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했던 역사 위에 시민들이 만든 [부산시민공원]
암울했던 역사 위에 시민들이 만든 [부산시민공원]
  • 조봉현 논설위원
  • 승인 2020.06.02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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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공원탐방기 [ 7 ] - 부산시민공원
어두웠던 근대사 위에 시민들의 노력으로 탄생한 공원
일제 군사시설 이어받은 미군기지, 100여년 만에 제 자리로
첨단 시설 갖춘 최초의 유비쿼터스 공원으로 2014년 개원
최신 공원임에도 이동약자 불편시설 자주 눈에 띄어… BF인증도 못받아

 

부산시민공원은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에 위치하고 있다. 약 47만㎡의 면적에 ▲기억, ▲문화, ▲즐거움, ▲자연, ▲참여 등 5개의 주제로 조성되었다.

공원의 정문격인 남문에서 불과 200m 이내에 철도 부전역과 800m 이내에 지하철 부전역이 있고, 주차장도 충분하여 교통접근성이 우수한 편이다. 독립된 홈페이지를 갖추고 다양한 소개를 하고 있어 정보접근성도 우수하다. 북문 바로 앞에는 국립국악원이 소재하여 다른 문화시설과의 연계성도 높다.

부산시민공원은 개통 6년째에 불과한 최신 공원인 만큼 다양한 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다. 국내 최초의 유비쿼터스 공원(U파크)을 지향한다. U파크는 언제, 어디서나 온라인 연결이 가능한 공원이다.

공원 내 안전 확보를 위해 150여 대의 CCTV가 공원 구석구석을 살피며, 긴급 상황이 감지되면 통합운영센터와 각 소방서 경찰서에 통보된다. 다만 CCTV가 너무 많다보니 방문객의 사적 동선이 과도하게 기록되는 단점은 감수해야 한다.

방문객은 스마트폰으로 나무에 부착된 QR코드를 찍으면 수목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공원 안에 있는 주요 수목의 상태는 RFID(IC칩과 무선을 통한 정보관리) 기술을 적용해 체계적으로 관리된다.

공원 내에는 교목(은행나무 등 46종) 약 1만 그루와 관목(애기동백 등 43종) 약 84만 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다. 공원 양쪽으로 부전천과 전포천이 흐르고 있어, 이를 활용한 수변공간도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5월 중순에 방문했던 공원의 전포천에는 개천가로 노란 창포꽃이 만발했다.

공원의 정문격인 남문의 모습 ⓒ소셜포커스
공원의 주탐방로와 풍경들 ⓒ소셜포커스
공원의 수변친화 시설들 ⓒ소셜포커스

부산시민공원은 암울했던 우리나라의 근대역사가 고스란히 묻혀있는 곳이다.

1910년대 일제는 한반도를 강제병합하고 토지조사사업이란 미명 하에 많은 땅을 동양척식회사 등 일본의 자본가들에게 넘어가게 했다. 당시에 현재의 공원부지에 있던 전답들도 그렇게 일본에 넘어갔다.

그리고 1930년 그곳에 경마장이 생겼다. 1937년 중일전쟁 때는 경마장 기능이 축소되고 일부가 군사기지로 바뀌었다. 기마부대가 설치되고, 마필훈련장 등으로 함께 사용되었다. 이로 미루어 조선총독부가 그곳에 경마장을 설치한 목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1941년 태평양전쟁 이후 이곳에 병참부대가 설치되었고, 이 부지는 그 전쟁이 끝날 때까지 군수품 야적장으로 활용됐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선언과 동시에 식민통치는 막을 내렸고, 세계대전도 끝났다. 그리고 그 땅도 한국 사람들의 품으로 돌아오는 듯 했다.

그러나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 땅에 미군이 들어왔고, 그곳엔 주한미군사령부가 차려졌다. 명칭은 ‘캠프 하이얼리어(Camp Hialeah)’였다. 이곳의 경마장을 본 한 미군 요원이 자기 고향 근처의 유명한 경마장을 떠올리고, 그 도시 이름을 따서 하이얼리어로 이름지었다고 한다. 부산사람들은 “햐야리아 부대”라고 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군사령부는 용산기지로 옮겨갔다. 그러나 하야리아 캠프는 주한미군의 군수물자 보급 기지로서 군사적 역할을 계속 했다. 특히 지정학적으로도 부산항은 군병력과 물자 수송의 관문이었기 때문에 하야리아 캠프의 역할은 그만큼 컸다.

하야리아 미군캠프는 남북한 분단과 긴장 속에 동아시아의 군사적 안정이라는 본래의 역할을 감당했다. 이외에도 하야리아라는 소규모 독립 사회를 바라보는 지역사회의 시선 속에서 그들의 새로운 문화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물론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한편 또 다른 관점에서 공여지의 반환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요구도 점차 높아지게 되었다. 1995년에 즈음하여 캠프 하야리아 이전 및 부지 반환을 위한 각종 시민사회단체가 결성되면서 시민공원 조성 운동까지 일어났다. 이러한 노력과 한미간 협정타결로 2006년에 미군기지에서 폐쇄됐다. 그 땅은 무려 100년 가까이 되어서야 이민족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난 셈이다.

그리고 이후 환경조사 및 공원설계와 4년에 걸친 공사를 거쳐 지난 2014년 5월 1일 역사적인 개장으로 드디어 부산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공원에는 장교클럽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만든 공원역사관이 있다. 그곳엔 대한제국 시절 평화로운 농토, 일제강점기 경마장과 군마훈련소, 미군 주둔기의 캠프 하야리아, 부지 반환과 공원 조성기 등의 과정이 생생하게 기록되어있다.

공원역사관의 전경과 실내 전시물 ⓒ소셜포커스
패망으로 철수하는 일본군(왼쪽) 및 6·25 전쟁으로 참전하는 미군(오른쪽) 모형 ⓒ소셜포커스
6·25 전쟁 때 캠프 하야리아의 미군 모습 ⓒ소셜포커스
캠프하야리아 부지반환과 공원조성을 위한 시민들의 노력 ⓒ소셜포커스

이 공원은 미군부대가 떠난 자리에 조성하면서 일부 흔적들은 보수하여 기념 삼아 남겨두었다.

하사관 숙소로 사용되었던 12개의 건물에는 작가공방, 갤러리, 공연장, 연습실로 구성된 문화예술촌을 조성했다. 금속, 섬유, 판화, 도자, 목공예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작가공방은 공모를 통하여 입주자를 선정하며, 선정된 입주자에게는 창작활동 및 프로그램 운영을 지원한다. 입주한 작가는 오픈스튜디오 형식으로 작업 활동 및 체험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해야 한다.

문화예술촌 옆에는 사병들의 숙소로 쓰이던 막사 건물 하나를 골라 철거하지 않고 유아전용 뽀로로 도서관을 만들었다. 유아를 위한 다양한 캐릭터와 영상물 및 도서 등이 구비되어 있다. 유치원 등에서 단체로 현장학습을 오기도 한다.

뽀로로 도서관 옆에는 애기동백 2천400그루를 복잡한 미로형태로 빽빽하게 심어놓았다. 연인이나 친구, 가족단위로 술래잡기나 산책을 즐기는 등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다.

공원의 중앙에는 축구장 6배 넓이인 하야리아 잔디광장이 아름다운 초원처럼 펼쳐진다. 하야리아는 인디언말로 “아름다운 초원”이라는 뜻이다.

잔디광장에 인접하여 서클타워, 자연체험, 감성발달, 돔플레이어 등 유아용 놀이시설이 잘 꾸며져 있다.

공원은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개방되므로 야경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시설도 많다.

작가공방이 모여 있는 문화예술촌 ⓒ소셜포커스
캠프 하야리아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망루의 모습 ⓒ소셜포커스
유아 전용 뽀로로 도서관의 모습 ⓒ소셜포커스
유아들의 놀이시설 (서클타워와 감성발달 놀이동산) ⓒ소셜포커스
애기동백 2천400그루로 꾸민 미로원의 모습 ⓒ소셜포커스
애기동백 2천400그루로 꾸민 미로원의 모습 ⓒ소셜포커스

 

공원의 야경 ⓒ소셜포커스

부산시민공원은 개장 6년에 불과한 최신식 공원이지만, 유감스럽게도 휠체어 장애인 등 이동약자에게는 불편시설이 자주 눈에 띈다. 물론 오래된 다른 공원에 비해서는 양호한 편이다. 그러나 6천600억원이 넘는 천문학적 공사비와 최근에 개장한 공원이라는 점에 비추어 보면 너무 실망스럽다. 이러한 공원을 만들려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의 제임스 코너 교수에게 공원설계를 맡겼을까?

공원 홈페이지에는 설계단계에서부터 노약자와 어린이, 장애인들의 사용에 불편이 없도록 2014년 BF(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예비인증을 받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예비인증을 받은 사실까지 소개하면서도 본인증에 대해서는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본인증은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아예 자신이 없어 본인증은 신청하지도 않았을까? 그랬다면 더 문제다.

사실 예비인증은 설계단계에서 받게 된다. 공사가 완료되면 본인증을 받아야 하고, 예비인증은 통상 1년이 지나면 효력을 상실한다. 본인증도 5년마다 다시 받아야 한다. 이 공원은 2014년 5월에 개장했다. 따라서 이 공원은 BF인증을 받지 못한 공원이다.

이미 효력도 없는 6년 전의 예비인증 사실을 굳이 설명하면서 마치 무장애 공원인 것처럼 내세우려 했다면 이는 시민들을 우롱하는 것이다.

전국 최초의 U파크라고 자랑할 만큼 첨단공원이라면서 도대체 얼마나 문제점이 많기에 BF인증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을까?

이 공원을 찾는 사람들도 휠체어 장애인은 물론, 유모차를 밀고 온 가족, 킥보드를 가져온 어린이, 보행기에 의지하는 고령 노인 등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산책로 곳곳의 요철블럭, 징검다리식 통로, 판석노면 등은 이들에게 큰 불편과 함께 때로는 위험요소가 되기도 한다.

남1문에서 들어서면 방문자센터 쪽에 거울연못이 있고, 연못 내부로 데크가 연결되어 있다. 데크로드 양쪽으로 가끔 분수가 작동되면 데크는 터널을 이루는 멋진 시설이다. 그러나 이 데크마저 이동약자에겐 불편한 구조로 되어 있다. 휠체어를 타고 데크를 따라 연못 안으로 진행해 보았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시공을 했는지 데크로드 위의 미끄럼방지 테이프가 심한 요철 현상을 발생하게 한다. 휠체어의 요동이 너무 심하여 10m도 진행하지 못하고 되돌아와야 했다. 이런 시공을 할 때는 휠체어를 타고 직접 지나가봤으면 한다.

공원에는 2개의 야외무대가 있다. 무대는 2개 모두 별로 높지 않았다. 올라가는 통로는 계단이 2~3개에 불과하지만, 휠체어가 올라갈 통로는 없다.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에는 “집회장 등에 무대가 설치된 경우에는 바닥에서 무대까지 반드시 경사로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지켜지지 않았다. 전형적인 장애인 차별시설이다.

공원 동편을 가로지르는 가느다란 실개천(전포천)은 한가운데에 징검다리가 있고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휠체어나 유모차 등 이동약자는 전혀 건널 수 없다. 일행과 함께 움직이는 이동약자는 여기서 외톨이가 되어야 한다. 자연석을 예쁘게 깎아 자연친화적으로 설치한 것은 좋다. 그렇지만 이동평등권을 확보하면서도 자연친화적인 공법이 얼마든지 있을 텐데…. 정말 원망스럽다.

유모차, 킥보드, 노인보행기 등 다양한 도구를 이용하는 공원방문객 ⓒ소셜포커스
숲 사이로 시원하게 뻗은 산책로, 그러나 이동약자에게 불편을 주는 요철노면 ⓒ소셜포커스
바퀴 달린 보행장비의 통행을 어렵게 하는 징검다리형 산책로 ⓒ소셜포커스
이동약자를 완전히 외톨이로 만들어 버리는 징검다리. 설계 의도를 살리면서 누구나 이용가능한 시설도 많을 것이다. ⓒ소셜포커스
2곳의 야외무대는 모두 휠체어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차별시설이다.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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