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석부작박물관, 이용할 수 없는 장애인 편의시설
서귀포 석부작박물관, 이용할 수 없는 장애인 편의시설
  • 조봉현 논설위원
  • 승인 2021.08.1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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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자연석과 야생화의 조화가 너무 아름다운 제주만의 생태정원
장애인 통행을 위한 곳곳의 경사로, 휠체어는 한 발짝도 갈 수 없어
제주도지사는 장애인이 차별받는 시설에도 우수관광 사업체로 지정
유명관광지 무장애 환경 조성을 위한 각종 제도적 장치 강구해야
경사로가 갖춰진 탐방로, 그러나 요철이 심한 구조라서 정작 휠체어 통행은 불가능하다. 재시공이 어렵다면 위에 야자매트라도 깔면 어떨까?

제주도는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지질공원으로 유명하다. 섬 전체가 태고적 화산활동 과정에서 형성된 현무암을 바탕으로 독특한 지질과 지형을 이루고 있다. 현무암은 화산이 폭발하면서 흘러나온 용암이 빠르게 굳어지면서 생겨난 암석이다.

현무암은 주로 검은색 띠고 표면은 매우 거칠거칠하다. 겉 표면에는 크고 작은 구멍이 많지만 매우 단단하다. 현무암(玄武巖)을 한자로 풀어보면 검을 玄자에 굳셀 武자를 써서 검고 단단한 바위라는 뜻이다. 현무암의 구멍은 화산이 분출할 때 가스 성분이 빠져나간 자리다.

현무암은 다양한 크기와 함께 모양 또한 저마다 수만가지 기기묘묘한 형상으로 신비감을 자랑한다. 제주도는 독특한 지형에 걸맞게 서식하는 식물의 종류도 다양하다.

이 독특한 암석을 화분삼아 야생초를 결합하여 예쁘게 꾸며낸 것이 석부작이다. 이 석부작은 돌과 식물의 형태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끼와 뿌리가 돌을 덮고 꽃향기를 더해준다. 말없는 돌에 뿌리를 내린 모습에서 세월의 깊이와 생명의 강인함을 느낄 수 있다. 석부작은 그야말로 작품 하나하나가 작은 자연이고 예술이다.

제주도 서귀포에는 수많은 석부작을 소재로 하여 꾸민 석부작박물관이 있다. 서귀포의 구시가지에서 신시가지로 가다 보면 중간에 있다. 서귀포시청 1청사에서 일주동로(서귀포에서 가장 넓은 중심도로임)를 따라 약 3Km의 거리에 있으며, 제주월드컵경기장과는 딱 중간지점이다.

실내전시장과 야외정원에는 제주 자연석과 야생초를 아름답게 조화시킨 수만 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석부작 테마공원이다.

한때 제주는 그저 바다와 검은빛으로 둘러쌓인 척박한 땅 이었다. 매서운 바람 속에 그 검은 돌들이 다듬어지고 바람과 물이 깃들어 거친 돌 위에서도 초록의 뿌리가 굽이굽이 휘어 감으며 생명을 피워 냈다. 풍란을 비롯해 복수초와 고란초, 죽백란, 만년석송, 한라구름채, 돌단풍 등 제주에서만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제주형 생태정원이다. 다만 이 시설은 제주도나 서귀포시가 운영하는 공공시설이 아니라 민간 사업자가 운영하는 민간시설이다.

석부작박물관의 야외 전시장 조감도
석부작박물관의 실내 전시장

 

필자는 지난 몇 년 사이 2차례 이 석부작박물관을 방문했다. 두차례나 방문했지만 휠체어를 타고 간 필자는 10%도 구경하지 못했다. 실내의 일부만 겨우 둘러볼 수 있었다.

박물관이 넓고 볼 것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물론 볼거리는 많지만 약 18,000㎡로서 그리 넓은 편은 아니다. 누구든지 한두 시간 정도면 모두 둘러볼 수 있는 시설이다.

야외정원은 약간 비탈구조의 지형이지만 관람로는 대부분 수평구조이고 출입구 및 높이 차이가 나타나는 지점에는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나름 휠체어나 유아차 등의 통행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경사로가 문제다. 모처럼 이동약자를 고려하여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 그 경사로는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어서 휠체어가 전혀 통행할 수 없다. 요철이 너무 심하여 휠체어는 한 발짝도 이동할 수가 없다. 야외정원은 울타리 밖에서 잠시 바라만 보다 나와야 했다.

아마 눈·비가 올 때 미끄럼 방지를 위해서 요철구조로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처럼 심한 요철구조 아니더라도 미끄럼방지 시설이 얼마든지 가능한데도 그 곳은 휠체어 등의 이동이 전혀 불가능한 구조다.

사진자료에 의한 야외정원의 내부 모습이 너무 아름답게 보여서 출입용 경사로를 통해 진입을 시도했다. 심한 요철 때문에 한 반짝도 못 나가고 휠체어가 뒤뚱거리더니 전복할 위험에 처했다. 하는 수 없이 진입을 포기하고 휠체어를 후진하여 돌아 나와야 했다. 경사가 심하지는 않아서 요철구조만 아니라면 쉽게 통행이 가능한 지형임에도 왜 하필이면 그러한 구조로 설치를 했는지 시설주가 야속했다. 전체 조감도를 보면 입구 등 몇군데 경사로에 요철구조만 아니라면 대부분의 탐방로는 수평수준이라서 휠체어를 타고도 공원의 90% 이상은 관람이 가능할 것 같았는데, 너무 아쉬웠다.

경사로는 형식상 갖추어 놓고 실제는 장애인 출입을 못하게 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마저 들었다. 정문에 들어올 때 직원의 따뜻하고 친절한 설명,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입장료 면제, 그리고 정문에 게시된 이웃돕기 모범업소라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안내패널을 보면 장애인 차별의도는 전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장애인 차별이 되고 말았다.

실내 박물관 또한 출입은 가능했으나 관람로는 완전 평지임에도 5cm정도에 불과한 곳곳의 단차로 인해 제대로 관람이 가능한 구간은 일부에 불과했다.

야외전시장 입구로 들어가는 경사로의 요철구조, 무리한 진입을 시도했다가 전동휠체어가 전복될 뻔 했다.
수평구간을 연결하는 경사로는 휠체어 통행이 불가능하다. 5% 구간의 문제점으로 나머지 95% 구간을 이동할 수 없다.
수평구간을 연결하는 경사로는 휠체어 통행이 불가능하다. 10% 구간의 문제점으로 나머지 90% 구간을 이동할 수 없다.
대부분 평지구간의 양호한 탐방로임에도 전동휠체어는 출입구 및 연결경사로의 문제점으로 여기까지 들어올 수 없다. 

 

이 시설이 국가나 지자체 소유라면 그동안 필자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민원제기 및 항의 등으로 강력한 시정촉구를 해 볼 수도 있겠지만, 민간소유라서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민간시설이라 하더라도 장애인이 정당한 편의를 제공받지 못하면 이는 장애인차별행위에 속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약칭) 제4조에는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 제공을 거부하는 경우”에도 장애인 차별행위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정당한 편의란 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 설치 등 제반 조치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시설을 그대로 두는 것은 장애인 차별행위이다. 

필자는 다른 관광지나 공중시설에서 휠체어 통행에 지장이 없는 논슬립(non-slip)장치와 함께 경사로가 설치된 곳을 보면 "석부작박물관도 이렇게 했으면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떠오르곤 한다. 그만큼 마음의 상처가 깊었던 것일까?

어쨌든 아쉬움을 가득 안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정문 쪽으로 돌아왔다. 정문 한쪽의 안내판에는 여러 가지 인증 패널이 게시되어 있었다. 정문을 나서면서 게시물을 살펴보던 중 한곳에 시선이 멈췄다.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수여한 「우수관광사업체 지정패」 였다. 도지사의 「우수박물관 인증패」도 보였다. 아니 엉터리 장애인 편의시설 때문에 장애인이 상처받는 이곳이 우수관광사업체에다 우수박물관라니?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망의 대상이 도지사로 향했다. 민간이든 공공이든 각종 공중시설에 장애인의 불편이 없는 환경을 갖추도록 지도감독 및 지원을 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제 역할를 하지 않는 것은 매우 유감이다.

이렇게 장애인 편의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도 우수 관광시설이 될 수 있다면, 어느 관광시설이 장애인 편의시설을 제대로 갖출까? 오히려 장애인 차별행위를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닐까?

국내 대표적인 관광지를 관할하는 제주도청은 관련 조례 등을 제대로 정비하여 우수관광시설이나 모범식당 등을 지정하거나 지원 및 표창을 할 때는 심사요건에 반드시 이동약자 접근성이 포함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입구에는 도지사로부터 받은 우수관광시설 및 우수박물관 인증패, 장애인 입장에서는 전혀 우수하지 않다.
입구에는 도지사로부터 받은 우수관광시설 및 우수박물관 인증패, 장애인 입장에서는 전혀 우수하지 않다.
휠체어를 위한 시설에서 정작 전동휠체어는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구조다.
휠체어 통행을 위한 시설로 보이지만 정작 전동휠체어는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구조다.
다른 관광지의 휠체어 통행을 위한 경사로, 미끄럼방지테이프를 붙였지만 요철현상이 없어 누구나 이용하기 편하다.
다른 관광지의 휠체어 통행을 위한 경사로, 미끄럼방지테이프를 붙였지만 요철현상이 없어 누구나 이용하기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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