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의 겨울 여행기
중증장애인의 겨울 여행기
  • 김영식/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 승인 2022.12.05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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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동휠체어, 경사로 빌려 여행길 나서
강릉 카페거리·오죽헌 이동편의·전망 만족
이번 여행길에 동행한 김영식 씨(오른쪽)와 한종문 씨.
이번 여행길에 동행한 김영식 씨(오른쪽)와 한종문 씨.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나는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몸이 움츠러지지만 그럴수록 가슴은 더 뛰면서 멀리 가고 싶었다. 겨울여행은 따뜻한 사람과 함께 가고 싶어 평소 친하게 지내는 종문이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곤 곧 남자끼리 버디 여행을 결정했다.
먼저 서울다누림관광에 여행용 보조기기 대여 신청을 했다. 전동휠체어로는 대중교통이나 일반 승용차에 탑승할 수 없으니 전동이면서도 수동처럼 접을 수 있는 수전동휠체어를 재빨리 신청했다. 또, 건물 입구의 턱을 넘어갈 수 있는 경사로도 함께 빌렸다

드디어 11월 30일 수전동휠체어를 타고 종문이 형과 강원도 강릉으로 떠났다. 안타까운 사실은 종문이 형이 팔이 짧아 일반 휠체어를 탈 수 없어 수전동휠체어를 빌리지 못하고 자신의 전동휠체어를 타고 떠났다는 것이다. 이것이 후에 슬픈 일이 됐다.

처음 도착한 곳은 강릉의 유명한 카페 거리가 있는 '안목해변'. 바닷가를 따라 멋진 카페가 자리 잡고 있는데 보기만 해도 마음이 뿌듯했다. 카페라면 어디든 좋겠지만 우리 상황이 아무 곳이나 갈 수 없어 턱없는 카페를 찾다가 발견한 곳이 '미르마르커피'다. 이 곳에 들어서니 너무 좋은 것이 입구 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엘리베이터가 있어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네. 와! 통유리로 바다 전망이 쏴악 들어오는 2층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니! 덕분에 나는 생전 처음 2층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종문이 형 얼굴에 느긋한 미소가 퍼지는 것을 보니 우리의 버디 여행은 이 카페에 올라온 것만으로도 이미 대성공이었다.

카페를 나오니 안목해변의 모래사장을 거닐고 싶었다. 무거운 전동휠체어라면 모래에 파묻혀 꼼짝도 할 수 없지만 나는 가벼운 수전동휠체어를 타고 있지 않은가. 용기를 내어 모래사장으로 들어갔다. 아! 점점 바다로 나가고 있는 나!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어 모래로 들어올 수 없는 종문이 형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종문 형, 미안해! 나도 20 년 만에 처음 모래사장을 거닐고 있는 거야. 바로 내 눈앞에서 파도가 부서지면서 물거품이 내 얼굴을 때리는데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 수전동휠체어 덕분에 20년만에 모래사장을 거닐면서 바다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행복하게 오후를 보내고 우리는 강릉에 오면 꼭 먹어야 하는 생선회로 저녁을 먹었다. 입구에 턱이 있는 식당이라 빌린 경사로가 여기서 큰일을 해주었다.

다음날, 1박 2일 여행이 이렇게 짧을 수 없다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도깨비 촬영지로 떠났다. 그런데 아뿔싸! 휠체어로는 멀리서만 바라보기만 하는 곳이었다. 휠체어도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기만 하였다.

휠체어가 다니기 너무 좋았던 오죽헌.
휠체어가 다니기 너무 좋았던 오죽헌.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그러나 이런 아쉬움은 다음 장소인 '오죽헌'에서 완전히 깨지고 만다. 이율곡 선생이 나신 집이라니 고택이라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휠체어가 다니는데 아무런 장벽이 없는 곳이었다. 대부분의 유적지가 편의시설을 쬐금 해놓고 들어오라고 하지만 휠체어를 타고 가다 보면 계단이나 턱이 있어 휠체어 이용자를 좌절시킨다. 그러나 여기는 계단 옆에 길을 만들어 놓아 휠체어 안내 표시를 따라가면 오죽헌의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역시 신사임당과 이율곡 선생님은 넓게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이구나.

오죽헌을 나와 '아르떼뮤지엄 강릉'으로 향했다. 이곳은 몰입형 미디어아트 상설 전시관으로 강원도와 강릉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12개의 다채로운 미디어아트 전시가 1천500평의 공간에서 펼쳐지고 있다. 나는 제주에서 이미 '아르떼뮤지엄'을 다녀와서 그 화려하고 환상적인 빛의 향연을 경험했었는데 처음 본 종문이 형은 연신 감탄을 하며 "멋지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하긴 나도 다채롭고 아름다운 빛 속에 있으니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한 방에는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어 뾰족한 구두나 휠체어는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 문구가 있었다. 괜히 유리라도 깨면 책임을 져야 할 거 같아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왜 유리 바닥을 만들어 휠체어를 못 들어가게 하는지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짧은 여행은 끝이 났다. 12월 1일은 혹한이 밀려온다고 매스컴에서 호들갑을 떨었지만 나는 따뜻하기만 했다. 아마도 믿음직스러운 종문이 형과 함께 여행했기 때문이리라. 물론 강원도의 아름다운 경치가 내 마음을 충만하게 하기도 했고.

너무 즐거운 여행이었다. 이런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준 서울다누림관광의 여행용 보조기기 대여서비스가 정말 고맙다. 사실 전동휠체어를 타는 처지에서 여행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닌데 이런 서비스가 있어 이제는 당당하게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용 보조기기 대여서비스로 대여받을 수 있는 품목은 수전동휠체어, 경사로는 물론, 수동휠체어, 샤워휠체어, 해변용 휠체어, 이동형 리프트, 유아차, 목욕의자 등이 있다. 다음에 바다를 갈 때는 꼭 해변용 휠체어를 빌려서 가야겠다. 마음은 벌써 다음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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