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어, 삶에서 왜 끔찍한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어, 삶에서 왜 끔찍한 일이 생기는지”
  • 김승근
  • 승인 2019.08.29 19: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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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서퍼(Soul Surfer) 2011년 작품

“그래도.... 이 일을 통해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걸 믿으려고”

옛말 중에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문득 이 대사를 듣고 떠올랐다. 전혀 영화의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는데도 말이다. 그 말은 변방 노인의 말처럼 복이 화가 되기도 하고, 화가 복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인생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미리 예측할 수 없으며, 어떤 일이든 어떻게 결론이 날지 아무도 모른다. 바로 이 영화 <소울 서퍼(감독 숀 맥나마라)> 속 주인공 ‘베서니’처럼 말이다.

베서니는 하와이에 살고, 후일 ‘프로 서퍼’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는 아주 예쁘고 평범한 여자아이였다. 바닷가에서 태어났고, 매일 아버지를 따라 바다에서 놀았기에 서핑을 하고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은 베서니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어느 날, 베서니는 친구 알리사의 가족과 함께 바다로 놀러 나갔다. 여느 때처럼 늘 베서니를 즐겁게 해주던 그 바다는 아주 끔찍한 일을 선사한다. 상어에게 한쪽 팔을 물어뜯긴 것이다. 그가 늘 가던 바다에서, 자신의 일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랬기에 의사가 말하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는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는 이제까지처럼 서핑을 할 수 없고, 자신의 꿈이 사라졌다는 절망감뿐이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것을 포기했던 것은 아니었다. 가족과 친구들의 응원 속에 다시 재활 훈련을 하고, 서핑을 해보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껏 자신을 감싸 안아 파도 끝까지 올려주던 바다는 이제 베서니의 서핑 보드를 받아주지 않으려는 듯 고꾸라지게 할 뿐이었다. ‘넌 이제 이곳에 설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갑자기 사라지는 기분, 한 쪽 팔이 사라지면서 모든 것이 사라진 것 같았다. 이렇듯 신은 우리에게 가끔씩 아주 슬프거나, 아주 고통스럽게 힘든 일을 준다. ‘네가 가진 그 어떤 것도 당연하지 않다’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런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에 대한 수업료로 팔 한쪽이 없는 삶이란, 13살 여자아이가 견뎌 내기에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아주 가까이에서 보면 알기가 힘들다는 걸 봤어요. 인생도 마찬가지에요. 어떤 일에서든지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들거나, 잘 이해가 안 될 때는 다른 시각에서 보세요.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준 걸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네요.”

- 주께서 말하시길 ‘너희가 말한 계획을 아나니 너희를 해하는 것이 아니라 번영시킬 계획이다. 희망과 미래를 주는 계획이다. (예레미야서 29:11)

영화 속에서 베서니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주일학교에서 수업을 듣는다. 그 교사는 현미경으로 확대한 여러 물건이나 생물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한 가지 명언을 말해준다. 마치 베서니가 앞으로 겪어야 할 일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후 베서니는 사고의 후유증과 자신을 둘러싼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조금 떨어지기 위해 태국의 쓰나미 현장으로 봉사활동을 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다시 서핑에 도전하고, 다시 살아가야 하는지 이유를 찾아온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을 겪었느냐가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이겨내고 다시 살아갈 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 있는가 인 것이다.

그리고 베서니는 다시 도전한다. 서핑도,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에도 말이다. 처음에는 물론 모든 것이 어색하고 힘들어 팔 하나가 없다는 것이 이렇게 불편한 일이라는 것에 새삼 놀라기도 하지만 말이다. 용기를 내 지역 대회에 참가했음에도 팔 하나로는 서핑 보드 위에서 균형조차 잡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절망했다. 다시 파도를 느끼고 예전처럼 타려고 했으나 언제나 파도는 그런 베서니의 노력이 아무 소용없다는 듯이 그녀를 집어삼킬 뿐이었다.

누가 봐도 이제는 13살의 촉망받는 프로 서핑 선수를 꿈꾸는 소녀가 아니었다. 불의의 사고로 한쪽 팔을 잃은 아이 쳐다보듯 했다. 그럼에도 절망하거나, 누군가를 원망하고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방향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우리라면 과연 이렇게 빨리 ‘내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 한쪽 팔이 없는 서핑 선수, 그런 주목을 견디는 것 자체만으로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베서니는 그 모든 시선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자신의 방식대로 이겨냈다. 그리고 실제 베서니의 모델이 된 서핑 선수 역시 그렇게 자신의 삶을 되찾아 서핑 선수로서도, 한 사람의 아내이자 아이의 엄마로서도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놀라웠다.

신은 간혹 인간에게 그렇게 참혹한 시험을 내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베서니가 주일학교 수업에서 들었던 것처럼, 그것을 이겨내고,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고 새로 생각해본다면 그 어떤 것도 이겨내지 못할 일은 없지 않을까? 이 영화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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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회 2019-08-30 09:03:55
장애인분들이 힘든 환경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꿈을 위해 두배,세배로 노력하는 모습,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