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수용하기
다양성 수용하기
  • 서인환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8.11.08 17:39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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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방영되었던 KBS 드라마 ‘서동요’가 있다. 제4화에 선화공주가 서동을 만나 시시한 아이라고 놀린다. 아버지도 모르는 서동에게 선화공주는 ‘너처럼 시시하고 쓸모없는 것들을 보여주겠다’며 시장에 데려간다. 돼지내장, 사람 몸의 점, 지렁이, 구멍 난 독 등을 쓸모가 없지 않느냐고 하자 서동은 돼지내장은 발로 차고 놀 때 필요하고, 사람 몸의 점을 보고 잃어버린 딸을 찾은 사람이 있다고 하며, 지렁이는 공주에게 선물한 입술곤지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고 하고, 구멍 난 독은 금을 그어 물을 부으면 시간을 알 수 있다고 답한다.

선화공주는 보량법사의 말을 이야기해 준다. 천축국(인도)의 명의 지바카가 어느 날 스승이 약이 되지 않는 풀을 캐 오라고 했는데 빈손으로 돌아왔다. 왜 빈손으로 왔느냐고 하자, 조금도 약이 되지 않는 풀은 찾을 수 없다라고 했다. 그러자 스승은 이제 진정한 명의가 되었다고 했다. 신라의 모든 사소한 것들의 가치를 알아서 신라에 필요치 않은 것이 없게 하면 자신은 훌륭한 공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화공주는 시시하다고 서동을 놀렸지만 스스로 가치를 알라고 한 놀림이었던 것이다.

장애인으로 태어나거나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되면, 자립을 할 수 없거나 타인에게 폐를 끼치거나 가치가 절하되거나 무능력자가 되었다고 생각하거나 운명에게 포로가 된 자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장애를 시련이라 생각하고 극복의 대상이라 여긴다. 하지만 장애는 평생 동거를 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미국 독립 전쟁 때에 어느 병사의 주머니에서 발견되었다고 하여 ‘무명 용사의 기도’라고도 하고, 뉴욕 장애인재활센터‘에 걸려 있다고 하여 ’무명 장애인의 기도‘라고도 하는 시를 보자.

나는 하나님께 강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으나/ 약자가 되게 하시어/ 하나님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 주셨다./ 나는 하나님께 부자가 되어서 행복하게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으나/ 하나님은 나에게/ 가난을 주시어 현명하게 살게 해 주셨다./ 나는 하나님께 건강한 사람이 되어서 더 위대한 일을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으나,/ 하나님은 나에게 불구의 몸이 되게 하셔서 더 좋은 일을 하게 하셨다./ 나는 하나님께 인간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권력을 달라고 기도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약자가 되게 하시어 그것 이상의 보람된 삶을 느끼게 하셨다.(중략)

각각의 별들은 각각 하나씩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무수한 별들이 함께 모이면 밤하늘을 찬란히 비추고 아름답게 해준다.

우리가 약자이고 소수자이며 취약계층이라 말하는 장애인은 오히려 강자일 수 있고, 세상의 소중함을 더욱 잘 알고 의미 있게 살 수 있으며, 별처럼 다양성의 일부이며 그 다양성이 모여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하면서 누구나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다양성에 대한 시를 쓴 사람으로 윤곤강 시인을 많이 언급하고 있다. 당진 만석군의 집안에서 부유하게 자랐으나, 일제 강점기에 비판과 허무감을 노래한 시인으로 평가하기도 하고, 불꽃처럼 살다가 불꽃처럼 스러져(단어 뜻: 점점 희미해짐)간 카프 문학(조선플로레타리아예술동맹)가로 평하기도 하지만, 동물시를 통해 다양성을 노래한 시인으로 인정하기도 한다.

비바람 험상궂게 거쳐간 추녀 밑/ 날개 찢어진 늙은 노랑 나비가/ 맨드라미 대가리를 물고 가슴을 앓는다/ 찢긴 나래에 맥이 풀리어/ 그리운 꽃밭을 찾아갈 수 없는 슬픔에/ 물고 있는 맨드라미조차 소태맛이다/ 자랑스러울손 화려한 춤 재주도/ 한 옛날의 꿈 조각처럼 흐리어/ 늙은 무녀처럼 나비는 한숨진다(나비)

바보 미련둥이라 흉보는 것을/ 꿀꺽 참고 음메 우는 것은/ 지나치게 성미가 착한 탓이란다/ 삼킨 콩깍지를 되넘겨 씹고/ 음메 울며 슬픔을 삭이는 것은/ 두개의 억센 뿔이 없는 탓은 아니란다(황소)

날지 못하게 된 나비의 심정과 미련하다는 소리를 듣는 황소가 뿔이 없어 음매 울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위의 시는 시대 상황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지만, 억압 속에 약자들은 지금도 식민지 속에서 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시는 장애인의 다양성을 노래한 것으로 인용되고 있다.

장애를 상처 또는 손상으로 해석하는데, 그 손상은 가치의 상실이 아니라고 노래한 김재진의 ‘풀’의 시도 장애 인식 개선 교육에 자주 인용된다.

베어진 풀에서 향기가 난다./ 알고 보면 향기는 풀의 상처다./ 베이는 순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지만/ 비명대신 풀들은 향기를 지른다./ 들판을 물들이는 초록의 상처/ 상처가 내뿜는 향기에 취해/ 나는 아픈것도 잊는다./ 상처도 저토록 아름다운 것이 있다.

이 시를 풀은 상처에서 향기를 내는데, 사람들은 비명을 지른다고 하면서 손실이 소중하고 강점이 잇음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극복이나 아픔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도 있고, 종교계에서는 예수의 십자가 희생을 풀의 베어짐에 비유하기도 한다.

장애 인식개선을 위한 토론회 등에서 자주 인용되는 것이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다. 담은 벽으로 배제와 분리를 의미하지만, 그 벽조차도 장애인은 삶의 터로 여기고 삶의 가치를 찾고 살아간다고 강사들은 설명한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벽에 담쟁이가 오른다는 것은 시설이나 사회적 장벽이 담쟁이에게는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담을 벽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사회적 제약을 장애인들은 타인에 의해서 시혜적으로가 아니라 스스로 넘도록 주체성과 정체성, 자기결정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으로 토론회는 결론짓는다.

‘피라모스와 티스베’ 그리스 신화는 오비디우스 시인의 ‘변신’에 나오는 설화이야기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형비평에서 언급되는 이 설화는 부모의 반대에 사랑의 불꽃은 더욱 강력해지고, 금족령으로 집에 가두어지지만 이웃한 두 집은 벽을 통해 사랑을 속삭이고 벽의 틈을 발견하게 된다. 목소리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은 보고 싶음을 참지 못해 공동묘지에서 만나기로 하였는데, 티스베가 먼저 나가 기다리던 중 사자가 짐승을 잡아먹고 입에 피를 묻힌 채 목말라 우물로 가다가 티스베가 있는 곳을 지나게 된다. 놀라 몸은 숨겼지만 베일을 땅에 떨어뜨리게 되는데, 사자가 베일을 보자 마구 찢어버린다. 늦게 도착한 피라모스는 사자의 발자국과 피묻은 베일을 보고 애인이 죽은 줄 알고 칼로 자결을 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티스베가 그 뒤를 따라 죽는다는 이야기다. 이는 엇갈린 사랑을 비극적으로 이야기한 것이지만, 벽과 틈의 장면을 떼어 내어 벽은 분리가 아니라 소리의 전달매체로 해석하고, 사랑의 힘은 틈을 발견하게 한다고 해석한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오랜 전통과 관습 속에 고착화되어 차별로 나타난다. 이런 편견 속에서도 우리는 틈을 찾을 수 있고, 작은 틈이라도 찾으면 벽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벽을 다 허물어야 행복해진다면, 장애인의 행복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일시에 사회적 제약은 한 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행복하고자 한다면 틈은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벽을 거부하고 자유를 찾아 나섰다가 결국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 그 벽을 피해 야밤에 베일을 하고 자유를 찾아 떠나 불행해지는 것보다 우리에게는 밝은 대낮에 베일 없이 자유를 찾아 나서면 평등과 기회균등, 차별 없는 완전한 참여로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장애인의 삶은 계속된다. 그러나 그 삶을 우리 스스로가 가치를 수용하고 존중할 때 우리 손에 그 동안 주어지지 못했던 몫이 생기지 않을까 한다. 틈은 우리에게 그러한 기회와 에너지를 공급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시각장애인보다 더 눈의 중요성을 알고 잇는 사람은 없다. 지체장애인보다 다리의 중요성과 고마움을 아는 사람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엄마’의 소중함을 잊고 바쁘게 생활하지만 ‘엄마’ 소리 한번 들어보면 죽어도 한이 없는 언어장애인 엄마는 ‘엄마’라는 소리의 중요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우리는 부족해서 소중함을 알기보다 남아 있는 능력의 소중함을 더 깊게 느낀다면 가장 강점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서인환 객원논설위원(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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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 2018-11-14 17:03:19
알고 있지만 쉽게 잊어버리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되어 버리는 그런 소중함들을 항상 일깨워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다시한번 마지막 글이 와닿습니다. 소중한 글 잘 읽고 갑니다.

오*화 2018-11-13 17:54:42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사회복지 및 그 이외 환경에서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곧 인권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최*호 2018-11-13 13:28:40
분명히 알았다. 장애인복지 실천 12년만에 말이다.
장애인은 도움과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과 배움의 대상이다. 대상화는 싫지만.
장애인은 다양성의 시대를 앞서 걸어가는 선구자다.

윤*진 2018-11-10 06:54:13
어제 63빌딩컨벤션그랜드볼룸에서있은 전국지체장애인대회에 참석하신 전국의 도, 시, 군, 구, 의 지도자님을보면 다양성을 충분히 느낄수있었습니다
다양한기능 매사에열정을 가지신 분들이었습니다

안*진 2018-11-09 09:29:51
장애는 운명이라고는 가혹하지만 누군가에게 어쩔수 없이 찾아올수 있습니다.
공동체삶에서 우리모두가 극복해야될 숙제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