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도 한국영화 자유롭게 보고싶다!"
"청각장애인도 한국영화 자유롭게 보고싶다!"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0.11.06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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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만 흥행작도 배리어프리판 상영은 고작 '72회'… 전체 상영횟수의 0.04%
지난해 제작된 배리어프리판, 전체 상영작 1/10 수준
이럴 거면 할인 왜 했나… "표값 아깝고 하루종일 기분 나빴다"
청각장애인들이 한국영화에 자막을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제도를 개선해달라고 요구하며 오늘인 6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예지 기자] = 한국 영화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날로 높아져 가는 가운데, 자국민인 청각장애인들은 여전히 관람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이에 장애의벽을허무는사람들을 비롯한 청각장애인 인권옹호단체는 6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달 정부는 코로나19 여파로 침체된 영화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6000원에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쿠폰을 110만 여 장 배포했다. 노인과 장애인에게는 4000원까지 할인 우대를 제공하는 지점도 있었다. 청각장애인들은 기대를 품고 영화관에 방문했으나 실망을 안고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진정인 윤정기 씨.
(청각장애인 당사자)
ⓒ소셜포커스

청각장애인 당사자 윤정기 씨는 "표값이 아까웠다. 영화가 끝나고나서도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당시의 실망감을 드러냈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한글 자막에 이제 한국영화도 평상시에 볼 수 있으리라 기뻤던 것도 잠시, 자막은 이내 자취를 감췄다. 국적이 다른 동양인들이 영어로 나눈 대화를 번역했을 뿐이었다.

장애인 영화관람 지원 사업이 시행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자막이 제공되는 한국영화의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2019년 국내 상영된 한국영화는 199편으로 한글자막과 화면해설이 제작된 영화는 30여 편에 불과하고, 상영 정보도 제대로 공지되지 않는 실정이다.

정부는 작년 4월, CGV와 한국농아인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배리어프리판 영화 상영 정보를 게시하고 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CGV 2015년, 한국농아인협회는 올 1월 이후 배리어프리판 영화 상영 정보를 공지하지 않았다. (출처=문화체육관광부 블로그)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해 4월부터 장애인 영화관람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하며, "CGV와 한국농아인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상영 일정을 게시하고 있다"고 홍보했다.

자막, 배리어프리, 가치봄 등 관련 단어를 검색했지만 배리어프리판 영화 상영 공지는 거의 전무했다. (출처=CGV 홈페이지)

하지만 CGV 홈페이지에 공지된 배리어프리 영화 상영 정보는 2015년 6월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한국농아인협회 홈페이지에도 올 1월 '백두산'과 '시동' 두 작품 이후 상영 정보가 올라오지 않고 있다.

진정인 이미경 씨.
ⓒ소셜포커스

진정인 이미경 씨는 "자막이 제공되는 영화는 일반 관객이 많지 않은 평일이나, 낮 시간에만 상영된다. 그것도 일부 상영관에서만 상영돼 대부분의 청각장애인들은 영화를 볼 수 없다"며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으로서 장애인도 자유롭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보편적 접근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어 "청각장애인도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영화를 관람할 권리가 있는 관객이다. 장애인도 자유롭게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정책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했다.

장애인, 비장애인간 관람권 향유의 격차는 흥행작일수록 더욱 크다. 관객 수 800만을 기록한 영화 '백두산' 일반판은 총 1천9백71개 상영관에서 17만4천3백20회 상영됐다. 반면 자막과 화면해설을 제공하는 배리어프리판은 53개 상영관에서 72회 상영됐다. 일반판 상영 횟수의 0.04%에 그친다. 2017년 기준,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청각장애인 인구가 27만을 넘긴 것에 비해 터무니 없는 횟수다.

오병철 동서울자립센터소장.
(시청각장애인 당사자)
ⓒ소셜포커스

시청각장애인 당사자인 동서울장애인자립생할센터 오병철 소장도  힘을 실었다. 오 소장은 "시각, 청각장애인들은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할 수가 없다. 청각장애인들은 자막이 없으면 한국 영화를 못 보고, 시각장애인들은 더빙이 없으면 외국 영화를 못 본다"며 "정책이 개선돼서 시·청각 장애인들도 자유롭게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싶은 시간에 관람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장애벽허물기 김철환 대표는 "자막 제공을 의무로서 요구할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 때문에 이번 진정은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근거로 제기됐다"며 장애인의 문화 향유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 개정을 요구했다.

진정인 측은 한국 영화에 자막 상영을 의무화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요구했다. ⓒ소셜포커스

진정인들은 CGV에는 △한국영화의 50% 이상 자막을 제공할 것 △단게적으로 모든 영화에 자막 제공할 것 △자막제공 영화를 어느 상영관에서나 볼 수 있도록 할 것 △자막 제공에 대한 정보는 홈페이지를 통해 게시할 것을, 영화진흥위원회에는 △영화관 사업자가 상영되는 한국영화의 최소 50% 이상 자막을 제공할 것 △자막제공 영화를 상영관과 시간에 제약 없이 관람할 수 있는 규제 정책을 시행할 것을 요구하며 회견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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