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큰 놀이터 ‘서울어린이대공원’ (하)
세상에서 가장 큰 놀이터 ‘서울어린이대공원’ (하)
  • 조봉현 논설위원
  • 승인 2020.05.25 11: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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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팠던 역사를 묻고 어린이 꿈을 키우는 공원으로 탄생
공원 내 울창한 숲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다함께 나눔길’ 돋보여

열린무대 바로 뒤에서는 왕릉에서나 볼 수 있는 석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공원 소재지 동네 이름인 능동은 왕릉과 관계가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한제국 순종황제의 첫째 부인이었던 순명황후의 무덤이 바로 이 자리에 있었다.

순명황후는 순종이 황태자였던 시기에 사망하여 이곳에 묻혔다. 이후 순종이 승하하면서 남양주 유릉을 조성할 때에 순종과 계후 순정왕후와 함께 세 분의 유해가 합장되었다.

유릉을 조성하면서 순명왕후 유해만 옮겨가고 석물은 그대로 두는 바람에 지금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공원자리에 있었던 무덤은 주인이 황태자비 신분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능이 아닌 원이었으며 유강원이라 했다. 순종이 황제가 되면서 저승에서나마 황후가 되었다. 지금의 지도에도 이 지점에 순명비유강원석물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순종은 우리 역사상 중세 이후에 최초로 황태자를 거쳐 황제로 등극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미 외교권이나 입법권, 인사권을 모두 잃은 나라를 물려받은 것일 뿐이었다. 황제 역할은 해보지도 못하고 3년 만에 이민족에게 나라를 빼앗긴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순명황후는 남편이 황제가 되는 것도 못보고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황후로서 나라를 빼앗기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순정왕후까지 세 사람 모두 우리 역사상 가장 불행한 비운의 주인공들인지도 모른다.

석물을 둘러보는 동안 그러한 비극의 역사가 오버랩이 되며 쓸쓸한 생각이 밀려들었다.

순명비유강원석물 ⓒ소셜포커스

 

이 공원에는 또 하나의 역사적 사연이 있다. 왕후의 무덤을 이장해 가자 조선총독부는 그 자리에 조선 최초의 골프장을 세웠다. 국가를 팔아먹고 귀족 작위를 받았던 사람들은 이곳에서 일본인들과 함께 골프를 즐겼을 것이다.

해방 후에는 경성골프장에서 서울컨트리클럽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계속 운영하다가 어린이대공원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1973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맞춰 문을 열었다.

열린무대를 지나면 최근에 꾸민 것으로 보이는 ‘무장애 통합정원’을 경유하면 동물원 입구가 나온다. 동물원 맞은편에는 실내식물원이 있지만 코로나 사태로 모든 실내 공간이 개방되지 않고 있다.

정문에서 바로 보이는 큰 건물 안에는 어린이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상상나라가 있다. 그렇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들어가지 못한다. 식물원 건물 앞의 야생화원에는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봄 축제를 즐기고 있다. 그러나 종류는 많지 않다.

ⓒ소셜포커스
야생화원의 봄꽃 ⓒ소셜포커스

 

동물원은 서울대공원에 비하면 너무 작은 규모를 갖고 있다. 그러나 어린이대공원이라 그런지 동물원 주변으로 아기와 어린이를 동반한 유모차 부대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동물원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나와서 남문 쪽으로 이동하면 잘 조성된 물놀이장이 여름철을 기다리고 있다.

물놀이장을 지나면 남문 쪽에서 구의문 쪽으로 넘어가는 곳은 숲을 지나게 되어 있다.

이 구간과 잔디축구장 뒤편으로 명상정원 주변까지의 울창한 숲속에는 ‘다함께 나눔길’이 조성되어 있다. 1.2km에 달하는 이 길은 장애인 및 어린이와 유모차가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경사가 완만하게 이어진다.

데크로드와 경화토 포장방식으로 되어 있어서 이동약자들도 편하게 대공원 숲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2017년도에 복권기금의 지원으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이 공원에서는 이 시설이 이동약자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인 것 같다.

동물원을 관람하는 유모차 부대 ⓒ소셜포커스

 

다함께 나눔길과 숲속 풍경 ⓒ소셜포커스
다함께 나눔길과 숲속 풍경 ⓒ소셜포커스

다함께 나누는 숲길에서 나오면 명상정원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보인다. 그 통로를 따라 들어가다 보면 동물원 후문 쪽으로 나오게 된다. 나오는 통로에는 단차가 있어서 휠체어를 타고 그대로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반대로 휠체어 탐방객이 동물원을 경유하여 후문으로 나와서 명상정원 앞(오히려 그쪽이 주 통로임)을 지나게 된다면 단차를 발견하고 들어가는 것을 아예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 단차를 측정해 보니 불과 7.5cm에 불과했다. 공원을 설계하고 시공할 때 왜 그런 개념이 없는 시공을 했는지 원망스럽다. 그러나 그 단차해소를 위해 몇 개의 경계석을 다운석으로 바꾸는 데는 단 몇십만원이면 충분할 것이다.

불편을 안겨주는 시설을 그대로 방치해둔 것이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공원 곳곳에는 단 몇 만원이면 해결할 수 있는 단차가 아주 많이 있다.

명상정원 안에는 잠시라도 명상에 잠기면서 독서를 할 수 있도록 책장과 도서가 비치되어 있다. 명상정원 내 통로의 일부 노면은 보도블록과 나무판재를 혼합하여 시공해놓았다. 그런데 이곳은 요철 현상이 심해 휠체어나 유모차가 통행하는데 불편이 매우 크다.

그렇다고 예쁘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다른 장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공원 후문 입구에도 상당한 공간에 요철블록이 깔려 있다. 공중시설의 노면은 요철구조를 엄격히 금하도록 법으로 규정했으면 좋겠다.

명상정원 출입구와 반대쪽 출구의 단차 ⓒ소셜포커스
명상공원 내 독서시설, 그러나 노면은 이동약자에게 큰 불편을 안겨주는 시설이다. ⓒ소셜포커스
명상공원 내 독서시설, 그러나 노면은 이동약자에게 큰 불편을 안겨주는 시설이다. ⓒ소셜포커스

공원 홈페이지에는 공원 내에 455개의 장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장의자들이 구조적으로 이동약자를 위한 배려와는 거리가 있다. 휠체어 장애인이나 유모차가 일행과 함께 이동할 때도 많을 터인데, 이런 경우 이동약자는 어쩔 수 없이 외톨이가 되어야 한다.

얼마 전 보라매공원에 갔을 때 대부분의 벤치가 탐방로와 경계 없이 수평으로 설치되어 곧바로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을 보았다. 벤치 바로 옆에는 항상 휠체어나 유모차도 쉴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게다가 휠체어 유모차 표식까지 해 놓았다.

어린이대공원도 이런 시설을 좀 배웠으면 한다. 전국의 공원들이 본지에서 연중기획으로 연재하는 공원시리즈만 잘 챙겨 봐도 엄청난 변화가 올 것이라 생각한다.

이동약자를 외톨이로 만드는 곳곳의 휴게 의자 ⓒ소셜포커스
이동약자를 외톨이로 만드는 곳곳의 휴게 의자 ⓒ소셜포커스

동물원 입구에는 식당과 편의점 및 기념품 판매점이 있다. 편의점은 출입구 앞에 몇 개의 계단이 있어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다. 식당 안쪽으로 우회하면 경사로를 이용하여 접근할 수가 있다.

식당 홀에서 편의점으로 통하는 길목을 임의로 막아 놓는 바람에 결국 휠체어는 편의점을 이용할 수 없었다. 공공기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관리사무소에 연락했더니 즉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알려왔다.

공원에는 13군데 화장실이 있다. 장애인용은 대부분 널찍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장애인 화장실 내에 비상시 관계자 호출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도움이 필요할 경우 벨을 누르면 상황실은 물론, 지나가는 경비원의 휴대폰에도 전달된다. 그리고 팀장급 관리자의 휴대폰에도 문자 메시지로 알려주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편의점 앞의 계단 그리고 폐쇄된 휠체어 통로 ⓒ소셜포커스

다음에 소개하는 글은 탐방루트를 소개하면서 잠시 나왔던 “무장애 통합정원”에 대한 필자의 주관적 견해임을 먼저 밝혀둔다.

무장애 통합정원은 최근 시설공단에서 3억원의 공사비를 투입하여 400평의 공간에 조성한 시설이다. 그런데 그 공간은 애초부터 완전한 평지에 다른 시설물이 있었다. 그대로 두어도 완전한 무장애 공간이었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무장애”라는 생색을 내기 위해 3억원을 투입했다고 한다. 현재 4개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아직 정원이라고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이다. 꼭 장애인만을 위한 시설은 아니고, 의미 있는 조형물도 있으니 헛돈을 썼다고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공중시설의 대표 격인 공원은 누구나 차별 없이 이용해야 하므로 전체가 무장애 공간이 되어야 한다. 어린이대공원 전체 면적이 16만평이나 되고, 곳곳에 장애인 불편시설이 산재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장애 통합정원은 전체 공원면적 중 1%도 안 되는, 아니 정확히 0.25%에 불과한 면적이다. 그대로 두어도 무장애 공간인 그곳에 무장애를 이유로 3억원을 썼다면 생각 좀 해봐야 한다.

공원을 둘러보면 명상정원 진입로와 같이 단 몇십만원만 투입해도 장애를 해소할 수 있는 곳이 아주 많다. 필자가 2년 전에 시정을 건의했던 곳곳의 불편시설이 지금도 그대로 있다. 3억원이라는 예산을 확보했다면 공원 내에 산재한 장애시설부터 보완하여 공원 전체의 무장애 비율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 그 예산의 반만 들였어도 이 공원의 무장애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이 진정한 무장애 정책일 것이다.

그런데 공원 관계자는 그런 “무장애 통합정원”을 전국에서 가장 먼저 만들고 홍보를 하여, 다른 공원들도 따라오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 공무원들은 제발 그러한 이벤트성 생색내기 전시행정은 그만했으면 한다.

아무튼 이 공원은 앞에 소개한 내용 외에도 자랑거리와 개선할 부분이 많다. 나머지는 사진 설명으로 대신한다. 이 공원의 무장애 만족도는 70점정도 주고 싶다.

무장애 통합정원 ⓒ소셜포커스
무장애 통합정원 ⓒ소셜포커스
안내실과 의무실, 방송실, 미아보호소, 가족 수유실 등을 잘 갖춘 정문 공원안내소 ⓒ소셜포커스
안내실과 의무실, 방송실, 미아보호소, 가족 수유실 등을 잘 갖춘 정문 공원안내소 ⓒ소셜포커스
공원관리사무소와 다목적 실내 시설이 있는 꿈마루 ⓒ소셜포커스
편리함을 갖춘 공원 내 다양한 시설 ⓒ소셜포커스
편리함을 갖춘 공원 내 다양한 시설 ⓒ소셜포커스
이 공원은 서울특별시 조례에 따라 시민의 건강을 위한 음주청정지역으로 운영된다. ⓒ소셜포커스
이 공원은 서울특별시 조례에 따라 시민의 건강을 위한 음주청정지역으로 운영된다. ⓒ소셜포커스
어린이공원의 어린이헌장탑은 이동약자에게 근접을 허락하지 않는다. ⓒ소셜포커스
공원 내에 산재한 장애인 불편시설 ⓒ소셜포커스
공원 내에 산재한 장애인 불편시설 ⓒ소셜포커스
후문 쪽 상당구간이 요철 블럭으로 되어 있어 휠체어나 유모차 등의 통행에 불편을 준다. ⓒ소셜포커스
횡단보도와 인도가 연결된 부분의 단차 ⓒ소셜포커스
횡단보도와 인도가 연결된 부분의 단차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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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 2020-05-25 14:15:11
큰 비용이 들어가는 재정문제가 아니라면 성의(관심)부족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겠네요. 대공원같은 공공시설의 책임자들, 나아가서 시설관리공단 관계자들은 각성(인식개선) 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