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토르(tor)’가 있었다!
그곳에 ‘토르(tor)’가 있었다!
  • 염민호 편집장
  • 승인 2019.10.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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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단풍옷 입은 북한산국립공원, 여성봉-오봉-자운봉 탐방기
북한산국립공원 오봉 정상에서 본 오봉능선. 소셜포커스
북한산국립공원 오봉 정상에서 본 오봉능선.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염민호 편집장] = 턱밑까지 숨이 차오르면서 순간 눈앞이 노랗게 바뀌었다. 귀가 멍해지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이 찾아온다. 식은땀이 흐르고 연신 하품이 새어나온다. 체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침 먹고 나온 것이 소화가 되지 않은 까닭이다. 심호흡을 하며 걸음걸이 속도를 조절한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자 점차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산은 높고 가파르다. 여름이 지쳐 떠나간 자리에 고운 단풍 옷으로 단장한 가을이 들어와 앉았다. 밑에서 올려보는 것과 직접 올라와서 보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밑에서 볼 때는 눈앞의 봉우리가 줄지어 서 있는 것으로 착각을 했다.

사물을 볼 때 3차원의 입체를 보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평면 그림을 보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 아닐까. 더구나 멀리 있는 물체는 더욱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산에 올라와서 보니 가운데 골짜기를 두고 삼각형의 각기 다른 빗변에 오봉능선과 여성봉이 놓여있다.

여성봉…. 자연의 풍화작용이 오랜 세월 이어지는 가운데서 우연히 그런 지형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다만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광경이어서 그렇게 이름을 붙여준 까닭일까, 이 산은 이상야릇한 에로티시즘을 품고 있다. 다시 능선을 타고 오봉을 향해 올라간다.

여성봉 정상 풍경 ⓒ소셜포커스
송추 오봉탐방지원센터에서 여성봉 오르는구간의 풍경 및 여성봉에서 바라 본 오봉능선과 멀리 백운대가 보인다. ⓒ소셜포커스

오봉에 얽힌 전설을 담아놓은 기록은 다섯 총각이 어여쁜 처자를 아내로 삼기 위해 바위 던지기 시합을 했다고 적고 있다. 막상 오봉에 올라보니 엉큼한 다섯 총각이 곁눈질로 여성봉을 훔쳐보는 형상 같다.

산은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바위가 깎이고 다듬어져 둥글둥글한 형태의 바위덩이가 남았다. 마치 계곡의 거친 물살에 다듬어진 몽돌과 같이 매끈한 느낌을 안겨준다.

오봉을 설명하는 표지판에는 북한산국립공원의 화강암이 지금으로부터 1억3천만 년 전 쥐라기시대에 형성된 것이라고 적혀 있다. 서울 주변의 화강암지대는 비슷한 시기에 형성되었기에 이 산지를 ‘서울 화강암’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오봉 산꼭대기의 둥근 암석은 지형학 용어로 ‘토르(tor)’라고 불린다고.

토르의 생성과정은 이렇다. 처음에는 한 덩어리였던 화강암이 냉각 및 팽창하는 과정에서 표면에 절리(joint)가 생기고 마침내 갈라지게 된다. 수직 및 수평 방향으로 직각을 이루며 틈새가 갈라져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나누어진 암석은 풍화되면서 둥글둥글한 모양으로 변하게 된다. 주변의 흙과 암석 조각들이 풍화되고 침식되는 과정에서 지하수나 빗물에 씻겨 내려가면서 둥근 핵석(core_stone)만 꼭대기에 남게 된다. 이것을 ‘토르’라고 부른다.

거대한 암석 봉우리에 얹혀있는 토르. 저 정도 크기라면 아마도 천둥 번개의 신이 손에 들고 땅을 내리치며 지진을 일으키고 화산을 폭발시켰다는 ‘토르의 해머(망치)’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암벽 틈새를 붙잡고 매달린 사람들이 온 몸으로 암벽을 기어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암벽에 붙어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하고 어지러운 느낌이 밀려든다. 아마 저 사람들은 대단한 담력과 체력을 가졌음에 틀림없다.

바위 틈새에 뿌리내리고 서 있는 소나무도 경이롭다. 저 틈새에서 무슨 자양분을 공급받으며 생명을 지탱할 수 있었을까. 거친 환경에도 불구하고 뿌리 내리며 살아가는 식물의 강인한 생명력이 전해져 온다.

오봉능선의 단풍 및 서울시 전경
오봉능선의 단풍 및 오봉에서 본 서울시 전경 ⓒ소셜포커스

산에는 고양이가 많다.

김밥을 먹으려는데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와서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꼬리가 뭉툭하게 구부러진 것을 보니 새끼였을 때 영양상태가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김밥에 박혀 있는 소시지 조각을 빼내어 조공(?)을 바친다. 등 너머에 고양이에게 음식물을 주지 말라는 빛바랜 현수막이 걸려있다. 그렇지만 이 산에 살고 있는 토박이에게 우리는 어디까지나 객(客)인고로.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일까,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일까. 금강산도 식후경이랬다. 뱃속을 채우는 것은 성스럽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하나의 예식처럼 챙겨 먹는다. 먹는다는 것과 존재한다는 것은 삶의 철학이 태동하고 출발하는 지점이다.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성스럽다.

바위 아래로 난 길,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공간이 나온다.

“이 쪽 파란불입니다. 이쪽에서 먼저 지나갈게요.”

맞은편에서 초로의 한 남자가 웃음 가득한 얼굴로 소리친다. 이쪽에서 지나가는 여러 사람에게 앞서 양보를 했으니 이번에는 자기 차례라는 것이다.

“아, 그러시지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자운봉 방향이 이 길 맞나요?” 이왕 말을 붙였으니 우리도 겸사겸사 길을 묻는다.

“네~ 조금 더 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 길로 쭉 가시면 됩니다. 오른쪽 길은 거북바위 쪽으로 가는 길이니 그 쪽으로 가면 안 되고 계속 앞으로 가다보면 단풍이 아주 좋아요. 지금 아주 장관입니다.”

그 분 말씀대로 능선 북쪽 사면에 펼쳐진 숲에는 노랗고 붉게 물든 형형색색의 고운 단풍이 환상적인 가을분위기를 자아낸다. 가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기온이 더 떨어진 듯 어께에 서늘함이 스며드는데 코끝에 청량감이 가득하다.

도봉산 능선의 단풍 ⓒ소셜포커스
도봉산 능선의 단풍 ⓒ소셜포커스

바위능선을 타고 넘어가는 길은 험하다. 오르내리는 길이 계속된다. 계단을 걷기도 하고, 암벽을 만나면 바위를 뚫어 설치해놓은 철봉에 매달리기도 한다. 쇠사슬로 연결되는 구간도 종종 나온다. 가을 산행에 나선 사람들이 많다.

마침내 도봉산 신선대 정상에 오르려는데 앞서 있는 사람들로 인해 정체현상이 빚어진다. 신선대 올라가는 막바지 비탈진 암벽 철봉에 매달려서 꼭대기 밟을 순서를 기다린다. 파란 가을하늘에 하얀 구름덩어리들이 두둥실 흘러간다. 순간순간 세찬 가을바람도 몰아쳐 얼굴에 부딪히고 간다.

산꼭대기라는 것을 알리는 말뚝을 붙들고 사람들이 또다시 ‘인증샷’이라는 예식을 치른다. 줄서서 기다리는 것이 귀찮다. 슬쩍 내용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만족해하며 또다시 암벽 철봉을 붙잡고 기어 내려간다.

왔던 길을 되짚어 가는 것은 더 힘이 빠진다. 때로는 알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더 힘들 수 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그 구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온 몸의 근육이 경직되어가는 신호를 보내는데 무릎 관절도 시큰거린다. 아무튼 꼭대기에 올라왔으니 다시 내려가야 한다. 사람이 목표를 향해 올라가는 것도 힘겹겠지만 내려가는 것도 잘 내려가야 한다. 사람 살아가는 게 모두 이와 같지 않을는지.

마침내 송추계곡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에 도착한다. 키 큰 나무숲 속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4.5km를 내려간다. 개천은 말라 있는데 계곡 안쪽은 이미 해가 기울어 그늘이 졌다. 크고 작은 돌부리가 거치적대는 너덜지대와 잘 정비된 평탄한 길이 계속 반복된다.

신선대 주변 풍경 및 신선대에서 바라본 의정부 방향 전경
신선대 주변 풍경 및 신선대에서 바라본 의정부 방향 전경 ⓒ소셜포커스

※지난 주말에 또다시 북한산을 찾았다. 이번에는 송추 오봉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해 여성봉을 거쳐 오봉 정상을 향해 산을 올랐다. 계속해서 도봉산 능선을 타고 자운봉 신선대에 올랐다가 다시 되돌아 와서 송추 계곡을 타고 하산했다. 왕복 약11km를 걸었으며 산행시간은 모두 6시간 소요되었다.

송추계곡
송추계곡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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