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 ‘가비’ [1]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 ‘가비’ [1]
  • 전윤선 여행작가
  • 승인 2019.11.25 09:3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통탄의 삶을 살았던 고종황제의 흔적을 찾아서

구한말 나라는 빼앗기고 왕비는 적의 칼에 난자당해 통탄의 삶을 살았던 고종황제의 흔적을 찾아갑니다. 가비(커피)를 사랑했던 고종황제와 가비와 얽힌 숨 막혔던 백 년 전으로 떠나는 역사여행.

정동길은 덕수궁 돌담길이라고도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예전엔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과 함께 걸으면 이별한다는 설도 있었지만, 요즘은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을 걸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설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세월 따라 설도 바뀌나 봅니다. 정동길은 백여 년 전 힘없고 나약했던 고종임금의 애환과 아픔이 서린 길입니다. 당시 열강들의 힘의 논리로 임금은 무기력했고 민초들의 삶은 고단했습니다.

백 년이 지난 정동길엔 문화가 꽃핍니다. 추위를 견뎌낼 수 있게 가로수는 예쁜 옷을 입었습니다. 수요일엔 정동 문화제도 개최됩니다. 길가에 작은 소품들이 즐비하고 세상에 온갖 잡스러운 수제품들이 정동길을 따라 손님을 기다립니다. 매일 11:30~13:30까지 차량은 통제합니다. 주변 직장인이 이 길을 오가며 점심시간의 여유를 즐기기 때문입니다.

예쁜 옷을 입은 겨울나무
예쁜 옷을 입은 겨울나무

정동길 여행은 서소문 청사부터 둘러봐야 합니다. 청사 13층 전망대 다락카페엔 평일 09:00~18:00까지 무료 개방해 덕수궁 일대를 조망할 수 있습니다.

다락카페엔 정동길의 역사와 고종의 흔적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는 정동길 주변은 다채롭고 활기찹니다.

다락카페 안엔 고종황제의 초상이 있습니다. 고종의 초상은 황제의 위엄이 느껴집니다. 체격은 아담해도 당시 조선사람 신체를 짐작을 하게 합니다. 어느 나라든 왕의 가족은 미남 미녀 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왕비는 미모보다 현명함과 덕망을 보고 선택했다고 하지만 후궁들은 왕이 직접 고른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미색이 빼어난 여인 눈에 띄었겠죠. 연산군의 여인 장녹수, 숙종의 여인 장희빈, 고종의 여인 엄귀인이 그렇습니다.

다락카페에서 내려다보이는 덕수궁 풍경은 한가하고 평화롭게 보입니다. 여행 당일은 문화가 있는 날이어서 청소년들이 현장학습으로 정동길 주변에 가득했습니다. 요즘 궁 주변을 여행 할 땐 꼭 갖춰야 할 한복과 셀카봉입니다. 한복은 주변 상가에서 저렴하게 대여 가능합니다. 궁 주변 여행의 트렌드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사진 찍는 풍경은 이채롭습니다. 외국인 여행자도 한복 입은 모습이 곱습니다. 덕수궁에서는 요즘 핫한 여행 사진을 찍느라 학생들 웃음이 넘칩니다.

다락카페에서 착한 커피에 쿠키를 먹으며 백 년 전의 고종황제를 생각해 봤습니다. 나라 잃은 설움이 얼마나 클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해방 이후 태어난 사람들은 당시의 아픔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텔레비전에서 영화에서, 책에서 전시관에서 역사의 현장에서 보고 듣고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도 없다는 말과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는 말이 자꾸 머릿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정동길 근대역사 여행을 할 때면 더욱 그렇습니다. 조선 왕조는 끝이 났지만 아픈 역사는 남아 있습니다.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방법은 올바른 역사관을 후손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고종황제
고종황제

덕수궁 석조전 뒤에 있는 ‘구 러시아 공사관’으로 발길을 이어 갑니다. 탑에 일부분만 남은 러시아 공사관은 당시를 증언하는 것 같습니다. 러일 전쟁은 한국과 만주(중국 동북지방)의 분할을 둘러싸고 싸운 것이지만, 그 배후에는 영국과 일본의 동맹(英日同盟)과 러시아와 프랑스 동맹이 있었습니다. 러시아는 패배의 결과로 혁명운동이 진행되었고,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고 만주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으나 미국과 대립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 일본은 조선을 강제로 합병하고 그들의 만행은 점점 더 혹독해집니다. 명성황후는 왜놈의 칼에 난자당하고 고종의 목숨까지 노리던 중 러시아 공사의 도움으로 궁을 몰래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합니다. 영화 ‘가비’에서 고종은 “나는 가비의 쓴맛이 좋다. 왕이 되고부터 무얼 먹어도 쓴맛이 난다. 한데 가비의 쓴맛은 오히려 달게 느껴지는구나”라고 했습니다.

당시 커피는 황족이나 신분이 높은 사람들만 먹는 귀한 음료였습니다. 가비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는 먼지와도 같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가비를 흔하게 먹을 수 있지만 백 년 전 가비는 황족만 먹는 귀한 음료이고 영화 ‘가비’에서 고종은 가비로 인해 대한제국의 꿈을 이루기도 했다고 합니다.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해 있을 때 러시아 무기상에게 막대한 자금을 들여 무기를 사들여 의병의 힘을 키우려 합니다.

하지만 통역을 하는 조선의 신하는 고종의 말을 왜곡해 통역합니다. 그자는 의병을 토벌하는 토벌대였습니다. 나라가 망하는 징조는 매국노가 득실거릴 때인 것 같습니다. 러시아 공사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고종은 일본에 매수되어온 ‘따냐’라는 조선 여인에게 통역을 부탁합니다.

•가는 길 ▶지하철 1호선, 2호선 시청역
•먹거리 : 유림(50년 전통의 가락국수집, 지하철 10번 출구) / 부대찌개 덕수정(정동 길) / 자연주의 카페 LUSSO(캐나다 대사관 옆 정동 빌딩 1층) / 카페 다락(서소문 서울시청사 13층)
•장애인화장실 : 시청역, 서소문 서울청사 1층, 성프란시스코성당 작은 형제회, 정동빌딩 1층
•무장애여행문의 :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전*칠 2019-11-26 12:36:21
역사는 되풀이 입니다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