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공백에 죽어가는 발달장애인 가족… "죽음의 행렬을 멈춰라!"
돌봄 공백에 죽어가는 발달장애인 가족… "죽음의 행렬을 멈춰라!"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0.06.11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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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이어 광주서 발달장애인 모자 동반자살…"승현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재난사태에 구멍 숭숭… 3년전 정부 대책, "모래 위 쌓은 성"
장애 특성 고려한 돌봄체계 있었다면 죽음 반복되지 않았을 것
주간활동서비스 확대ㆍ중증장애인 인턴 확대ㆍ특수교육법 전면 개편 요구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반복되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죽음을 추모하고 이를 방관하는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10일 오전 열었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예지 기자] = "언니가 떠나기 전 일요일, 텃밭에서 언니가 따준 상추, 완두콩, 머윗대가 냉장고 한 구석에 그대로 남아있어. 가슴이 아파서 먹을 수가 없네. 청와대 앞에서 집회할 때가 가장 힘이 난다던 언니. 우리 모두가 그토록 바라던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꼭 도입하고, 우리 아이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사회 만들게요. 언니, 하늘에서 지켜봐주세요…"

지난 3일 광주에서 발달장애인 자녀와 함께 목숨을 끊은 어머니를 추모하는 동지의 편지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광주지부 최수정 부회장은 추모사를 낭독하며 터지는 울음을 감추지 못했다. 주변에서도 속속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가족은 코로나19 여파로 사회복지시설이 장기 휴관에 돌입하며 가중된 돌봄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비극적 결말을 택했다. 올해 3월 제주에서 발달장애인 자녀와 그 어머니가 차안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지 3개월만에 같은 이유로 또 한 가족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매년 1건 이상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동반자살을 선택하고 있다. 영정사진 모양의 피켓을 들고 광장에 모인 부모연대 회원들의 모습. ⓒ소셜포커스

이처럼 발달장애 자녀의 돌봄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가족 일동이 세상을 등진 사건은 대전, 울산, 대구, 부산 전국 각지에서 매년 일어나고 있다. 2013년 11월에는 서울 관악구의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가 "이 땅에서 발달장애인을 둔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너무 힘든 것 같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녀를 살해한 뒤 자살했다.

이에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발달장애인 가족을 추모하고, 정부에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기 위해 10일 오전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각지에서 모인 부모연대 회원들은 검은색 옷을 맞춰 입고 영정사진 모양의 피켓을 든 채 광장을 메웠다.


■ "어떻게 부모가 자식 죽이나"… 들여다보면 사회적 타살, 간과해선 안 돼

부모연대 광주지부 회원이 동료를 잃은 슬픔을 승화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소셜포커스

"아들아! 너라는 선물이 내게 왔을 때 엄마는 비명을 지를 뻔했단다. 너무 기뻐서 말이야. … 어디서 잘못된거지, 내가 뭘 잘못했지.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어. 난 그냥 선물을 받은 것뿐. 너라는 최고의 선물을. 사랑해 승현아! "

광주지부 회원은 숨진 동지가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지은 시를 광장에서 울부짖었다. 동료를 잃은 슬픔에 뜨거움도 느껴지지 않는지 맨발로 돌 위를 누비며 '언니야!'하고 크게 소리쳤다. 평생 어른이 될 수 없는 아들을 보며 선물이라고 자신을 도닥였을 고인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시에 여기저기서 가슴 치며 우는 소리가 또 다시 터져나왔다.

'발달장애 주간활동서비스 보장하라'는 현수막으로 눈물을 훔치는 부모연대 회원들. ⓒ소셜포커스

"생후 10개월에 의료사고로 지체장애인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소주 3병을 마신 채 나를 태우고 고속도로를 마구 달렸다는 사실을 10살때 처음 알았습니다. 스스로 세상을 떠난 발달장애인 가족과 다른 점은 차가 고속도로 중간에 멈춰서 죽지 않았다는 것뿐입니다!"

전국장애인철폐연대 변재원 정책국장은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어머니도 동반자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발달장애인뿐만 아니라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라면 사회의 편견 어린 시선, 정부의 무책임 속에 한번쯤은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는 것이다. 

변재원 정책국장은 이어 "20, 30년 국가가 책임지지 않아서 부모가 자녀를 죽여야 하는 현실을 알기나 하고 자녀의 의사결정권 운운하며 비난하나"라며 '동반자살'이라는 단편적 사실에만 주목하는 사회의 시선도 강하게 규탄했다.

부모연대 인천지부 지부장도 "오죽하면 자식과 함께 죽겠나. 여기 있는 어머니들은 누구나 하루에 한 번씩은 다 그런 생각을 한다. 그래도 우리 아이에게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주고자 버티고 또 버티는 거다"라며 앞선 발언에 공감했다.


■ 줬다 뺏기식 발달장애인 정책... 방과후활동 예산 100억 삭감

기자회견에 참석한 관진발달장애인자립생활센터 회원들. ⓒ소셜포커스

부모연대 측은 "2018년 6월 발달장애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이 발표된 후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방과후활동 예산 100억을 삭감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국가 책임을 사실상 포기했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고 소리쳤다.

부모연대의 발언에 따르면 방과후교육 서비스가 필요한 발달장애인 아동은 전국에 약 5만 명이다. 그러나 정부가 편성한 예산은 단 7쳔명 분량에 불과하다. 주간활동서비스도 마찬가지였다. 성인기 발달장애인은 약 8만 명이지만 예산은 4천명을 대상으로 책정됐다. 

안양지회 이예진 지회장과 서울지부 회원은 "죽음 앞에 예산 삭감이 가당키나 한가. 가정이 해체되고 파괴되는 동안 정부는 한 번이라도 관심 보이고 고통을 나눠본 적이 있나"라며 소리쳤다. 이어 "부모가 없으면 우리 아이들은 외딴 섬에서 노예 생활을 하거나 감옥 같은 병원에 갇혀 살지도 모른다"라며 발달장애인을 책임지기는 커녕 호주머니만 틀어쥐는 정부를 지적했다.


■돌봄 공백이 발달장애인 가족 사지로 몰아… 국가책임제 확실히 마련하라!

윤종술 대표. ⓒ소셜포커스

"발달장애 자녀, 24시간 부모와 가족이 끌어안고 사투 벌입니다. 복지부와 각 부처, 지자체는 뭐했습니까! 이게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포용국가입니까? 이게 진정한 복지국가입니까? 발달장애인도 동등한 국민으로 대우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 만들어주십시오!"

2018년 9월 정부가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지원대책을 발표한 뒤 3년이 지났다. 그러나 발달장애인 가족의 '죽음의 행렬'은 계속 잇따르며 해당 대책이 유명무실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부모연대 윤종술 대표는 이에 대해 강하게 규탄하면서 국가책임제 실현을 위한 주요 정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부모연대가 요구하는 정책은 크게 3가지이다. 주간활동서비스의 보편적 시행과 가족지원 사업 추진을 골자로 하는 복지서비스 확대 정책, 중증장애인 인턴제 확대를 비롯한 노동권 보장 정책, 특수교육법 전부 개정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권 보장 정책이다.

주간활동서비스에 대해서는 ▲서비스 대상 확대 ▲하루 8시간 보장 ▲주간활동서비스 이용시 활동지원서비스 급여 차감 폐지 ▲주간활동서비스 1:1지원 부활 등을 요구했다. 장애인가족지원사업 수행기관을 중앙, 지역으로 조직해 발달장애인 가족의 육체적, 심리적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할 것 또한 요구했다. 

성인기 발달장애인에 대한 취업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돌봄 부담은 오롯이 부모에게 다시 돌아간다. 이에 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 노동권 확보를 위해 ▲발달장애인 취업 시 직무지도원 2년 지원 ▲근로지원인, 직무지도원 각 1만명 확대 ▲현장중심 중증장애인 인턴 1만명 확대 등을 요구했다.  

특수교육법은 전면적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법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다. 부모연대는 TF팀을 마련해 현행법을 대폭 개정하고, 장애인 평생교육시설 운영 확대로 부모의 교육 부담을 해소할 것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은 헌화식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영정사진 앞에 놓인 국화들.  ⓒ소셜포커스

이날 기자회견은 스스로 세상을 등진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기리는 헌화식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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