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픈 근대사가 서려있는 장충단공원(하)
고달픈 근대사가 서려있는 장충단공원(하)
  • 조봉현 논설위원
  • 승인 2020.07.30 11: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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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국민가수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 강한 이미지 남겨
세종대왕의 과학정신이 깃든 수표교, 수표석은 보이지 않아
“호국의 길” 탐방코스, 역사를 이끌었던 호국 인물들 만날 수 있어
곳곳의 역사인물 기리는 공간, 장애인 접근성 개선할 수 없나?
주탐방로, 화장실, 음수대 등 일반시설 접근성은 양호한 편

[소셜포커스 조봉현 논설위원] = 장충단공원은 조선말 을미사변을 겪으면서 일본의 만행으로 순직한 장졸들을 추모하기 위해 이곳에 세운 장충단에서 유래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장충단은 파괴되고, 조선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기리는 박문사가 들어섰다. 해방 후 박문사는 철거되었지만 험난했던 민족의 근대사가 서려있는 곳이다.(자세한 내용은 이 글 상편 7월23일자 참조)

요즘은 장충단공원 하면 가수 배호가 불렀던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게다. 이 대중가요의 서정적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남아 역사 속의 아픔들이 가려진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 서정미에도 녹아 있지는 않을까?

배호는 1963년 21세 때 데뷔하여 많은 히트곡을 남겼으나 29세에 요절한 비운의 가수다. 가수생활을 10년도 못 했지만 그가 남긴 노래는 아직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실 배호도 장충단공원만큼이나 험난한 인생을 살았다. 1942년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대한광복군의 아들로 태어났다. 해방 후 귀국했으나 10대에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에 시달렸다. 가수생활을 하면서도 병마와 처절한 싸움을 이어가야 했고 결국 20대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쳤다. 그의 장례식 때 뒤를 따르는 행렬이 수백 미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 불세출의 가수였고 장충단공원을 그만큼 알렸는데, 공원 한편에 그의 히트작 “안개 낀 장충단공원” 노래비라도 하나 설치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장충단공원 노랫말 중에 “지난 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뚜렷이 남은 이 글씨”라는 대목이 나온다. 작사자의 뜻을 알 수는 없다. 사실 이 공원에는 장충단비와 함께 사명대사 및 이준 열사, 유관순 열사 등 역사적 인물들의 동상이 많다. “공원에 새겨진 이름과 뚜렷이 남은 글씨”라 함은 장충단비의 비문이나 이 사람들의 동상에 새겨진 내용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누군가가 젊은 시절 연인과 데이트 할 때 낙엽송에 새겨두었던 이름을 어루만지면서 헤어진 그 사람을 회상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사자의 뜻이 어디에 있건 상징적인 의미는 해석자의 몫이다.

장충단공원은 1971년 대한민국 제7대 대통령 선거 때 장충단공원에서 약 100만 명의 시민이 모인 가운데 김대중 후보와 박정희 후보가 유세대결을 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지금은 선거를 해도 그러한 장면은 만날 수 없다.

지금의 공원구역 바로 옆에는 국내 최초의 실내체육관인 장충체육관이 있다. 60대 이후의 사람들이라면 서울에서 살지 않았더라도 장충체육관 하면 연상되는 추억이 많을 터이다.

1966년 김기수 선수는 이곳에서 한국 최초로 복싱 세계챔피언에 등극한다. 김일이 이끌던 한국 프로레슬링의 전성시대 역시 이곳에서 펼쳐졌다. 복싱이나 레슬링 등 당시의 실내 인기스포츠가 TV나 라디오에서 중개 할 때면 항상 “여기는 장충체육관입니다”하는 멘트로 시작되었다. 지금도 귓전에 그 소리가 아득히 들려오는 듯하다.

공원 입구 ⓒ소셜포커스
공원 입구 ⓒ소셜포커스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의 노랫말을 연상케 하는 낙엽송 고목과 수목들 ⓒ소셜포커스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의 노랫말을 연상케 하는 낙엽송 고목과 수목들 ⓒ소셜포커스
한 때 우리나라 실내스포츠의 메카였던 장충체육관 ⓒ소셜포커스
한 때 우리나라 실내스포츠의 메카였던 장충체육관 ⓒ소셜포커스

공원에 들어서면 입구에서 아담한 정자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장충정이다. 장충정으로 부터 50m정도 진행하면 장충단비가 있고 그 왼쪽으로 화강석을 다듬어서 세운 수표교가 보인다.

수표교는 조선 세종대왕 때 청계천에 설치되었다. 청계천의 수위를 측정하던 수표를 세우면서 수표교라 불렀다. 많은 과학기구를 발명했던 세종대왕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다리다.

이 다리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제 제18호로 지정됐다. 청계천 복개공사를 하면서 1958년도에 다른 곳으로 옮겼다가 1965년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지금은 이곳의 수표교에는 수표가 없다. 보물 제838호로 지정된 수표는 수표교와 함께 이곳까지 왔다가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겨서 보관하고 있다.

수표 없는 수표교는 ‘팥소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보물을 안전하게 별도로 보관하는 것은 좋지만, 실물 크기의 모형이라도 이곳에 설치해두면 좋을 것 같다.

공원 초입에서 방문객을 맞는 장충정 ⓒ소셜포커스
공원 초입에서 방문객을 맞는 장충정 ⓒ소셜포커스
장충단비 주변을 산책하는 휠체어 장애인 ⓒ소셜포커스
장충단비 주변을 산책하는 휠체어 장애인 ⓒ소셜포커스
세종대왕의 과학정신이 깃든 수표교, 보물로 지정된 수표석은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겨졌다. ⓒ소셜포커스
세종대왕의 과학정신이 깃든 수표교, 보물로 지정된 수표석은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겨졌다. ⓒ소셜포커스

공원의 주탐방로는 널찍하고 이동약자도 다니기 좋도록 노면이 깔끔하고 단차도 없다. 여타의 많은 공원들이 주탐방로 중간 중간에 페빙스톤에 의한 요철구간으로 이동약자들에게 불편을 주는 사례가 있는데 이 공원에는 그런 구간이 없어 좋았다.

충분한 공간에 한옥의 운치까지 곁들인 공원의 장애인용 화장실도 마음에 썩 든다. 다만 장애인용 화장실이 남녀로 구분된 일반 화장실 내에 있다 보니, 이성의 활동 지원을 받은 장애인이 이용하는 데 곤란한 문제점이 있다.

공원 곳곳의 음수대는 휠체어 장애인도 접근하기 좋도록 단차가 없이 일반 평지와 수평을 이루고 있다. 곳곳의 벤치 등 휴게시설도 마찬가지다.

널찍하고 평탄한 공원탐방로와 접근성 좋은 휴게시설 ⓒ소셜포커스
널찍하고 평탄한 공원탐방로 ⓒ소셜포커스
널찍하고 평탄한 공원탐방로와 접근성 좋은 휴게시설 ⓒ소셜포커스
널찍하고 평탄한 공원탐방로와 접근성 좋은 휴게시설 ⓒ소셜포커스
널찍하고 편리한 장애인 화장실은 전통미까지 더하고, 음수대는 주변에 단차가 없어 휠체어 접근도 용이하다. ⓒ소셜포커스 
널찍하고 편리한 장애인 화장실은 전통미까지 더하고, 음수대는 주변에 단차가 없어 휠체어 접근도 용이하다. ⓒ소셜포커스 

그러나 이 공원에도 문제점은 있다. 이 공원에는 역사적 인물을 기리는 조형물이 많은데, 이러한 조형물은 대부분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야 한다. 장애인은 위인을 기리는데도 차별을 받는 것 같아 씁쓸하다.

물론 오래된 시설이고 지형상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어 이해를 못할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대안을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차차 시정이 되어야 한다.

안내 표시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사명대사 동상을 찾기 위해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동상은 공원 초입에 있지만, 숲속으로 수십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데다 입구에는 아무런 안내 표시가 없다.

나중에 공원탐방을 마치고 그냥 무심코 공원 옆으로 난 언덕길을 따라 동국대학교 입구(해랑예술관쪽)로 올라갔다. 학교 입구 옆에는 공원 숲 쪽으로 들어가는 오솔길이 보였다. 휠체어 통행에 문제가 없는 같아 그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사명대사 동상이 있었다. 바로 근접해서 볼 수 있었다. 다만 한 뼘도 안 되는 턱 하나로 인해 동상 앞쪽으로는 이동할 수 없어 뒷모습만 쳐다보아야 한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아니, 이런 길이 있었다면 공원 내 동상 입구(계단 앞)에 “사명대사 동상 가는 길”을 표시해두면 좋지 않을까? 이동약자가 우회하여 접근할 수 있는 방법까지 안내한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안내가 없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사명대사 동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까마득한 계단인데 안내표시도 없다. ⓒ소셜포커스
사명대사 동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까마득한 계단인데 안내표시도 없다. ⓒ소셜포커스
사명대사 동상으로 이동약자도 접근이 가능한 다른 길이 있지만 역시 안내표시가 없다. ⓒ소셜포커스
이동약자도 사명대사 동상으로 갈 수 있는 접근 가능한 다른 길이 있지만 역시 안내표시가 없다. ⓒ소셜포커스
사명대사 동상의 모습과 주변 시설 ⓒ소셜포커스
사명대사 동상의 모습과 주변 시설 ⓒ소셜포커스

역사적 문화유산이 많은 공원 일대에는 ‘호국의 길’ 도보 탐방코스가 있다. 탐방로는 사명대사상 → 장충단비 →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 장서비 → 수표교 → 이준 열사 동상 → 이한응 선생 기념비 →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 → 유관순 열사 동상 → 3·1독립운동 기념탑 → 김용환 지사 동상 → 자유센터로 이어진다.

탐방에는 약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공원 초입에는 코스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각 코스 지점에서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역사적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는 3·1운동 이후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평화회의에 전국의 유림들이 일제의 한국 주권 찬탈 과정을 폭로하고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진정서를 제출하여 세계만방에 알렸던 일을 기념하여 만든 조형물이다.

이준 열사(1859~1907)는 일제의 강압에 의하여 체결된 을사조약이 무효라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고종의 특사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에 통분하여 현지에서 순국하였다.

이한응 선생(1874~1905)은 용인 출신으로 일찍이 영어와 신학문을 배우고 영국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1905년 한일협약과 영일동맹 등으로 한국정부의 지위가 떨어짐을 개탄하여 30대의 젊은 나이에 영국에서 자결 순직했다. 이후 장충단에 배향되었다.

공원의 "호국의 길"과 주변의 "남산 기억로"를 안내하는 표지판 ⓒ소셜포커스
공원의 "호국의 길"과 주변의 "남산 기억로"를 안내하는 표지판 ⓒ소셜포커스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 장서비 ⓒ소셜포커스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 장서비 ⓒ소셜포커스
이준 열사 동상 ⓒ소셜포커스
이준 열사 동상 ⓒ소셜포커스
이한응 선생 기념비 ⓒ소셜포커스
이한응 선생 기념비 ⓒ소셜포커스

공원에는 현대 우리말 문법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도 있다. 사진자료에 의하면 기념비 주변은 제법 정원형태를 갖추고 최현배 선생의 공적을 소개하는 표지석도 갖추고 있다.

한글 운동을 해 온 필자는 꼭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근처에는 기념비가 있다는 사실을 안내하는 표식이 없었다. 어렵게 찾아서 입구로 가보니 숲속 산책길로 몇 십 개의 계단을 거쳐서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저 높이 계단 너머로 기념비의 일부만 조금 보였다. 지형 여건으로 휠체어 접근은 어렵더라도 다른 방문자를 위한 위치 안내는 필요하지 않을까?

공원 내 다른 안내표시는 잘되어 있는 편이지만, 사명대사와 최현배 선생의 기념물 등 일부 시설에 대해서는 안내표시가 없는 것 같다.

공원에서 남산자락으로(방향은 남쪽임) 올라가다 보면 유관순 열사 동상과 3·1독립운동기념탑이 이어진다. 이곳은 휠체어 접근성이 좋아 근접관람이 가능하다.

유관순 열사(1902~1920)는 천안 태생으로 이화학당 재학시절 3·1운동을 주도하는 등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투옥되었다. 옥중에서 고문 후유증 등으로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순국하고 말았다.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 안내 표시는 찾을 수 없다. ⓒ소셜포커스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 안내 표시는 찾을 수 없다. ⓒ소셜포커스
유관순 열사 동상 ⓒ소셜포커스
유관순 열사 동상 ⓒ소셜포커스

3·1독립운동기념탑은 널찍한 정원에 기념탑 뒤로 3·1만세운동 등의 모습이 조각된 그림과 조형물이 감싸고 있다.

이 탑은 3.1독립운동 80주년 기념일인 1999년 3월 1일 준공했으며 탑의 높이가 19m 19cm이다. 이는 3.1운동의 거사일인 1919년을 의미한다. 3.1운동은 세계 최초의 비폭력 평화운동이었다. 그리고 중국의 5·4운동 및 인도의 무저항운동을 비롯하여 전 세계의 비폭력 평화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3·1독립운동 기념탑의 모습 ⓒ소셜포커스
3·1독립운동 기념탑의 모습 ⓒ소셜포커스
공원 내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 체육시설, 경로당 ⓒ소셜포커스
공원 내 어린이 놀이터, 경로당, 체육시설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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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 2020-07-31 09:34:01
우리나라의 역사가 곳곳에 깃들어있는 장충단 공원 이군요. 전반적인 장애인 편의시설은 잘 되있는데 인물기념비 주변의 장애인 접근성이 떨어지는것이 좀 아쉽네요. 일부 미흡한 안내판은 공원측에서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추가설치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대다수 장애인들이 이용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는 공원이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