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탈시설 정책 제대로 시행되고 있나
장애인 탈시설 정책 제대로 시행되고 있나
  • 노인환 기자
  • 승인 2018.11.22 1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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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퇴거자 절반 '일상생활 불편'
"자립생활주택시스템 통합관리 필요"

지난해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는 ‘장애인의 탈시설화’였다. 하지만 정부의 탈시설 정책과 실제 현장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관계자 및 장애인들의 이질감은 쉽게 좁혀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복지재단과 한국장애인개발원은 21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서울시 장애인 전환서비스 지원사업’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에는 장애인자립생활주택 관련 유관기관 종사자와 일반시민 200여명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서울시복지재단 홍영준 대표이사는 인사말을 통해 “탈시설화는 장애계의 핫한 이슈다. 이번 세미나에 많은 참석자분들이 오신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처럼 많은 관심이 모이는 만큼 탈시설에 대한 이견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그 중간점을 찾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미나는 1, 2부로 구성됐으며 1부에서는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용득 교수의 ‘지역사회 기반 거주서비스 체계 만들기’와 한국장애인개발원 강정배 팀장의 ‘서울시 탈시설 장애인 종단연구’로 연구발표가 진행됐다.

2부는 ‘장애인 자립생활, 지역사회에서 공존을 그리다’라는 주제로 천애재활원 허곤 원장,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송미란 국장, 시립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최미영 사무국장과 유은일 센터장, 한국자폐인사랑협회 신탁·의사결정지원센터 전창훈 변호사 순으로 주제발표가 이뤄졌다.

기조강연에 나선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용득 교수가 지역사회 거주지원 체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노인환 기자

◆ 탈시설, 법제화·예산 등 제도적 뒷받침 부족

1부 연구발표는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용득 교수의 기조강연으로 시작됐다. 김 교수는 “장애인 자립생활의 최종목표는 말 그대로 자립이다. 그런데 관련된 일을 10년간 해보니 이 생각만으로는 한계가 있더라”며 “어떻게 하면 정부의 정책과 장애인 거주생활 개선이 공존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장애인복지법 제59조 제3항은 ‘장애인거주시설의 정원은 30인을 초과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다만 법 개정 이전 시설에 대해서는 적용을 하지 않는다. 2016년 12월 기준 30인 이하의 시설 수는 7년간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시설의 규모를 줄이는 정책, 즉 탈시설의 소규모화는 충분히 진행되고 있었다. 이에 김 교수는 여전히 법 개정 이전의 100인 이상의 시설에는 1개소당 평균 100~150명이 거주하고 있어 정부의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탈시설의 언어적 개념은 벗어나다(release) 또는 개조(reform)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 김 교수는 “자립생활(탈시설) 정책의 관점에서 보면 전환지원(release)과 시설혁신(reform)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시설혁신은 건물과 공간, 재정권한, 직원역할 등 물적·인적 인프라가 모두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시설형태는 직원이 배치되는 ‘공동 지원주택’과 외부 지원을 받는 ‘개인 지원주택’으로 나뉜다. 직원배치가 되는 공동 지원주택은 24시간 도움은 받을 수 있지만 프라이버시가 잘 지켜지지 않는 단점이 있다. 외부 지원을 받는 개인 지원주택은 높은 개별화 지원은 가능하겠지만 외로움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는 맹점이 제시됐다.

김 교수는 “탈시설, 자립생활지원 등 이 모든 것은 제도화가 관건이다. 정부에서 내린 제도적 틀 안에서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갖춰지는데, 법적제도는 물론 예산측면에서의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기조강연에 이어 한국장애인개발원 강정배 팀장은 ‘서울시 탈시설 장애인 종단연구’에 관한 1차 발표를 진행했다. 이번 종단연구는 시설에서 퇴소한(탈시설한) 장애인의 지역사회 정착과정을 분석하기 위해 서울시 자립생활주택의 입소 대기자, 입소자, 퇴거자의 생활을 10년간 추적 조사한 것이다.

강 팀장은 “탈시설은 장애인이 단순히 시설에서 퇴소하는 것이 아니라, 퇴소한 장애인이 다시 시설로 돌아오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라며 “그들(퇴거자)의 일상생활이 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제는 장애인들이 자립생활주택에서 최장 7년간의 자립체험과정을 마친 뒤 지역사회로 나온 뒤에 발생됐다. 연구조사에 따르면 자립생활주택 ‘입주자’의 경우 거주지역 생활의 불편함을 느낀 사람은 17.4%였지만 ‘퇴거자’들은 이보다 높은 43.2%가 불편하다고 답했다.

강 팀장은 “이번 연구조사를 하면서 느낀 가장 큰 문제점은 탈시설 장애인들의 삶이 여전히 경제적, 심리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이라며 “경제적으로는 구직의 문제와 주택 관련 재정문제, 심리적으로는 가족과의 단절 및 사회적 고립감”이라고 했다. 연구조사를 보면 자립생활주택에서 ‘지역 내 복지기관 종사자로부터 정서적 도움과 지지를 받고 있다’는 응답비율은 89.2%로 매우 높았지만, ‘가족으로부터 정서적 도움과 지지를 받고 있다’는 응답은 47.0%로 낮았다.

21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서울시 장애인 전환서비스 지원사업 세미나'에는 200명에 가까운 참석자가 모여 높은 관심을 보였다. 노인환 기자

◆ 자립생활주택시스템 통합관리 제시

2부에서는 ‘장애인 자립생활, 지역사회에서 공존을 그리다’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진행됐다. 좌장인 총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백은령 교수는 “서울시가 전환서비스사업을 시작한 지 약 9년이 됐다. 그동안 탈시설화 장애인들의 자립생활과 지역사회 안에서의 장애인 삶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이러한 세미나가 마련됐다”며 세미나 취지를 밝혔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천애재활원 허곤 원장은 “현재 장애인 거주시설에 입소한 분들 중 연고자는 73.4%, 무연고자는 26.6%다.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진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연고자들 중에서도 연락이 닿지 않거나 가족과의 단절로 연고자라 할 수 없는 장애인들이 사각지대에 놓여지고 있다”며 거주시설의 관리망이 더욱 촘촘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거주시설 30인 이하에 대해서는 관리의 체계화를 위해 ‘16인 이하’로 더욱 소규모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허 원장은 “시설이기 때문에 장애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시설 관계자들이 시설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를 개선시키도록 노력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시설 관계자부터 시설의 문제점을 지적해야 한다는 의미로 허 원장은 “시설부터 제대로 운영돼야 탈시설, 자립생활화 등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또한, 현재 탈시설 정책의 대상인 장애인을 당사자 중심이 아닌 ‘보호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전했다.

다음 발표자인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송미란 국장은 “현재 해당 센터는 3개의 자립생활주택을 운영하고 있으며 앞으로 6명이 입주할 예정"이라며 “실제 장애인 자립생활주택의 입주준비부터 입주생활까지 모든 단면을 봐왔다”며 "일반 시설에서 아무런 역할이 없던 장애인들이 자립생활을 통해 배움, 취업, 여가 등 자신들만의 고유한 역할을 찾는 것에 큰 의의를 둔다"고 밝혔다.

송 국장은 향후 자립생활주택시스템은 지역사회의 통합적인 관리체계 없이는 그 유지가 어렵다고 호소했다. 현재 복지자원은 복지관, 자립생활센터, 국가기관 등 모두 따로 분리돼 있다. 이에 송 국장은 "자원이 하나로 통합돼야 한다. 예를 들면 동료상담은 자립생활센터가, 평생교육서비스는 복지관이, 공공서비스는 구청과 주민센터가 맡는 식”이라며 통합적인 지역생태계의 조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이렇게 장애인 자립생활주택, 탈시설 등에 대한 연구자료가 발표되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며 “탈시설 현황들이 연구로 다뤄지고 수치화되고 정책, 시설 등의 문제점들이 제시되는 것은 앞으로의 행보에 큰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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