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군 홍길동테마파크의 이면은?
장성군 홍길동테마파크의 이면은?
  • 조봉현 논설위원
  • 승인 2021.11.26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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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홍길동과 역사의 홍길동을 결합한 장성군의 문화콘텐츠
소설 속의 일부 의적행위, 실존 인물 지나친 위인화는 논란 소지
실존 인물이 소설의 모티브가 될 수는 있지만... 소설은 픽션
홍길동 생가, 산채 등 볼거리 많아도 곳곳의 장애인 불편시설
홍길동 생가 복원기념비라고 새겨져 있다. ⓒ소셜포커스

한국사람들에게 홍길동이라는 이름만큼 익숙한 이름이 또 있을까? 관공서에 비치된 민원서류 작성예시의 성명란에도 가장 많이 등장하기도 한다. 홍길동이 한국인의 인식 속에 이렇게 확고하게 자리잡은 건 소설 '홍길동전'의 영향일 것이다.

소설 속의 홍길동은 한때 가난한 백성을 위해 싸우던 의적이자 신분제와 차별에 항거했던 투쟁가로 그려져 있다. 그러한 캐릭터가 조선시대 억눌려 살았던 민중들에게 청량제 역할을 함으로써 엄청난 인기를 이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인기는 현대에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홍길동을 키워드로 도서검색을 해보면 유아용 도서에서부터 인문 서적에 이르기까지 수백 가지가 등장한다. 아동용 도서만도 100종이 넘는다. 저마다 원전을 각색하거나 목표 독자층에 맞도록 스토리를 덧붙이기도 한다. 아동·청소년용 도서일수록 대단한 위인으로 미화된다. 지금 사람들은 그 홍길동에 익숙해졌을 터이다.

전남 장성군 황룡면에 홍길동을 소재로 하는 홍길동테마파크가 있다. 장성군이 홍길동테마파크를 조성한 것은 소설에서 한때 의적 행세를 했던 홍길동이 장성에서 태어난 실존 인물이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문화콘텐츠를 만들어냈다.

장성군은 황룡면 아곡리 425번지 주변을 홍길동생가터로 추정하고 그 일대 23만㎡에 생가 및 산채 체험장, 기념관 등 테마파크 조성했다.

장성군은 한때 강원도 강릉시와 홍길동을 서로 자기 고장 출신이라면서 고유의 콘텐츠로 만들기 위해 상표권을 두고 법정 분쟁까지 일으켰다. 강릉시에서도 홍길동 마스코트 공모 및 상징물 제작 등 홍길동 이미지 구축에 수년간 많은 공을 들였다.

2010년도 어느 유력 일간지에 의하면 “홍보 위해 역사 왜곡하는 지자체”라는 제목으로 여러 지자체의 문제를 제기했는데, 장성 홍길동테마파크 조성에 515억원이라는 예산이 들어간 사실도 밝혔다.

홍길동이라는 인물이 서로 자기 고장 출신이라고 싸우면서 막대한 국민세금을 들여 기념시설을 조성할 만큼 대단한 위인일까? 여기에는 많은 논란을 이어지고 있다.

원소설에서 등장하는 홍길동은 소년의 나이에 도술을 이용해 풍운을 마음대로 부리고 수시로 둔갑을 하며, 허수아비에 숨을 불어넣어 자기와 똑같은 복제 인간을 만드는 등 황당무계한 행동을 이어간다. 한마디로 실존 인물이 될 수 없는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이다. 실존 인물이 소설의 모델이 되거나 모티브를 제공할 수는 있지만 소설은 어디까지 픽션이다.

장성군은 조선왕조실록 등의 고증을 거쳐 소설 속의 의적 홍길동이 장성에서 출생한 실존 인물임을 밝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록에 나오는 홍길동은 권력과 유착되어 나라를 어지럽힌 조직폭력배의 두목이었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6년(서기 1500년) 10월 22일자 기록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領議政韓致亨左議政成俊右議政李克均啓。聞捕得强盜洪吉同不勝欣抃。爲民除害莫大於此請於此時窮捕其黨。從之。

내용은 이렇다.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이 함께 아뢰기를 "듣건대, 강도 홍길동(洪吉同)을 잡았다하니 기쁨을 견딜 수 없습니다. 백성을 위하여 해독을 제거하는 일이 이보다 큰 것이 없으니, 청컨대 이 시기에 그 무리들을 다 잡도록 하소서."하니, 그대로 하였다.

얼마나 세상을 어지럽힌 도적이었으면 그의 체포 소식에 3정승이 함께 기쁨을 참지 못했다고 했을까?

실록에 나오는 그 이후의 기록들을 보면 관리들의 묵인하에 관청에서 행패를 부리는 등 안하무인으로 행동했고, 관명을 사칭하면서 공물을 약탈했다. 또한 당상관 지위의 엄귀손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두고 장사를 했으며, 충청도 백성들이 떠돌이 생활을 해야 할 만큼 백성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또 실록에는 엄귀손이라는 사람이 공금횡령 및 홍길동과 연루된 부정축재로 탄핵을 받고, 옥중에서 사망하는 내용이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

따라서 역사에 나오는 홍길동은 부정축재자를 타도하고 백성을 구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백성을 괴롭혀 부정축재를 조장하고 그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리고 장성군은 홍길동은 실록에 나오는 홍일동의 동생이자 홍순직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남양홍씨 족보에는 홍순직의 아들로 귀동과 일동만 나와 있을 뿐 길동의 기록이 없다고 한다. 길동이 서자였기 때문에 누락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가설이다.

실록에서도 홍길동과 홍일동이 형제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실록에서는 호조참판을 했던 홍일동은 洪逸童으로 기록하고, 강도 홍길동은 洪吉同으로 기록했다. 실제 형제간이었다면 굳이 한자의 동字를 다르게 썼을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소설 속의 홍길동은 탐관오리와 부정축재자를 털어 백성을 구하고, 신분제 타파와 이상국가 건설에 알려진 만큼의 노력을 했을까?

고어로 된 원소설에서도 백성을 진휼한다는 내용은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해인사 등 사찰(조선시대의 사찰과 승려는 억불정책으로 약자에 속했음)이나 관아의 공물을 빼앗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의로운 행위였지는 논란이 있다.

신분제 타파 등의 민권운동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서자로서 호부호형을 할 수 없다는데 불만을 품은 것 말고는 별도의 활동이 없다. 조정에서 홍길동을 체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자 병조판서를 시켜주면 자수하겠다고 하여 병조판서가 된다. 그리고 곧바로 임금을 만나 3천석의 식량을 달라고 하여 이를 싣고 일당과 함께 조선을 떠난다. 이른바 먹튀를 한 것이다.

그리고 어느 섬나라에 도착하여 문제의 율도국을 정복하는 내용이 나온다.

근처에 한 나라가 있으니 이름은 율도국이라. 중국을 섬기지 아니하고, 수십 대를 전자전손하여 덕화유행하니,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넉넉하거늘, 길동이 왈, “우리 어찌 이 도중만 지키어 세월을 보내리요? 이제 율도국을 치고자 하니 소견에 어떠하냐?”

정복하려는 이유가 중국을 섬기지 않고 태평하고 넉넉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섬나라 정착과정에서 원주민들을 사람형상을 한 괴물이라며 살육을 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이상국가를 건설한 영웅이라고 우긴다.

홍길동테마파크의 홍길동 생가입구에 서 있는 “홍길동생가복원기념비”에는 장성군수의 이름으로 “자유인권 운동의 선구자이며 만민평등 해상왕국을 건설한 홍길동의 영웅적 삶을 추모한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또 테마파크 홈페이지에는 “한국인을 대표하는 최초의 민중영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나가도 너무 나갔다.

원소설의 주인공인 홍길동의 생애와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홍길동의 행실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여기에 공감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던지 이제 홍길동테마파크는 장성군에서 하나의 문화콘텐츠로 자리잡았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그동안 막대한 국민의 혈세가 들어갔고, 앞으로도 관리 및 유지에 많은 예산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지자체의 관광객 유치만을 위한 행정상업주의가 낳은 결과이다.

어차피 국민의 혈세를 투입하여 개발한 관광시설이라면 누구든지 차별없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휠체어를 타고 방문한 그곳은 그렇지 못했다. 그곳에 산재한 많은 시설들은 이동약자에게는 한결같이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접근 가능한 곳이 있다면 홍길동전시관이 유일하다.

주차장에서 내리면 진입로에서 편의점부터 만나게 된다. 그 편의점을 민간인이 임차하여 운영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건물은 장성군 소유의 공공시설이다. 그러나 2개의 계단이 휠체어의 출입을 막는다. 장애인도 관광지에서 기념품을 사고 식사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막아놓으면 어떻게 하나?

홍길동생가 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중간에 화장실 건물이 보인다. 홍길동 산채가 연상될만큼 통나무벽에 초가지붕으로 잘 꾸며져 있으며, 출입구의 경사로와 경장애인용 용변시설 등으로 보아 이동약자의 이용도 염두해 둔 것 같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도로에서 화장실 건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단차를 넘어야 한다. 한뼘도 안되는 그 단차로 인해 휠체어 장애인은 장애인용 화장실을 눈앞에 보고도 접근할 수 없다.

계속 올라가면 “홍길동생가”로 꾸며놓은 전통한옥집이 있다. 실제 생가는 아니고 가상의 생가이지만 이 테마파크 내에서는 메인시설이 아닌가? 진입로의 요철노면, 계단식 통로, 대문의 문턱 등으로 인해 휠체어 접근은 전혀 불가능하다.

건물 안에는 홍길동의 동상 등 여러 가지 조형물을 구경하고 한옥의 전통미를 느낄 수 있는 시설이 많지만 휠체어를 탄 사람은 물론 유모차를 동반한 젊은 가족단위 방문객들도 접근이 곤란하다. 대문 앞까지의 진입로를 경사로 구조로 한 것으로 보면 휠체어 통행을 고려한 것으로 보이는데, 자연석으로 인한 노면의 심한 요철구조와 넘을 수 없는 문턱의 구조가 이동약자를 더욱 화나게 한다. 장애인들을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그곳의 현장처럼 경사가 심한데다 자연석 노면의 심한 요철구조까지 겹치고 사이드에 경계석까지 없어서 휠체어 통로임에도 불구하고 휠체어가 진입했다간 전복 또는 추락의 위험까지 겹치게 된다.

생가 근처에 활터가 있고, 그 아래에 홍길동 산채가 있다. 그 산채는 홍길동 도적패들인 활빈당의 산속 주거단지인만큼 다른 관광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색다른 동네일 것이다. 홍길동테마파크 특유의 정서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곳 역시 입구부터 계단구조인데다 곳곳의 단차 및 산책로의 요철구조 등으로 이동약자는 또다시 소외되어야 한다. 이동권 불평등에 마음의 상처가 또 한번 도진다.

홍길동테마파크 내에는 청백당이라고 하는 한옥체험 숙박시설이 있다. 이 역시 휠체어 이용자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불과 한 뼘도 안되는 곳곳의 단차로 인해 이동약자는 여기에서도 차별의 가혹함을 감내해야 한다. 툇마루나 섬돌 등 한옥의 전통미를 살리기 위해 실내 접근용 경사로 설치에 어려움이 있다면 건물의 측면이나 뒷면을 활용하면 될 일이다.

공원 내 모든 시설은 문화재가 아니며 복원시설도 아니다. 현대에 와서 옛모습을 임의로 상상하여 설치한 것이다. 그렇다면 설계단계에서부터 무장애 개념을 도입하였더라면 누구나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휠체어나 유아차 등의 통행을 철처히 외면하였다.

홍길동테마파크는 장애인차별 테마파크다. 대부분이 장애인 차별시설이다. 이러한 시설을 개선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은 법령에서 금지하는 장애인차별행위다. 「장애인차별금지법」(약칭)에서는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 제공을 거부하는 경우”에도 장애인 차별행위로 본다. 그리고 “정당한 편의”란 “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 설치 등 제반 조치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장성군은 이러한 장애인차별 시설들을 조속히 개선해야 할 것이다.

홍길동 생가를 상상하여 지은 건물. 그러나 휠체어나 유아차는 입구에서부터 접근이 불가능하다. ⓒ소셜포커스
상상으로 지어놓은 홍길동산채의 외부와 내부, 곳곳의 단차와 계단 등은 이동약자의 출입을 가로막는다. ⓒ소셜포커스
홍길동산채의 마을, 이동약자는 올 수 없는 곳이다. (사진출처=장성군 홍길동테마파크 홈페이지)
화장실은 장애인용 시설도 있으나 한뼘도 안되는 단차가 휠체어 출입을 막는다. 눈앞에 두고도 이용할 수 없다. ⓒ소셜포커스
장애인은 관광지에서 기념품이나 물건을 사면 안되는가? ⓒ소셜포커스
한옥체험 숙박시설인 청백당 역시 휠체어 통행을 막고 있다.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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