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우리 동네 파출소 "장애인 접근성 현저히 낮아"
가깝고도 먼... 우리 동네 파출소 "장애인 접근성 현저히 낮아"
  • 박지원 기자
  • 승인 2020.09.29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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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대ㆍ파출소 접근성 "낙제점" 출입구 경사로 폭 좁고, 점자블록은 깔판에 가려져 안 보여
창고로 쓰이는 장애인 화장실... 경찰관도 열악한 근무환경 마찬가지, 낙후된 경찰관서 많아
강남구 파출소 "우리 소에는 장애인 안온다"며 조사 거부... "경찰관도 인식개선교육 받아야"
복지부, "시정명령 더 내려보지만... 예산은 지자체 몫"이라며 "행안부, 경찰청과 논의하겠다"
금일(29일) 오전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지구대ㆍ파출소 및 치안센터의 장애인 접근성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개최됐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지역주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지구대와 파출소, 치안센터의 장애인 접근성에 적신호가 켜졌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가 오늘(29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8월 한 달간 조사한 지구대ㆍ파출소ㆍ치안센터의 장애인 접근성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2018년 복지부에서 실시한 「2018년 장애인편의시설 실태 전수조사」에서 지구대와 파출소의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율은 72.5%로 그 중 적정설치율은 63.4%에 불과했다. 2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당시 지역주민의 이용률이 가장 높은 동사무소를 위주로 시정명령을 내렸다는 복지부의 주장때문일까. 지구대와 파출소, 치안센터의 편의시설 상태는 심각했다. 

장추련은 지난 7월 31일부터 8월 28일까지 전국 지구대ㆍ파출소 및 치안센터 2990곳 중 1615곳(54%)을 대상으로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경북과 전남, 전북의 경우 대중교통 수단이 원활하지 않아 장애인 당사자가 모니터링을 하기에 어려움이 많아 조사에서 다수 제외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문제시된 것은 지구대ㆍ파출소의 주출입구였다.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곳이 93.8%였지만, 대다수 주출입구에 턱이나 계단이 있어 경사로를 설치한 곳이 868곳(78.7%)이었고, 턱이 없는 곳은 235곳(21.3%)뿐이었다. 경사로는 법적으로 1.2m의 유효폭을 확보해야하지만 경사로 폭이 좁아 이용이 어렵다는 민원도 상당했다. 공공기관임에도 애초에 지구대 건물을 지을 당시 편의시설 기준 적용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왼쪽) 경사로 앞의 문은 막혀있고 또 턱이 있어서 접근이 어렵다. 경사로에 안전바도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 경사로 자체를 폴리스 라인으로 막아놓아 접근을 어렵게 해놨다. ⓒ소셜포커스(사진=장추련)

장추련의 박김영희 대표는 "과거 파출소에 갈 일이 있었는데, 계단이 있어서 수동휠체어를 밀고 왔던 동행인이 대신 안에 들어가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다. 그떄 경찰관은 안에 들어오기 힘드니 나에게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당시에는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지만, 지금은 나쁜 기억으로 남아있다. 왜 같은 지역주민인데 장애인은 안에 들어가서 직접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것인지 정말 속상하다"라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 설치도 심각한 수준에 머물러있다. 점자유도블록이 있는 곳은 85.9%이지만 이 중 33.2%가 잘못 설치가 되어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점자블럭을 잘못 설치하면 되려 시각장애인에게는 자칫 위험시설이 될 수도 있다. 지구대ㆍ파출소 정문에 차량진입을 막기 위해 연석을 두는 경우가 많지만 이 또한 부딪칠 위험이 크고, 특히 여름 장마철에 점자블록위에 미끄럼 방지 깔판을 깔아두어 점자블록을 가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장애인 화장실도 열악했다. 장애인화장실이 열악하다는 것은 근무하는 대원들의 근무 환경도 좋지않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지구대ㆍ파출소의 화장실은 공용화장실이기에 장애인 화장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하지만, 절반 이상인 67.3%가 사용불가한 상황이었다.

이미 경찰관서 내의 장애인 화장실에는 대원들의 옷이 걸려있거나 물건을 적재하는 등 창고가 되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화장실 안 세탁기와 여러 짐들 때문에 대변기 접근조차 어려운 경우도 많다. 말그대로 화장실 공간이 '좁아서' 이용이 불가한 사례가 84.1%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왼쪽) 선형블럭을 따라가면 연석에 부딪히게 되어 시각장애인에게는 위험시설이 된다.
(오른쪽) 창고가 되어버린 장애인 화장실의 모습. ⓒ소셜포커스(사진=장추련)

장애인 주차구역도 미비히다. 지구대ㆍ파출소 1175곳 중 장애인 주차구역이 없는 곳은 515(43.8%)곳이었다. 장애인 주차구역 설치는 의무이지만 순찰중심의 업무를 하는 지구대ㆍ파출소 특성상 주차구역이 있더라도 순찰차를 주차하는 것이 우선이 되는 상황도 많다. 

이 외에도 자동문 설치는 10%에 불과하고, 대다수 여닫이 문으로 되어있어 문을 밀 힘이 없는 장애인은 출입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자동문의 경우 작동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비상호출벨을 근처에 설치해야하지만, 이 또한 미설치 비율이 66%로 절반이 넘었고, 대다수 접근이 불편한 곳에 설치되어있었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제공=장추련)

뿐만 아니다. 기본적인 편의시설인 점자책자 및 서식, 확대경(돋보기), 수어통역 안내 등 편의 제공은 더욱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모니터링 단원 R씨는 "경찰공무원이 되려 이런 편의시설이 왜 필요한지 되묻거나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며 황당해했다. 지구대ㆍ파출소는 223곳이, 치안센터는 68곳이나 경찰관들의 장애인식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 강남구 소재의 한 파출소에서는 경찰관 B씨가 모니터링 단원에게 퉁명스러운 말투로 다른 경찰서에 가보라며 조사를 거부하는 일이 있었고, 다음날 협조 공문을 보내 재방문을 할 수 있게 됐지만, 경찰관 A씨가 다시 짜증을 내며 "우리 소에는 장애인이 온 적이 없는데 왜 모니터링을 해야하는 것이냐"며 단원에게 위화감을 준 사실도 밝혀졌다. 

장추련 이승헌 활동가는 "112에 전화를 하거나 대면 신고시 가장 먼저 접촉하는 곳이 지구대, 파출소, 치안센터에 근무하는 일선 경찰관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차별이 일어난다"며 "경찰관들이 많이 하는 말이 지구대나 파출소에는 장애인이 잘 안 온다는 것인데, 안 가는 것이 아니라 못 가는 것이다. 예산 문제 등으로 당장 물리적인 시설 개선이 어렵다면 지침이나 메뉴얼을 만들어 강제로라도 인식개선부터 시작하고 인적 지원을 확대해나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신용호 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장 ⓒ소셜포커스

이날 이어진 토론회에서는 복지부와 경찰청의 눈치 싸움이 계속 됐다. 결국 모니터링 결과에서 지적받은 사안들을 개선하려면 기존 건물을 개축하거나 신축을 해야하는데, 시정명령은 복지부가 내리지만 예산 편성과 개선 여부는 지자체의 의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더 열심히 지자체에 시정명령을 내리겠다"는 말과 "경찰청과 협의를 하겠다"는 말만 반복하는 모습이었다.

나동환 장추련 변호사가 복지부 신용호 과장에게 "복지부가 시정명령을 만 건 이상하면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시정명령을 민간의 개인 시설주에게만 한 것인지, 경찰청과 같은 공공기관에도 했는지 통계자료를 보고 싶다"고 말하자, 신 과장은 "시정명령 이행은 지자체가 하는 것이기에 관련 통계는 지자체의 몫"이라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신 과장은 "공공기관에도 저희가 시정명령을 내리고 있다. 과거에 부산 어느 파출소에서 복지부로 항의 전화가 들어온 적이 있다. 돈도 안주면서 편의시설 개선하라고 하냐고 하더라. 예산은 지자체의 몫이다. 편의시설 과태료도 지자체가 가져가지 복지부는 10원도 안 가져간다. 다만 이미 실태조사를 했으니 편의시설이 미비한 곳에 독려를 하는 것일 뿐"이라며 해명했다.

그러면서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지자체장 미팅을 하는데 복지부 국장들이 가서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의 심각성을 알릴 수 있게 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한 적이 있다. 복지부 사무관이 접촉을 하면서 어떻게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며 "무엇보다 예산을 행안부에서 해결해야할지, 경찰청 자체 예산으로 해결해야할지는 경찰청과도 의논을 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나동환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변호사 ⓒ소셜포커스

장추련 나동환 변호사는 지지않고 압박 질문을 추가했다. 그는 "복지부에서 5년마다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실태조사'를 진행하는데 그럼 이 결과를 놓고 개선하기 위해 실제로 경찰청과 협의를 진행한 적이 있나?"라고 묻자 복지부 신용호 과장은 "제가 있었을 때는 없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나동환 변호사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복지부는 2016년부터 실시되는 '편의시설 운영 실태 모니터링' 사업을 바탕으로 시설주관기관에서 시정명령 등 필요한 조치를 시행하겠다는 계획을 담은 바 있다. 2013년까지는 공공기관의 편의시설 설치율과 적정 설치율이 민간시설보다 높았지만, 2018년부터는 민간시설이 공공기관을 추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나 변호사는 "이런 조사 결과를 보았을 때 과연 복지부가 국가기관 또는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적절한 시정명령 조치를 내리고 관리, 감독하였는지는 의문이 든다"며 "특히 지구대와 파출소의 경우 2013년(적정설치율 52.5%)과 2018년(적정설치율 63.4%) 모두 개선 정도가 평균 이하로 저조했던 것을 보아 시정명령의 실효성이 없었다고 보여진다"며 복지부의 의견을 일축했다. 

모상묘 경찰청 경무담당관. 총경 ⓒ소셜포커스

한편 경찰청 경무담당관 모상묘 총장은 오늘 지적받은 해당 지역의 경우 즉시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경찰관서가 노후된 곳이 많고 도로와 인접해있기때문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100% 설치하는 것은 무리라고 양해를 구했다. 

이어 모 총장이 조사 결과를 두고 민망함을 표하며 "(경찰관서의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가) 눈물겨울정도"라고 말하자, 장내에 있던 배재현 활동가는 "마치 편의시설 실태 문제를 오늘 처음 보는 것처럼 눈물겹다고 말씀하시는데, 앞으로 이런 자리에 오실 때는 발언을 조심하셨으면 좋겠다"며 "총장님부터 장애인식개선교육을 받으셔야할 것 같다"고 일침을 날렸다. 

또한 모 총장이 "대한민국은 112시스템이 잘 갖추어져있으니 112전화를 자주 이용해달라"고 제안하자,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곽남희(시각장애) 활동가는 "과거 초행길을 가다가 길을 잃어서 112에 전화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서 도움을 요청했는데 나보고 위치가 어디냐고 묻더라"며 "10분만에 제가 있는 곳으로 와주었지만 결국 저를 도와줄 수 없다며 차를 타고 금새 가버렸다"며 토로하기도 했다.

토론회를 지켜보던 장추련 박김영희 대표도 "결국 복지부는 지자체에 떠넘기고 지자체의 의지가 없으면 경찰청도 개선할 마음이 없는 것이냐"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장추련은 "가장 먼저 경찰청에서 개선 의지를 보여야겠지만,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장애인등편의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소관부처인 복지부가 나서서 직접적인 예산 편성을 통한 단계적인 집행 방안을 고려해야한다"며 "올해 안에 새롭게 발표될 「제5차 편의증진 5개년 계획」에 지구대와 파출소를 비롯한 공공기관의 장애인 편의시설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담아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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