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다시보는 영화 속 현실에 마주치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다시보는 영화 속 현실에 마주치다
  • 김승근
  • 승인 2019.06.23 02: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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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나는 길 잃은 조개껍데기처럼 혼자 깊은 바다 밑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하반신을 전혀 쓸 수 없어, 유모차에 아기처럼 몸을 숨기고 다니는 한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조제, 자신을 조제라고 부른다. 그녀에게 가족이라고는 유모차를 밀어주는 할머니가 유일하다. 괴팍하지만 유일한 한 사람. 사람들은 늘 커다란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할머니를 보며 이상한 소문을 만들어내고, 아이들은 놀려대며 장난을 친다. 그런 할머니와 조제 앞에 어느 날, 근처 대학에서 공부하는 츠네오라는 남자 한 명이 나타난다.

ジョゼと虎と魚たち, Josee, The Tiger And The Fish, 2003/ 드라마, 멜로 로맨스  일본  117분/ 감독 이누도 잇신
 

어느 날, 우연히 조제 앞에 나타나서는 어쩌다보니 계란말이 하나를 얻어먹고, 그게 너무 맛있어서 가끔 밥이나 얻어먹겠다는 생각으로 조제의 집을 방문했던 츠네오였다. 시골집에서 엄마가 보내주는 절임 반찬이며 야채들을 조제 집에 가져다주면서 집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게 되면서 츠네오는 조제가 그 집에 살고 있는 것을 알고 보살피는 유일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바다 밑에서 혼자 데굴데굴, 쓸모없는 존재처럼 있던 조제의 삶에 변수가 생기기 시작한다. 츠네오라는 남자와의 연애 말이다.

하반신을 사용할 수 없으며, 기초생활 지원금으로 겨우겨우 먹고살 뿐, 아무런 경제활동이나 사회활동조차 할 수 없는 여자와, 한창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는 지극히 평범한 남자와의 연애 이야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제목의 이 영화는 그런 흔하지 않은 사랑 이야기이다.

그러고 보니 간혹, 인간극장이나 TV 다큐멘터리 등에 장애를 가진 이들과 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다리가 불편하고, 몸이 불편해서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말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불편한 몸과 마음까지 모두 사랑하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 같은 것 말이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 그 장애마저 사랑하고 모든 것을 감수하고 받아들인다고 말하는 사람들. 장애인 주변을 살펴보면 간혹 목욕 봉사나 외부활동을 돕는 것 정도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 사람을 가족으로서 사랑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서 늘 보살피고, 그 사람으로 인해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을 늘 받아들이고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심이 아니다.

우리는 신체가 불편한 장애인들에게 늘 ‘당신의 탓이 아니에요.’, ‘당신과 우리는 다르지 않아요.’, ‘나는 늘 당신을 도울 자세가 되어 있어요.’라고 말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장애인은 가끔 보는 존재, 가끔 도와주면 되는 사람, 진짜 내 삶은 아니기에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정작 그렇게 말하는 사람 중에 자신의 형제가, 배우자가, 자식이 장애인과 결혼을 하거나 평생 함께 하겠다고 한다면, 과연 아무런 거리낌 없이 찬성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라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그런 불편한 진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장애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런 생각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혹자는 츠네오에게, “서로 사랑하는 데 몸이 불편한 것이 무슨 문제가 있으며, 그런 그녀라도 보듬어 안고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람”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너무나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 가슴이 먹먹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왔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우리가 넘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그 장벽에 대해 한 번쯤은 이렇게 현실적인 결말을 보여주는 영화도 봄직 하다고 생각한다.

“담백한 이별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실 단 하나뿐이었다. 내가 도망쳤다.”

츠네오와 조제는 꽤 오랜 시간을 함께 살며, 조제는 츠네오를 통해 처음으로 세상과 소통하듯 평범한 연인의 행복을 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츠네오를 보며 주변 사람들은 츠네오를 배려한다는 말을 덧붙이며 정말 조제와 결혼해서 살 것인지 궁금해하고, 조제를 감당할 것인지 우려를 표한다.

츠네오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감정, 애정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조제와 헤어지게 된다면 여자와 헤어진 게 아니라 장애가 있는 불쌍한 사람을 버린 것 같이 취급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츠네오를 좋아하는 여자 친구도 사회복지계열로 진로를 정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정작 조제가 츠네오 같은 비장애인 남자를 사귀고, 함께 할 꿈을 꾸는 것을 웃는 모습. 그 장면에서는 마치 그것이 진짜 우리가 사는 사회의 일면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이 ‘몹시도 씁쓸하고 언짢은 세상에 내가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장애와 상관없이 그저 남자와 여자로 만나기 시작한 두 사람의 연애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누군가의 희생 혹은 누군가의 집착으로 취급되는 것인가?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을 평범하게 받아들였지만, 츠네오와 조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들의 사랑을 평범하지 않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잠깐의 만남으로 비하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의 사랑은 평범했다. 같이 일상을 공유하고, 여행을 가기도 했다. 만남의 시간이 지속되면서 츠네오는 자신의 부모님께 소개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부모님께 소개하려는 날이 가까워져 올수록 츠네오는 자신이 정말 조제와 함께 살아갈 정도로 사랑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현실적인 측면이 시사되는 장면이었다. 이를테면,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조제를 당연히 안아서 화장실에 데려다주던 츠네오가, 갑자기 ‘자동 휠체어를 사는 게 좋지 않겠냐’라는 제안을 하는 장면에서이다. 약간은 귀찮다는 듯 화장실에 데려다주는 모습에서 이러한 부분이 묘사되고 있었다.

츠네오의 마음이 점차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감정의 변화가 있을 무렵, 조제도 느끼기 시작했다. 츠네오와 자신이 이제 더 이상 처음처럼 마냥 서로를 사랑하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저 가족처럼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부모님께 가는 것을 망설이는 츠네오를 보며 조제는 이제 이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들의 이별은 짧게 담백하게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됐다. 헤어지는 이유조차도 말이다.

문득 오랜만에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내의 20대 시절, 한창 사랑에 빠져 있고, 사랑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 이 영화 한 편으로 퍼즐 조각이 맞춰지고 있었다. 사랑한다면 절대 이겨내지 못할 것은 없으며, 모든 사랑은 진실되고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던 나의 어린 시절, 하지만 나이가 들고, 사랑을 알고, 그보다 더 잔인한 현실을 알만한 나이가 됐다는 것.

지금, 나는 누구보다 츠네오를 이해할 수 있다. 그는 현실일 뿐이며, 평범할 뿐이고, 그들의 사랑 역시 그저 하나의 연애일 뿐이다. 더욱이 장애라는 것을 덧입혀 편견 가득히 쳐다보는 것은 우리의 잘못된 생각일 뿐이라는 것을, 이 영화를 보며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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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 2019-06-24 08:57:15
오래전에 감동깊게 본 영화인데..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