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방망이 처벌에 두 번 우는 피해자들... 장애인학대 처벌, 이대로 괜찮을까?
솜방망이 처벌에 두 번 우는 피해자들... 장애인학대 처벌, 이대로 괜찮을까?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0.10.29 1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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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인·지적장애인 대상 학대비율 가장 높아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가해자 편드는 사법절차
농어촌에서 경제·노동착취 10년 넘게 이어져도 "품앗이 판정"
장애인학대 정의·인식개선 시급, 전담부서 마련해 전문성 있는 수사 진행해야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장애인 학대 범죄에 대한 형사처벌 강화를 촉구하며 '장애인학대 관련 범죄 처벌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를 지난 28일 오후 이룸센터에서 열었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예지 기자] =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하 중앙옹호기관)은 장애인학대 범죄에 대한 형사처벌 강화를 촉구하며 장애인학대 판결분석 및 정책 대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28일 오후 개최했다. 

2012년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장애인학대의 정의와 금지행위에 대한 조항이 신설됐지만 현장에서는 형사처벌 근거가 두루뭉실해 실효성이 부족하다. 이에 따라 '장애인학대처벌특례법' 제정에 대한 현장의 요구 또한 커지고 있다. 이에 중앙옹호기관 등은 장애인학대를 범죄로써 명확하게 정의하고, 처벌 근거를 제안하기 위해 이번 토론회를 마련했다. 지난 2017년부터 1천2백여 개의 장애인학대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가 대응책 제안의 근거가 됐다.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 더불어민주당 소병철 의원. (왼쪽부터) ⓒ소셜포커스

국회에서는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소병철 의원이 자리했다. 이 의원은 "장애인 학대 사건에 대해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기소되는 확률도 극히 낮은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해 장애계는 계속 문제를 제기해왔지만 제도적 보완책이 마련되지 않아 이번에 개정법률안을 발의하게 됐다"며 "장애인 인권보호와 복지 발전을 위해 활발한 의견을 나눠주길 바란다"고 인사를 전했다.

소 의원은 "장애인을 비롯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전담재판부를 법원마다 설치하고, 법관들의 장애읹인지감수성을 함양할 필요가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 13년을 맞았지만 장애인학대 사건에 대해 형사적 실효성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법제사법위원으로서 두 눈을 부릅뜨고 개선을 촉구하겠다"고 말했다.


■ 지적장애인 대상 학대 비율 74.6%… 피해 인지 어려운 장애특성 이용해

이어지는 장애인학대사건 무죄 판정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처벌특례법'이 시급하다며, 개선방안을 제안했다. ⓒ소셜포커스 (일러스트=News1)
(일러스트=News1)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장애인학대 사건 중 775건에 대한 1, 2, 3심 판결문 1천2백10개를 분석한 결과, 지적장애인이 피해자인 경우의 비율이 74.6%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체장애 6.2%, 정신장애 4.7%, 청각장애 4.2%인 것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이다. 피해자의 장애 정도를 보면 정도가 심한 장애인의 비율이 92.2%로 학대 피해를 자각할 수 없는 중증 지적장애인에 대한 범죄가 만연한 것으로 보인다.

학대 유형 별로 보면 성 학대에서 76.6%, 경제적 착취에서 77.1%, 중복 학대에서는 77.3%의 피해자가 지적장애인이었으나 신체 학대에서는 59.4%로 낮은 편이었다. 대신 지체장애인의 비율은 17.8%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학대 유형을 막론하고 지인인 가해자가 323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유에 대해 중앙옹호기관 송시현 변호사는 "지인들은 이미 장애인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고 신뢰를 주기 쉬워 범죄 행위를 하기에 더 용이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분석했다. 기관종사자 중에서는 장애인 거주시설 종사자가 41명으로 가장 많았다. 토론자들은 "시설 내에서 벌어지는 학대행위를 운영진들끼리 덮어주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아 암수사건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경제적 착취의 경우, 일회성 범죄에서 그치지 않고 긴 기간동안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학대 기간은 3개월 미만인 경우가 47.3%로 가장 많았지만, 10년 이상인 경우가 4.1%로 다른 학대 유형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특히 경제적 착취는 노동 착취, 폭력 등과 함께 장기간 학대가 행해지는 유형으로 그간 장애계가 강하게 대책을 요구해왔다. 실제로 신안 염전노예 사건, 통영 가두리양식장 사건, 사찰 노예 사건 등등 장애인을 무급으로 노동하게 하고 장애수당이나 연금을 빼돌린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 돌봐줬는데 좀 괴롭히면 어때?… 장애인학대인식부터 개선해야

현재 장애인학대에 대한 형사처벌 근거는 장애인복지법상 금지행위가 유일하다. 성적 학대는 주로 성범죄 관련 법률이 적용되고, 타 유형 범죄는 대부분 '장애인복지법위반'이라는 죄목으로 묶여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김지영 연구원.
ⓒ소셜포커스

김지영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아동학대, 성범죄는 엄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최근 형성됐다. 아버지에게 맞고, 성폭행을 당해도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지금 장애인학대에 대한 인식이 그것과 똑같다"고 발언했다.

토론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가해자의 입장과 서사를 참작해 감형 판결이 나는 경우를 주로 비판했다. 중앙옹호기관 이정민 변호사는 "'그래도 돌봐주지 않았냐', '오죽하면 그랬겠느냐'라는 내용을 판결문을 통해 확인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장애인 학대를 근절할 수 없을 것"이라며 피해자에 대한 확실한 보호대책이나 재발방지방안의 마련을 촉구했다.

김강원 인권정책국장.
ⓒ소셜포커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강원 인권정책국장도 "최근 인권과 평등권이 강조되면서 차별로 인한 '증오 범죄'는 강하게 처벌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돌봐줬으니까, 먹여주고 입혀줬는데 좀 괴롭히면 어떠냐는 인식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특히 농어촌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유대관계가 양형에 아주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장기간 이어진 노동 착취를 품앗이와 같은 협동 관행으로 보고 범죄 사실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기도 한다.

김강원 인권정책국장은 장애인학대사건 수사를 기피하는 재판부도 지적했다. 폭탄돌리기식으로 수사하니 전담수사관에게 전문성 있는 수사, 나아가 합당한 처벌이 내려지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어 아동·청소년 전담수사부서가 설치된 이후, 수사 전문성 문제가 해소된 것처럼 장애인학대사건도 전담부서를 설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학대 사실 인지하기 어려운 피해자와 '합의'?… 돈으로 산 자유, 인정해선 안 돼

차성안 판사. ⓒ소셜포커스

서울서부지방법원 차성안 판사는 "독일의 경우, 대체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금전적 합의를 감형 사유로 인정하지 않는다. 합의 후 피해자가 처벌불원의사를 밝히는 것은 가해자가 돈을 주고 자유를 사는 행위로 판단하기 때문이다"라며 장애인학대사건에 대해서는 사건 당사자간 금전 합의를 인정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학대 사실에 대해서도 인지하기 어려운 피해자와의 합의, 가족구성원이 금품을 목적으로 피해자 대신한 합의는 정당한 합의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송시현 변호사.
ⓒ소셜포커스

중앙옹호기관 송시현 변호사는 입법 목적 자체가 시대에 맞지 않는 '친족상도례' 적용도 예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족상도례란 8촌 내 혈족이나 4촌 내 인척, 배우자 간에 발생한 절도죄·사기죄 등 재산범죄에 형을 면제하거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송 변호사는 "피해자의 상속 재산을 갑자기 나타난 친족들이 나타나 횡령한 사건에 이 제도가 적용돼, 동거한 기간에 횡령한 금액에 대해 기소가 불가능했다"며 "대가족 형태, 가장 중심의 가족 질서를 지키기 위해 도입된 이 제도는 현대사회에서 정당한 제도로 보기 힘들다. 근본적으로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강원 인권정책국장 또한 "가정내 장애인 학대는 매우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 정도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친족상도례 제도로 가해자가 처벌을 빠져나가는 문제가 많다. 현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장애인학대처벌특례법에도 친족상도례를 장애인학대 사건에는 적용하지 말 것을 명시하고 있다"고 의견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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