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잘해요” 발달장애인들의 뚜벅뚜벅 홀로서기
“혼자서도 잘해요” 발달장애인들의 뚜벅뚜벅 홀로서기
  • 박지원 기자
  • 승인 2020.11.27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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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적장애인자립지원센터, 발달장애인 사회적응맞춤 훈련 진행
은행ATM기기 입금, 무인카페 음료 구매, 대중교통 타기 등 혼자서도 척척
장애인 자녀 둔 부모의 현실적인 고민... “자립과 일자리가 가장 걱정돼요”
대전지적장애인자립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발달장애인 맞춤형 사회적응훈련' 현장에 방문해봤다. 센터는 시대흐름에 발맞춰 발달장애인에게 대중교통 이용법과 은행ATM기기ㆍ무인카페 자동무인화기기 이용법 등을 교육하고 있다. 송훈준 씨(20대/자폐성장애)가 지하철 우대권 발급을 연습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오늘 행선지는 대전이다. 발달장애인들과의 특별한 만남을 위해 기차에 몸을 실었다. 대전이라고 하면 유명 모 빵집밖에 모르는 기자에게 1호선만 있는 대전 지하철은 참 편리했다. 대전시청역에 도착하자, 옹기종기 모여있는 무리가 보인다. 

뭐라고 말을 걸어야할까. 주뼛주뼛하는 기자를 발견하고 김현승 씨(30대/지적장애)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오늘 인터뷰를 한다고 들었다며 긴장한 표정으로 연신 손바닥을 쓸어내렸다. 무엇이 기억에 남냐는 물음에 “(신경주역에서) 기차탄 것이랑 지하철 타는 것이요. 좋았어요.”라며 웃었다. 옆에 있던 이지원 씨(20대/자폐성장애)가 “오늘 마지막 수업이에요.”라고 거든다.

지각생 친구들을 기다리며 "나는 누구고, 여기는 어디인가"라는 표정으로 각자 다른 곳을 응시하다가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귀여운 포즈를 취해주었다. ⓒ소셜포커스

이들은 오늘 특별한 체험을 앞두고 있다. 바로 발달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적응훈련이다. 대전광역시 지적장애인자립지원센터는 ‘We can live together’(함께 살아갈 수 있어요)를 주제로 발달장애인에게 대중교통 이동법, 자동무인화기기 사용법 등을 교육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은행 ATM기기에서 카드를 이용한 입금과 증명서 발급을 연습했고, 대전역에서 신경주역까지 직접 기차표를 예매해 짧은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이젠 자동무인화기기로 음식을 구매해 먹는 것쯤은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게 됐다.

본 프로그램은 한국장애인재단의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올해 5월 말부터 시작했다. ‘프로그램 지원사업’은 장애인단체의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다양한 창의적인 장애인 프로그램을 발굴하고 있다.

 

대전시청역⇔갈마역 왕복... 우대권 발행쯤이야 “지하철 매너도 지켜요”

오늘은 대전시청역에서 갈마역까지 무인화기기를 이용해 장애인 우대권을 발급하고, 지하철을 타는 방법을 배운다. 모두 짝꿍의 손을 잡고 지하철 무인발급기로 씩씩하게 걸어간다. 선생님이 앞서 시범을 보여주면, 그대로 따라하는 방식이다. 우대권 발급을 누르고, 신분증을 놓고, 동그란 우대권 2개를 가져간다.

송진관(20대/자폐성장애) 씨가 누구의 도움도 받지않고 혼자서 우대권 발급과 반납을 연습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다들 익숙하게 지하철을 찍고 들어가는데 돌발상황이 생겼다. 정지현(20대/지적장애) 씨가 “우대권이 없어요...”라며 멀뚱멀뚱 서 있다. 방금까지 손에 쥐고 있었는데 어디로 간 것일까. 우왕좌왕하는 사이 어디서 우대권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거 집어오면 안돼요!”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이주현 씨(20대/자폐성장애)도 지하철 구석에서 책자를 집어왔다. 답답한지 자꾸 마스크를 내리는 주현 씨 때문에 덩달아 선생님도 정신이 없다.

강유진 담당자는 “사실 오늘 같은 돌발상황이 잘 없는데...(웃음) 주현 씨는 새로운 곳을 가면 무조건 들어가려고 해요. 가게든 식당이든 한 번씩 들어가서 보고 나오는 게 하나의 특성이라 지금은 혼자 다니지 않고 함께 들어가서 천천히 보고 나오도록 연습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왼쪽) 이주현 씨(20대/자폐성장애)는 궁금증이 많은 성격이다. 오늘따라 팜플렛도 들고 오고 혼자서 돌아다니다가 선생님께 주의를 받았다. 그렇게 하지않도록 선생님과 약속도장을 찍는 모습. 
(오른쪽) 이주현 씨(20대/자폐성장애)는 아직 마스크를 써야한다는 의식이 부족해 마스크가 내려가도 그냥 다닐 때가 많다. 함께 다니는 선생님이 수시로 마스크를 올려주었다. ⓒ소셜포커스

적응훈련은 단계별로 세심하게 진행됐다. 강 씨는 “발달장애인은 모든 것이 다 교육거리에요. 재미도 있어야하구요. 지난번에는 담당자의 카드로 은행 ATM기기에서 만 원씩 찾아서 입금하는 것을 연습했어요. 글씨를 읽을 수 있는 이용자는 스스로 하게끔 도와주고, 그게 어려운 경우 어디로 돈을 넣어야하는지, 뭘 눌러야하는지 행동 양식을 알려줘요. 은행 문을 밀고 당기는 것도 게임식으로 연습했더니 재밌어하더라구요. ‘은행문 잘 연다면서요?’라고 칭찬해주면 아마 기분 좋아서 인터뷰도 잘 응해줄 거에요.(웃음)”라고 말했다.

지하철을 기다릴 때도 두 줄로 서서 질서정연하게 진행한다. 소위 ‘절친’으로 통하는 유지철 씨와(30대/자폐성장애) 석규진 씨(30대/지적장애)는 손장난을 치며 지루한 시간을 달랬다. 오는 내내 “몇 시 몇 분이에요!”라며 알람시계를 자처하던 송훈준 씨(20대/자폐성장애)도 잽싸게 자리를 잡더니 조용해졌다. 모두 지하철 매너는 100점이다.

(왼쪽) 재잘재잘 나누던 대화도 멈추고 모두 조용히 지하철을 타고 갔다. 막내 이지원 씨(20대/자폐성장애)가 카메라를 보며 개구진 표정을 지었다.
(오른쪽) 유지철 씨와(30대/자폐성장애) 석규진 씨(30대/지적장애)는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손장난을 치며 지루함을 달랬다. ⓒ소셜포커스

두 정거장을 지나 갈마역에 도착했다. 남은 미션은 무인카페에서 자동화기기로 음료를 사먹는 것이다. 사람보다 기계와 더 친해져야하는 시대 흐름에 발맞춰 장애인도 훈련을 해야한다. 오늘의 인기 메뉴는 ‘초코라떼’와 ‘아이스티’다. 메뉴 선택부터 결제 방식, 적립 여부, 카드 넣기, 영수증 뽑기 등 단순한 과정도 이들에게는 끊임없는 반복 연습의 결실이었다. 음료 맛이 좋냐는 물음에 모두 말없이 엄지를 척하고 들어올린다.

김성현 씨(20대/자폐성장애)와 유지철 씨(30대/자폐성장애)가 혼자서 무인화기기로 음료를 구매하고 있다. 
음료 맛이 좋냐는 물음에 김현승 씨(30대/지적장애)와 정지현(20대/지적장애) 씨가 엄지를 올리고 있다. ⓒ소셜포커스

 

장애인 자녀 둔 엄마의 현실적인 고민 “내가 없으면 누가 돌봐주나...” 최근 수영 선수로 취직한 아들 “자랑스러워”

훈련을 마치고 다들 아쉬움에 발걸음을 미적거리던 찰나, 저 멀리서 기다리던 엄마를 발견하고는 다들 화색이 돈다. 정지현 씨(20대/지적장애)는 기자의 옷소매를 당기며 ”우리 엄마에요! 저 오늘 잘했다고 이야기해주세요!“라며 연신 부탁의 말을 전했다.

이주현·김성현·이지원 씨의 어머니는 ”아이가 장애인 친구들과 다니면서 전보다 자신감이 더 붙었어요. 행동 반경이 크다보니 종종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한데, 센터에서 이렇게 사회적응훈련을 시켜주시니 너무 감사하죠. 한편으로는 비장애인에게 장애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어서 좋아요“라며 입을 모았다.

간식을 받자마자 집에 가고 싶어하는 자녀들의 등쌀에 밀려 하나 둘씩 떠나가고, 마지막에 남은 유지철(30대/자폐성장애)의 어머니와 대화를 할 수 있게 됐다.

(시계방향) 이주현·김성현·이지원 씨의 어머니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이지원·김성현·이주현 씨(20대/자폐성장애)가 오늘 연습을 위해 적었던 노트를 자랑스레 꺼내보이고 있다. ⓒ소셜포커스

Q. 오늘 지철 씨가 맏형답게 아주 묵묵하게 잘 해냈어요!

그랬어요?(웃음) 아까도 은행에 통장정리를 하러 갔는데 본인이 직접 하려고 하더라고요.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에요. 제가 도와주지 않았는데 알아서 통장도 넣고 버튼도 잘 누르고요. 다음에는 입금을 한 번 시켜봐야겠어요. 오늘 지하철 우대권 발매하는 법을 배웠으니까 집에 갈 때 지철이 혼자 해보게끔 하려구요.

Q. 코로나 때문에 지철 씨도 어머니도 많이 답답했을 것 같은데...

너무 힘들었어요. 계속 집에만 있었는데 지철이가 겉보기에는 차분해 보이지만 쌓아놓다가 한 번에 터지는 성격이라 답답하면 소리를 지르고 공격적인 행동을 하거든요. 그때는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무조건 바깥에 나가는 수밖에는 없어요. 다행히 10월 둘째 주부터 체육재활원이 다시 문을 열었어요. 지철이는 거기에서 헬스와 수영을 해요. 일반사립 시설의 경우 문을 열어도, 집 앞에 있어도 못 가요. 장애인 수영장은 샤워실도 보호자가 씻길 수 있게 되어있고, 문제행동을 해도 이해를 해주는 분위기이지만 사립 시설은 그렇지 못하거든요.

유지철(30대/자폐성장애) 씨와 그의 어머니. ⓒ소셜포커스

Q. 지철 씨가 수영을 좋아하나봐요!

지철이가 최근에 수영으로 취직을 했어요!(웃음) 지난 5월에 일반 기업체에 수영 선수로 입사를 했거든요. 운동도 하고 근무도 해요.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어릴 때부터 수영을 오래 했는데 이렇게 쓰일 줄은 또 몰랐네요. 지철이가 수영을 좋아하기도 했구요. 그래도 일자리가 해결이 되어서 한시름 놓았어요.

Q. 자녀분 키우시면서 어려웠던 시간이 많았을 것 같아요.

아유 말도 못해요... 지철이 어릴 때 30년 전이죠. 아이를 어디 맡길 곳도 없었고 요즘처럼 무료 프로그램은 꿈도 못 꾸니까 다 사비로 특수교육을 시켰어요.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죠. 지철이가 어릴 때는 지하철을 타면 앉아있는 사람을 막 밀쳐내고 거기에 앉고 바닥에 드러눕는 게 일반이었어요. 택시를 타면 뒷좌석에서 발로 쿵쿵 치니까 택시 기사들이 도중에 내리라고도 많이 했어요. 이제는 장애인콜택시, 바우처 택시가 생겨서 세상이 좋아졌다고 느끼죠. 사람들 인식도 예전보다 나아진 것 같구요. 예전에는 면전에 대놓고 ”왜 저런 애를 밖으로 끌고 나왔냐“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거든요.

이제는 ‘자립’이 제일 걱정이에요. 내가 세상을 떠나면 우리 지철이는 어떻게 사나 싶어서... 지철이가 올해 32살이거든요. 이제 슬슬 독립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려고 해요. 사실 마음은 엄청 막막해요. 정부에서 발달장애인의 자립 지원을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자립을 위해서는 먼저 일자리가 필요하겠죠. 하루종일 공장, 작업장에서 일하고 푼 돈 버는 것 말고 제대로 된 안정된 직장이요.

짝꿍과 손을 꼭 붙잡고 이동하는 모습. ⓒ소셜포커스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 됐다. 지하철을 타는 것도, 무인화기기를 사용하는 것도 지극히 평범한 일이었지만, 누군가는 이 하루를 위해 수많은 날을 보내야했다. 여전히 아들 곁을 지키는 어머니와 그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지철 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두 모자의 시간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값지게 흘러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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