인 이동편의 위한 경사형 육교의 어이없는 구조
이동약자의 실제 동선을 고려하지 않는 시설, 때로는 엄청난 위험 요소
단순 변화 위해 설계ㆍ시공자가 무심코 바꾼 동선, 휠체어 추락하는 날벼락
수원 영통의 중심지에 있는 신나무실육교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조봉현 논설위원] = 수원의 영통역 주변은 오밀조밀한 아파트 단지와 체계적으로 조성된 상가 지역, 풍부하고 수려한 녹지 공간으로 주거환경이 좋은 곳이다. 그 중심부에는 왕복 12차선의 봉영로와 지하철이 지나가는 등 교통 여건도 매우 좋다. 광교신도시가 건설되기 전에는 수원에서 최고의 주거환경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영통역에서 봉영로를 따라 망포역 방향으로 2백여 미터를 가면 큰 육교가 있다. 서쪽의 신나무실마을과 동쪽의 살구골 마을을 연결하는 하는 신나무실육교다. 양쪽 마을은 대단지 아파트로 이루어져 있고 육교의 양쪽 진입로 주변은 수목과 산책로가 잘 꾸며진 단지 내 공원이다.

영통을 하나로 묶어주는 이 육교는 휠체어나 유아차를 이용하는 보행 약자들의 편의를 위한 경사로 구조와 계단이 나란히 설치되어 있다. 모든 사람에게 편리한 통행을 도울 목적이 설계에서부터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유니버설 휴먼 디자인을 도입한 의도는 좋았다. 그러나 이 육교는 설계부터 잘못되었는지 시공이 잘못되었는지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에겐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안전사고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필자는 그 경사로형 육교를 이용한 적이 있다. 신나무실에서 살구골로 넘어가기 위해 육교 앞에 이르렀다. 주 진입로는 경사로와 완만한 계단이 나란히 설치되어 있다. 왼쪽은 경사로 구조이고 오른쪽은 완만한 계단구조이다. 사실 비장애인이 통행 가능한 일반계단이 주 진입로 옆에 보조진입로에 별도로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주 진입로는 폭 전체를 경사로 구조로 해도 될 것 같은데 계단이 함께 설치되어 있다.

아마 눈비가 올 때 경사로보다는 계단 이용자가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사로 역시 미끄럼방지 장치가 잘 되어 있으니 설사 계단이 없더라도 비장애인이 통행하는데 큰 지장은 없을 것 같다. 꼭 계단으로 통행하고 싶다면 바로 옆에 별도로 연결된 일반계단을 이용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 계단을 문제 삼으려는 것은 아니다.

휠체어를 타고 육교 위로 올라갔다. 통로 중심부를 거치면 내려가는 구간이다. 계단이나 경사로 위에서 밑으로 멀리 내려다보면 이어지는 통로가 계단인지 경사로인지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 더구나 그 시설은 경사로와 계단의 끝 지점 동일하기 때문에 더욱더 비슷하게 보인다.

전동휠체어는 가파른 경사로를 올라오느라고 다소 빠른 속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관성으로 그 속도를 유지한 채 내리막 구간도 그대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동하는 휠체어 탑승자는 내려가는 구간도 올라오는 구간과 같은 조건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필자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같은 속도로 내려갔다. 그런데 휠체어가 계단 구간으로 진입하면서 휠체어와 함께 그대로 앞으로 거꾸러졌다. 내려갈 때는 올라올 때와 달리 오른쪽이 경사로 구조였던 것이다.

그나마 완만한 계단이어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나, 얼굴 등에 찰과상과 타박상을 입었다. 운이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구조를 받아 간신히 일어날 수 있었다.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파 놓은 함정에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그 육교를 설계하고 시공했던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동선을 갑자기 바꿔버린 것일까? 육교에서 올라가는 코스와 내려가는 코스의 동선을 반대로 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오히려 엄청난 위험요소가 될 뿐이다.

필자의 가설이기는 하지만 설계자는 단순히 변화를 주고 싶은 생각에서 무심코 그렇게 설계하지 않았을까? 그 설계자는 그 경사로가 휠체어나 유모차의 통행을 위한 시설임을 알고도 그랬을까? 물론 경사로 구조 자체가 휠체어 등을 위한 목적이므로 모를 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동 약자가 실제로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허가 및 준공검사를 내준 공무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동 약자가 실제 이용하게 되는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고 단순히 변화를 좀 줘보겠다는 단순한 발상이 엄청난 사고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육교를 이제 철거하고 재시공할 수는 없지만, 개선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경사로와 나란히 설치된 계단 부분을 판재로 덮어서 경사로 구조로 바꾸는 것이다. 현재 계단 부분도 경사로 부분과 전체의 기울기가 동일하기 때문에 다른 구조변경이 없이 계단 위로 경사로를 깔아 폭 전체를 경사로 구조로 하면 무난할 것으로 보이다. 그 공사비마저 아깝다면 육교 중심부에서 양쪽으로 내려가는 부분에  계단과 경사로를 쉽게 구분할 수 있게 눈에 확 들어오는 안내 표지판이라도 세워둬야 할 것이다.

장애인 편의시설의 문제는 단순한 판단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공공 및 공중시설과 관계되는 설계자, 시공자, 감독자, 공무원은 지속적인 장애인식교육을 받아야 하며, 「장애인 편의시설 기술지원센터」 등 전문기관의 자문을 꼭 받아야 하는 이유다.

육교를 올라갈 때는 왼쪽이 경사로 구간이다. ⓒ소셜포커스
내려갈 때는 왼쪽이 계단구간으로 바뀌는 바람에 미리 대비하지 못하면 추락할 수 있다. 그런데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면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아 휠체어는 관성에 의하여 계단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내려갈 때는 왼쪽이 계단구간으로 바뀌는 바람에 미리 대비하지 못하면 추락할 수 있다. 그런데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면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아 휠체어는 관성에 의하여 계단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소셜포커스
육교 경사로의 외부모습과 중간의 일반계단 ⓒ소셜포커스
육교 최상단 부분의 모습
육교 최상단 부분의 모습 ⓒ소셜포커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