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주치의 이용률 0.1%, '유령제도' 오명 벗을까
장애인 주치의 이용률 0.1%, '유령제도' 오명 벗을까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1.09.03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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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시범사업 9월 시작... 정신장애인까지 대상 확대
"진료 사례 없으니 다른 병원 가라" 이용자 부족으로 사업 중단 속출
복지부 "실적 부진 충분히 인지... 장애인·의료진 혜택 확대 논의중"
장애인 건강주치의 3차 시범사업이 이달 시작되나 그간 부진한 실적으로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최혜영 의원 등은 1일 장애인당사자 사례 발표회를 주최해 사업의 미비점을 짚고 개선점을 논의했다. 사진은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장애인 주치의 운영 병원에 편의시설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접근을 못하고 있는 모습. (출처=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소셜포커스 박예지 기자] = 장애인 건강주치의 3차 시범사업이 이달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장애인 당사자들로부터 '유령 제도'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던 이 사업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며 오명을 벗을 수 있을지 그 전망은 불투명하다. 

장애인 건강주치의 사업은 지난 2017년 12월 시행된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사업으로, 중증장애인이 사업 수행기관으로 등록한 의료기관의 의사 1명을 주치의로 등록해 만성질환 또는 주장애사항을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그러나 취지와 달리 그 성과는 부진했다. 2018년부터 올해 8월까지의 시범사업 결과를 살펴보면 전체 중증장애인 중 단 0.1%(1146명)만이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병원을 장애인 건강주치의 사업 수행 기관으로 등록한 의사 567명 중 활동 기록이 있는 주치의는 88명에 불과하다.

이에 최혜영, 강선우, 신현영 국회의원은 1일 오후 '장애인 건강주치의 사업 현황과 장애인당사자 사례 발표회'를 주최해 사업의 미비점을 짚어보고 개선 방향을 논했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꼽은 가장 큰 문제점은 '사업 인지도 부족'이다. 장애인들은 제도 자체를 모르고, 의료기관에서는 진료 사례가 없다며 진료를 만류하기 일쑤다. 이용자가 없으니 병원은 사업을 중단하고, 이후 제도를 이용하려는 장애인이 병원을 찾으면 진료를 거부당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 홈페이지에 안내된 대구 남구 지역의 장애인 주치의 사업기관은 총 8곳이지만 휠체어를 타고 진입할 수 있는 곳은 2군데에 불과했다. (출처=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는 올해 4월부터 전국 장애인건강주치의 의료기관으로 등록된 89개소를 대상으로 주치의 진료를 문의했다. 그 결과 70%(62개소)가 내원 상담을 거부하거나 사업을 중단했다고 통보했다. 가장 빈번하게 꼽히는 사유는 '저조한 이용률'이었다.

심지어 이 사업이 중증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경사로, 엘리베이터 등 편의시설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방문을 포기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 이민호 씨는 장애인 주치의에게 치과 치료를 받기 위해 국민건강보험 홈페이지를 찾았다. 대구 남구 지역에 장애인 주치의 기관으로 등록된 곳은 총 8곳. 그중 휠체어를 타고 접근할 수 있었던 곳은 2곳이 전부다.

그마저도 대기자가 많으면 예약을 하고서도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다. 장애인이 원하는 시간에, 다른 환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충분한 진료를 제공하겠다는 제도 취지가 전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부산의 한 병원은 장애인 주치의 진료 문의에 "일반 진료와 다를 것이 없다. 일반 환자와 똑같은 시간과 조건 아래 진료하되 진료비 할인 혜택만 있을뿐"이라고 안내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는 사업 성과가 부진했다는 점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3차 사업에서는 제도 대상자와 혜택을 확대하고, 지역별 홍보활동을 통해 앞서 장애인 당사자들이 짚은 문제점을 보완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존에는 시범 사업의 한계로 진료과가 명확한 중증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했으나 이번 3차 사업에서는 정신장애인까지 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또 장애인과 병원 양측 모두의 혜택을 강화해 참여율을 제고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장애인에게는 만성질환으로 주치의를 찾을 시 본인부담금을 전액 경감해주고, 의료진에게는 방문진료 수가를 인상하는 방안이다. 의원급 의료기관이 대부분 일반 건물에 입주해있는 경우가 많아 편의시설을 개선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한 것이다.

보건복지부 이선영 장애인정책과장은 그간의 사업 성과가 부진했음을 인정하고 3차 사업에서의 개선 의지를 밝혔다. (출처=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한편 보건복지부 이선영 장애인정책과장은 장애인 주치의 사업 예산이 전혀 편성되어 있지 않다는 의혹에는 "현재 국민건강보험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어 복지부 예산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이어 "이번 3차 사업의 성과가 나와야 건강보험재정심의위원회에서 예산 편성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며 "당장 충분한 의료진이 확보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사업에 대해 알려 이용자를 늘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복지부의 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을 바라보는 장애인단체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하 장총)은 3일 "장애인 단체가 직접 사업 인지도와 운영 현황을 조사한 결과, 해당 병원이 사업 참여기관이라는 것을 간호사도 의사도 모르고 있던 곳이 절반에 가깝다"면서 "이러한 결과에 미루어 보면 시범 사업의 부진은 장애인정책국의 의지와 실력 부족이 원인으로 보인다. 2번의 실패를 보여준 장애인정책국은 3차 시범사업에서 손을 떼기 바란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장총은 "대선 의제로 전국민 주치의 제도 도입이 논의되는 상황이니만큼 전문성과 실력을 갖춘 보건 관련 부서에서 사업을 담당하는 것이 나을 것", "장기적으로는 장애인건강권법상 명시된 다양한 사업을 전담할 부서가 신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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