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도 외면한 뇌전증 환자
국가도 외면한 뇌전증 환자
  • 노인환 기자
  • 승인 2019.02.14 17:42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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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국회서 '뇌전증지원법 공청회' 가져
차별과 편견의 질환.. "3명 중 1명 자살시도"
제대로 된 뇌전증 치료받으려면 국외로...
대한뇌전증학회와 한국뇌전증협회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세계 뇌전증의 날 기념식 및 뇌전증지원법 공청회'를 개최했다. 노인환 기자

그동안 암이나 뇌졸중, 치매 등 질환은 국가가 많은 지원을 해왔으나 '뇌전증(과거 명칭: 간질)'은 오랫동안 정부지원에서 소외돼왔다. 이에 뇌전증을 국가에서 지원할 수 있는 '뇌전증지원법'에 대한 입법화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한뇌전증학회와 한국뇌전증협회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세계 뇌전증의 날 기념식 및 뇌전증지원법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번 공청회는 뇌전증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해소하고 뇌전증지원법 제정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대한뇌전증학회 김재문 이사장은 개회사를 통해 "한국의 경제수준이 세계 10위에 육박하지만 뇌전증 환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도 후진국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라며 "뇌전증 환자를 위해서는 정부가 뇌전증센터를 육성하고 인식개선 사업을 전개할 법령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오제세 의원은 "내년 안으로 '뇌전증지원법'의 입법을 추진하고 국가차원의 관리와 지원을 도모하겠다"고 답했다. 대한뇌전증학회 명예고문인 심상정 의원도 "법 제정뿐만 아니라 뇌전증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확산될 수 있도록 대국민 홍보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뇌전증 발작을 일으키는 환자의 모습. 노인환 기자

◆ 남에게 숨겨야 하는 유일한 질환.. '뇌전증'

뇌전증은 뇌신경 세포에 이상이 발생해 흥분과 억제의 정도가 한쪽으로 치우친 증상을 말한다. 흥분이 과도해질 경우 뇌전증상이 발생하며 발작 증상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전 연령층에서 뇌전증이 발생하는데 어린이 환자의 경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수십년간의 육체적 고통과 함께 사회의 부정적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뇌전증의 과거 명칭은 발작, 경련, 간질 등으로 사회 인식에 부정적인 뉘앙스를 주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한뇌전증학회는 2012년 세계 최초로 '뇌전증'이라는 용어로 기존의 명칭을 바꾸었다. 대한뇌전증학회 홍승봉 명예회장은 "명칭은 바꿨는데 정부와 보건복지부에서 전혀 홍보를 해주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결국 뇌전증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용어만 바꾼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홍승봉 회장은 "뇌전증 환자 중에는 치료가 잘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결혼을 포기하거나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여전히 사회에서는 뇌전증이 '일상생활에서 기피해야할 질환'으로 인식돼 있기 때문이다.

대한뇌전증학회에 따르면 이 같은 사회적 시선으로 인해 뇌전증 환자 3명 중 1명은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살시도율과 동일한 비중만큼 우울증과 불안증세도 나타났으며, 뇌전증 환자가 자살고위험군으로 분류돼도 마땅한 해결책은 없는 상황이다.

◆ 치료받으려면 중국이나 일본으로 가야..

대한뇌전증학회 홍승봉 명예회장.

현재 우리나라의 뇌전증 환자 수는 약 30~4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0.7%를 차지하고 있다. 뇌졸중이나 치매환자 다음으로 많은 신경계 질환이지만 정부의 지원면에서는 뇌질환 간의 극심한 차이를 보였다.

뇌졸중과 치매는 예산지원이나 국가책임제를 통해 정부의 재정적, 법적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뇌전증에 대한 정부지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5억~10억원 상당의 뇌전증 수술장비나 30억원대의 진단장비인 뇌자도는 당연히 국내에 없는 현실.

대한뇌전증학회 홍승봉 명예회장은 "뇌전증 수술에 중요한 검사장비가 없는 국내 현실을 고려하면 참담한 심정"이라며 "뇌자도 검사나 최신 뇌전증수술을 받으려면 인접 중국이나 일본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홍승봉 명예회장은 "뇌졸중이나 치매 등 뇌질환에는 정부의 지원이 과도한 측면이 있다"면서 "뇌전증에 조금의 예산이라도 배정된다면 뇌전증 환자에 대한 의료체계가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다.

◆ 뇌전증지원법의 필요성과 앞으로의 방향은?

사회적 편견과 낙인 현상에 취약한 뇌전증 환자는 교육, 취업, 결혼, 대인관계 등 일상생활을 하는 데 수많은 차별과 제약이 따르고 있다. 장기간의 유병기간과 집중적인 돌봄만 이뤄져도 뇌전증의 관리와 치료가 수월하겠지만 정부의 지원은 전무한 실정이다.

한국뇌전증협회 김흥동 회장은 "뇌전증의 예방과 진료, 연구 등 체계적인 시스템만 뒷받침된다면 뇌전증의 치료와 재활은 기존보다 용이할 것"이라며 "뇌전증도 핵심 국가질환관리에 포함시키고, 관련법을 제정해 정부차원에서 뇌전증 관리를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뇌전증지원법이 타 의료법과 다른 점은 의료재정의 지원뿐 아니라 '사회적 지원'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흥동 회장은 "뇌전증 환자에 대한 인식개선과 차별방지 등 사회적 지원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뇌전증협회에서 제시한 '뇌전증지원법'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자면 ▲뇌전증 관리에 대한 종합계획 5년 단위로 수립 ▲보건복지부장관 소속으로 뇌전증관리위원회 설치 ▲뇌전증전문진료센터 및 수술센터 지정 ▲뇌전증에 대한 연구개발 및 사회지원사업 전개 등이다.

지금도 뇌전증 환자들은 사회적 오해와 편견으로 심리적 고통받고 있으며 의료적 지원은 국가의 사각지대에 몰려 있다. 이번 공청회를 통해 뇌전증에 대한 인식개선과 정부지원이 이뤄지는 '뇌전증지원법' 제정에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 세계 뇌전증의 날이란?

세계 뇌전증의 날(International Epilepsy Day) 로고.

세계보건기구(WHO)가 2015년부터 2월 두 번째 월요일을 '세계 뇌전증의 날(International Epilepsy Day)'로 제정해 뇌전증에 대한 인식개선 및 의료지원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세계 뇌전증의 날이 제정된 배경에는 국제뇌전층퇴치연맹(ILAE)과 국제뇌전증단체(IBE)의 끊임없는 노력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두 단체는 뇌전증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해소하고 의료적 지원을 도모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은 올해 2월 14일을 세계 뇌전증의 날을 기념해 전국의 주요 종합병원을 비롯한 각종 세미나 현장에서 뇌전증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뇌전증지원법의 입법화를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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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라 2019-08-04 23:15:52
우리나라 법도 말뿐만이 아니라 얼른 바껴야 하는데 말이죠 ..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

박*혁 2019-02-27 13:40:04
MRI..CT 값만 내 놓으래요??.........

김*경 2019-02-19 09:55:30
치료를 하기위해 일본이나 중국으로 가야한다는게 참 안타까운 현실이네요
모든 환자들을 위해 빠른 '뇌전증지원법' 제정에 응원의 한표를 ~~~

오*미 2019-02-15 10:38:11
지원을 위한 법안제정이 꼭 필요하다고 보여집니다!

이*기 2019-02-15 10:05:15
국가적 차원에서 뇌전증 환자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조속히 관련 법안이 제정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