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성년후견인은 법원에서 수어통역 못한다...?
피성년후견인은 법원에서 수어통역 못한다...?
  • 박지원 기자
  • 승인 2020.09.0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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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독소조항"... 후견인은 법원 수어통역인 후보자 명단에서 제외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수어통역과 후견인 제도의 연관성부터 증명하라"
김명수 대법원장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 선고를 하고 있다. (사진=대법원)
김명수 대법원장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 선고를 하고 있다. (사진=대법원)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지난 1일 대법원이 청각장애인이 소송에 참여하거나 재판을 방청할 때 수어통역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는 내용의 「수어통역 등에 관한 예규」를 제정했지만, 독소조항이 발견되며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예규는 지난 8월 7일 행정예고된 것으로 수어통역 등의 절차와 방법, 수어통역인 후보자의 선정 및 교육, 지정 등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모든 소송절차의 당사자와 증인, 감정인 등 모두에게 수어통역을 제공하고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 예규의 세부 내용에는 성년후견인이 선임된 사람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내용이 들어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예규 제6조는 '결격사유'라는 제목으로 '수어통역인 후보자 명단'에 등재해서는 안되는 사람을 규정하고 있다. 맨 앞에는 '피성년후견인'이 가장 먼저 나온다.  

후견인이 선임된 사람은 각급 법원에서 수어통역인으로 일을 할 수가 없고, 이미 수어통역인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후견인이 선임되는 순간 그 자격을 잃게 된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권익문제연구소)는 "이는 정신장애인, 발달장애인 등 불가피하게 후견인이 필요한 사람 내지 일시적인 사유로 후견인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법원의 수어통역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효과적으로 수어통역을 하는 것과 후견인이 선임된 사실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의문이고, 실제로 '심신상의 장애로 수어통역인으로서의 직무집행을 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는 통역인 후보자 명단에서 삭제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으면서 후견인이 선임된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6월, 피후견인에 대한 결격조항을 일괄 폐지하는 법률이 통과됐고 우리나라도 이미 지난해 7월부터 법제처와 법무부가 '피후견인 선고 여부'가 아닌 '직무수행 능력 보유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도록 결격조항을 일괄 정비하기로 밝힌 상황이다.

아직까지 지적장애, 발달장애, 정신장애 등 의사소통이 어려운 장애인에 대해 부분적으로만 지원되고 있는 진술조력인, 국선변호사, 보조인, 신뢰관계자 등 인적 지원의 확대가 절실한 상황에서 사법기관의 장애인식과 전문성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비판도 따르고 있다. 

권익문제연구소는 "장애인 학대사건 양형기준 마련, 장애인 차별구제소송에 대한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판결 등 앞으로 법원이 장애인의 인권과 사법접근권 증진을 위해 해야할 역할이 많다"며 "그러나 장애인을 위해 제정했다는 대법원 예규 내용 중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사회적 배제를 확산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는 것에는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며 즉각적인 개정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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