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핑크뮬리 축제장, 휠체어는 문전박대
경주 핑크뮬리 축제장, 휠체어는 문전박대
  • 조봉현 논설위원
  • 승인 2021.10.25 09:4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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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 동궁과 월지, 계림 등이 모여있는 동부사적지의 핑크뮬리 군락지
경주시가 2017년부터 조성한 명소, 많은 관광객 몰려와 가을풍경 담아가
3곳의 출입구 모두 인위적 장애물로 인해 휠체어 이용자 등은 출입 불가

 

관광객들이 가을풍경 담기에 바쁜 경주 핑크뮬리 군락지.
관광객들이 가을풍경 담기에 바쁜 경주 핑크뮬리 군락지.(사진=경주시 제공)

전국 최고의 관광지 경주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자 관광자원이며, 세계문화유산이다. 사적이 워낙 많다 보니 여러 개 지구로 나누어져 있다. 그 중에 첨성대, 동궁과 월지, 계림 등이 모여있는 동부사적지가 있다. 경주역에서 불과 1km 이내의 거리다.

동부사적지 내 핑크뮬리 군락지에선 요즈음 핑크뮬리 가을축제가 한창이다. 공식 축제행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주 시민들과 경주를 찾아온 수많은 관광객들의 몰려들고 있다. 분홍색 솜사탕 같은 핑크뮬리 군락을 배경으로 방문자들은 사진찍기에 바쁘다. 단지 전체가 온통 포토존이다.

핑크뮬리 단지는 경주시가 지난 2017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했는데, 지역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4,170㎡의 넓은 면적으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대규모 단지다. 바로 옆에 또 다른 꽃단지가 조성되어 있고, 반경 500m 내에 첨성대, 내물왕릉, 석빙고 등 많은 사적들이 모여 있다. 반경을 1km로 넓히면 대능원, 경주국립박물관, 교촌마을 등이 자리잡고 있다.

대부분 평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휠체어 등을 이용하는 이동약자들도 인위적인 장애물만 없다면 구경하기 좋은 환경이다. 장애인콜택시(경주의 당일 장콜 이용은 거의 불가능)등 다른 이동수단이 없이 휠체어만 타고도 수많은 유적지를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다.

필자는 최근 경주를 방문하였다. 「동궁과 월지」(안압지)를 구경하고, 휠체어를 탄 채 그대로 핑크뮬리 축제장으로 이동했다. 가을바람에 파도처럼 율동을 뽐내는 핑크뮬리 군락도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몰려든 관광객들의 행렬도 장관이었다. 경주시에서도 이 장면을 담아 보도자료로 활용했으니 그 풍경을 알 만하지 않는가?

핑크뮬리 군락지로 들어가는 출입구는 3군데에 있었다. 한참을 이동하여 첫 번째 출입구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자유롭게 드나들었지만 입구에는 10cm 정도의 단차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곳만 통과하면 나머지는 자유로운 탐방이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그 10여 센티미터의 단차로 인해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구조다.

또 다음 출입구로 한참을 이동했다.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단차도 문제지만 볼라드까지 가로막고 있었다. 마침 휠체어를 탄 이동약자 한 사람이 나오고 있었다. 출입구 앞에 이르러 휠체어에서 내려서 동행인에게 업혀서 나오고 휠체어는 다른 사람이 번쩍 들어 그곳을 통과했다. 한뼘도 안되는 단차 하나로 인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그런데 100kg이 훨씬 넘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간 필자에겐 그러한 방법도 불가능하다.

또 다음 출입구로 이동했다. 3번째다. 그곳은 단차가 없이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또 웬일인가? 그곳은 출입통제용 바리케이드가 고정되어 철통같이 막고 있었다. 그곳에 걸려 있는 안내표지판에는 스쿠터, 전기자전거 등은 출입이 불가능하며, 유아차와 휄체어는 출입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휠체어가 도저히 들어갈 수 없도록 볼라드와 바리케이드로 이중으로 인위적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다. 장애물을 피해서 진입을 시도하더라도 장애물의 침해로 좁아진 경사로의 경계석 옆으로는 단차가 형성되어 있어서 휠체어가 전복할 수밖에 없는 매우 위험한 구조였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사고우려가 있는 킥보드나 전동자전거 등의 출입을 막기 위해 장애물을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데, 실상은 킥보드나 전동자전거 등은 출입가능한 공간이 되는 반면, 오히려 휠체어나 유모차는 들어갈 수 없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관계 공무원들의 개념없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곳은 경주시가 많은 예산을 들여서 조성한 관광시설이다. 그곳은 모두 평지라서 일부러 장애물을 설치하지 않으면 휠체어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출입구마다 이동약자들에게 약이라도 올리려는 듯 하나같이 철통봉쇄를 하고 있으니 실망을 넘어 마음의 상처와 원망으로 다가왔다. 그곳을 방문했던 얼마나 많은 이동약자들이 불편을 겪고 원망을 삼켜야 했을까?

이는 법률에서도 금지하도록 규정된 장애인 차별행위다. 「장애인차별금지법」(약칭)에서는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 제공을 하지 않는 경우”에도 장애인 차별행위로 본다. 그리고 “정당한 편의란 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 설치 등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시설을 방치하는 것은 장애인 차별행위가 아닐 수 없다.

경주와 같은 국제적인 관광지의 장애인 편의시설은 국가 간 비교가 용이하여 관광지의 무장애 환경은 그 나라 복지수준의 척도가 될 수 있다. 유명한 관광지에서 장애인 접근성이 이처럼 부끄러운 수준이라면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경주시의 조속한 개선조치를 촉구한다.

공식 출입구이지만 한뼘도 안되는 단차와 인위적 장애물로 인해 휠체어는 들어갈 수 없다. (사진=소셜포커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휠체어와 분리되어 다른 사람의 등에 업혀서 출입구를 통과한 다음에 휠체어는 동행인이 들어서 옮기고 있는 딱한 모습(사진=소셜포커스)
휠체어와 유모차는 출입이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지만 바리케이드로 가로막혀 있으며, 장애물을 피해서 옆으로 들어오더라도 경계석 옆으로는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 단차가 형성되어 있어 휠체어 출입이 불가능하다. (사진=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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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2021-10-29 11:03:13
경주시청 사적관리과장으로부터 오늘 전화가 왔습니다. 시장님께서 연락해주라는 지시를 하셨다네요.
본 기사가 나간 이후 경주시청에서는 즉각 시정조치를 하였답니다.
불편을 줘서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다른 곳도 이동약자의 불편이 없도록 신경을 쓰겠다는 뜻도 알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