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 특집]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장애를 정의하는가?
[장애인의 날 특집]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장애를 정의하는가?
  • 양재원 학생인턴기자
  • 승인 2020.04.17 15: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장애인의 날은 ‘재활’에 초점… 국제 장애인의 날은 ‘웰빙’에 초점
“장애는 장애인과 장애를 대하는 사회 모두가 극복해야 할 문제”

대학에서 장애인 관련 교양 강의를 들고 있을 때, 교수님께서 월트 디즈니, 스티븐 호킹, 아인슈타인, 에디슨 등 유명 인사를 나열하고는 이 중에 누가 장애인인지 골라보라고 하셨다. 학생들은 당연히 스티븐 호킹 같이 의학적 치료를 요하는 환자를 선택했다. 그 후 교수님께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모두 다 장애인입니다.”

뒤통수를 맞은 듯 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만을 장애인으로 말하는 것은 기존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그 말을 시작으로 장애인의 인권에 대한 여러 이론과 그에 비해 너무나도 뒤쳐진 한국에서의 장애인 인권을 담담히 피력하셨다.

한국에서 4월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세계적으로는 12월 3일을 IDPD(국제 장애인의 날, International Day of Persons with Disabilities)로 기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한 이유는 만물이 소생하는 기운을 받아 장애인의 재활의지를 부각시키는 데 의미를 뒀기 때문이다. 한국 장애인의 날은 “국민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IDPD가 12월 3일인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IDPD의 전신인 IYDP(국제 장애인의 해, International Year of Disabled Persons)가 처음 제정된 이후 날짜를 계속 바꿔왔고, 1992년에서야 UN(United Nations)에 의해 12월 3일로 정착됐다. IDPD는 장애의 이해를 돕고 장애인의 존엄과 권리, 그리고 웰빙(Well-being)을 목표로 한다.

이 기념일은 모두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날이다. 그러나 미묘하게 다르다. 날짜만 다른 것이 아니다. 목적도 약간 다르다. 한국 장애인의 날은 ‘재활’에 초점을 맞췄다. 반면 국제 장애인의 날은 ‘웰빙’에 초점을 맞췄다. 장애를 극복하는 주체가 한국은 개인에게, 국제적으로는 삶의 환경에 맞춰진 것처럼 보인다.

이런 차이점은 한 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장애인’이라 부르는 대상이 다른 나라의 장애인과 같은 범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장애인’은 전 세계적으로 반드시 같은 대상을 지칭하고 있을까?

한국의 장애인은 국어사전에서 “신체 일부에 장애가 있거나 정신 능력이 원활하지 못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한국의 장애인이란 단어는 단순히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다.

반면 WHO(World Health Organization)의 장애인은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WHO는 장애인을 ‘장애를 가진 사람(People with disabilities)’으로 정의한다. 여기서 장애(Disabilities)란, 크게 세 부분을 포괄한다. 이는 (신체적, 정신적) 손상(Impairments), 활동의 제약(Activity limitations), 그리고 (사회적) 참여의 제한(Participation restrictions)이다.

즉, WHO의 장애인은 건강 문제뿐만 아니라, 개인 활동과 사회적 참여의 제약도 동등한 선상에서 고려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한 가지 더 고려해야할 기준이 있다. ICF(국제 장애, 기능, 건강 분류,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는 WHO에서 2001년 승인한 건강 관련 기준이다. ICF는 장애를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장애인이 어떻게 기능(Functioning)을 수행하지 못하는지에 중점을 둔다. 이런 ICF는 위의 세 가지 기준 외에도 환경(Environmental Factor)을 언급한다.

예를 들어서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간다고 가정해보자. 계단을 밟고 올라가든 경사로를 오르든, 2층으로 올라가면 이 활동을 기능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반면 1층과 2층 사이에 경사로가 없고 계단만 있다면, 휠체어로는 2층으로 진입하기 힘들다. 따라서 이 활동을 기능적으로 수행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환경에 따라 장애인은 장애인일 수도 있고, 장애인이 아닐 수도 있다. 이 점은 한국 사회가 오랜 기간 놓쳐왔던 관점이다. 우리의 환경이 단지 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활동이 어려운 장애인으로 만들었을 수 있다.

WHO의 ICF는 신체적이나 정신적 장애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장애인이 스스로 할 수 있는 활동의 범위가 넓다면, 기능의 관점에서 장애인은 장애인이 아니다.

이 점에서 한국 장애인의 날은 너무나도 쉽게 장애를 개인의 문제나 탓으로 돌리는 것처럼 보인다. 장애는 장애인만이 감당해야할 의미가 아니다. 장애를 이해하는 개념은 장애인과 장애를 대하는 사회 모두가 극복해야 할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사회의 장애인이 더 이상 장애인으로 살지 않도록 사회의 관심과 지지, 실질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ICF의 생물, 심리, 사회학적 모델(Biopsychosocial Model)의 모식도. (출처 : WHO)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