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효력없는 '장애인 건강권법'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효력없는 '장애인 건강권법'
  • 박지원 기자
  • 승인 2020.12.0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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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진료장비 없어 병원 못 가.. 장애인 조기사망률 비장애인 4~5배까지 높아져
유형별로 특징 상이한 주치의제도... "의사도 혼동되는데 장애인 혼자 선택하는 건 무리"
주장애전문관리 유형만 '종합병원' 이용가능... 일반건강·통합관리는 '의원'에서만 진료해
지난 2년간 장애친화건강검진기관 시행 4개소뿐... "건보는 수검률만 높이려 혈안" 비판
의료진 장애감수성 부족... 물리적 접근성, 진료 장비, 의사소통 방법 등 해결과제 산더미
금일(1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 건강권 보장 및 의료접근성 강화'를 주제로 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국민의힘 이종성 국회의원과 대한재활의학회,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 공동주최했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2017년 12월 「장애인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건강권법)이 시행됐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장애인의 건강권은 얼마나 신장됐을까. 금일(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 건강권 보장 및 의료접근성 강화 정책토론회'가 개최됐다. 

장애인의 건강권은 UN CRPD(장애인권리협약)에서도 '장애인의 인권'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국립재활원의 「장애와 건강통계(2016)」에는 우리나라 장애인의 조사망률이 비장애인의 4~5배이며, 평균수명은 10년 더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장애인의 77.2%가 고혈압과 당뇨 등 1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었고, 건강검진 수검률도 장애인(67.3%)이 비장애인(77.7%)보다 낮았다. 진료비는 1인당 연간 439만원으로 전체국민 평균 125만원의 3.5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생활수급자되는 게 꿈...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다는 것이 욕심인가요" 

발제에 나선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이용석 실장은 당사자로서의 경험을 토로했다. 이 실장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이미 아픈 것을 아프지 않게끔 관리를 해달라는 것이다. 장애인은 아파도 동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약을 타는 것조차 쉽지않다. 병원이 엘레베이터가 없는 2, 3층에 위치한 곳도 많고, 심지어 시각장애인에게 '이쪽으로 가세요, 저쪽으로 가세요'라고 지시하는 경우도 있다. 수어통역은 꿈도 못 꾼다"라며 비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의료비 지원이 안되니 오죽하면 장애인들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하겠나. 그렇게라도 의료비 지원을 받아서 아프지 않게 살고 싶은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실제 2018년도 보건복지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장애인의 의료요구도 미충족 원인 1위는 '경제적 이유'(39.2%)로 나타났다. 2위는 '의료기관까지의 이동 불편'(25%)이었다. 

2000년도부터 2017년까지 장애인실태조사를 통해 나타난 '장애인의 국가에 대한 요구'도 '소득보장'에 이어 '의료보장'이 2순위로 높았다. 2017년 동일 기관 자료에도, 장애인의 건강 수준 향상을 위해 강화되어야할 정책으로 △1위 장애관리 및 재활서비스 △2위 만성질환 관리 △3위 건강상태 평가 및 관리가 주를 이뤘다.  

이용석 실장은 「건강권법」에 모든 해결책이 담겨있지만, 법적인 실효성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건강권법」 시행령 제4조에도 장애인이 의료기관을 방문할 경우 특별교통수단 차량을 배차할 것과 중증장애인은 구급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긴 대기시간과 구급차 이용요금 35%를 당사자가 부담해야된다는 어려움에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울 지역 특수교통수단의 경우 기사 매칭까지 평균 42분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장애인은 매번 약 1시간 30분의 대기 시간을 감수해야한다. 또한 구급차의 경우 기본요금 3만원을 시작으로 추가요금이 1km당 천원으로 응급구조사가 동반 탑승할 경우 부가요금 만오천원이 추가된다. 산소호흡기·제세동기 등 응급 의료장비를 갖춘 특수구급차는 기본요금이 7만5천원까지 올라가 비용 부담이 만만치않다. 이 실장은 "비싼 비용을 장애인 당사자에게 떠넘기겠다는 것은 애초 장애인 건강권법의 제정목적인 의료접근성 개선에 정책적 의지가 없다는 증거"라며 꼬집었다.

이용석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실장이 '장애인 관점에서 바라본 장애인건강권법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 확충 문제도 거론됐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이 국감에서 지적했던 사안으로, 문재인 정부가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 따라 2019년 목표 기관수를 20개소로 잡았지만, 8개소 지정으로 그쳤다. 2022년까지 전국 총 100개소 확대 계획을 수립했지만, 이마저도 집행부진으로 2024년까지로 계획이 변경된 상황이다. 

실제 2018년부터 2019년까지 2년간 30개소가 지정됐어야하지만, 인증을 받아 서비스를 개시한 곳은 단 4개소에 불과하다. 나머지 12개소는 여전히 시설개보수 혹은 보수계획 심의 중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용석 실장은 "나는 건강검진을 받았던 3~4년동안 엑스레이를 찍어본 적이 없다. 왜냐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주변 50~60대 장애여성들도 유방암 검진을 받아본 사람이 없더라. 그럼에도 건강보험공단은 건강검진 수검률을 높이겠다고만 하니 참 가소롭게 느껴진다. 장애인이 갈 수 있는 병원도 없고, 건강검진을 받을 수도 없는데 어떻게 수검률을 높이겠다는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시계방향) 개회사를 말하는 이종성 국민의힘 국회의원, 축사를 전하는 김예지 국민의힘 국회의원, 좌장을 맡은 김덕용 대한재활의약회 이사장, 환영사를 말하는 방문석 대한재활의학회장의 모습. ⓒ소셜포커스

 

의사들도 헷갈리는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 "당사자 욕구 반영 안돼"

배하석 의화의대 재활의학교실 교수는 의사로서 현장에서 체감하는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의 문제점을 나열했다. 의사 면허를 가진 102,471명 중 장애인주치의 제도를 등록한 의사는 단 513명 뿐이다.

게다가 장애인 주치의제도가 △일반건강관리 △주장애관리 △통합관리 3가지 유형 중 하나의 서비스만을 제공하고, 주치의도 1명만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치의에 따라 서비스가 한정된다는 문제점이 제기됐다. 각 서비스마다의 특징이 상이하고 의사들도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장애인에게 오롯이 선택권을 넘기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일반건강관리 서비스는 진료과목의 제한이 없지만, 주장애관리와 통합관리 서비스는 해당 장애를 진단하는 전문의만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지체장애와 뇌병변장애, 시각장애 3가지 유형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건강관리와 통합관리 서비스의 경우 '의원'에서만 진료가 가능하고, 주장애관리 서비스만이 의원을 비롯한 병원, 종합병원에서 진료받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마저도 장애인이 원하는 상급종합병원과 요양병원은 제외되어있다. 

배하석 의화의대 재활의학교실 교수가 '장애인주치의시범사업의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배하석 교수는 "이렇게 되면 일반건강관리 주치의는 주장애 관련 질환에 대한 관리가 안될 것이고, 주장애건강관리 주치의는 일반건강관리를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중증장애인의 경우 주장애 및 장애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만성질환에 대한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장애인 당사자가 통합관리 서비스를 받고 싶다고 해도 그 유형은 지원한 의사 수가 적고, 의원 밖에는 갈 수가 없으니 선택할 수 있는 폭도 적다"라며 제도적 한계점을 설명했다. 

장애인이 주치의제도를 선택하지 않는 원인 중 하나로 '재활의료전달체계 시스템'도 도마에 올랐다. 재활의료전달체계는 기존 의료전달체계와 달리 (상급)종합병원에서 2차, 1차 의원으로 내려가는 방식이고, 문제 발생시에 다시 (상급)종합병원으로 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주장애 전담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한다. 그러나 정작 상급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은 장애인 주치의가 될 수 없어 활용가능한 인력과 자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배하석 교수는 건강 주치의가 나아가야할 방향성에 대해 "커뮤니티 케어의 지역별 재활의료서비스의 관리자 역할을 하며 지역사회 건강관리 사업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으므로 주장애 관리 쪽으로 더 집중할 것과 장애인 진료시 편의시설, 의사소통방법, 진료장비 등 현실적 제한점에 대해 적극적인 개선 노력과 보상정책이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의료진 장애감수성 키워야... 병원 접근성 및 검진시설 개선 시급해 

김동아 센터장

토론에 나선 김동아 국립재활원 중앙장애인보건의료센터장은 장애인주치의 사업에 대해 "주장애 관리 시범사업 대상자인 지체, 뇌병변, 시각장애인만 봐도 이미 합병증 등 여러 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이미 다니던 병원이 있을 것이고, 주치의 제도를 이용하려면 동네에서 가까운 의원을 찾아가야하는데 의사 수도 적고 접근성도 떨어지니 당사자들이 더욱 신청을 안하게 되는 것이다. 중증장애인에 대해 의학적으로만 접근하니 제도적인 구멍도 많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현장에서 일하는 의사들도 장애인 환자가 와도 어떤 것을 도와줘야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더라. 의사들이 단순히 3시간정도 교육을 받는다고 장애 감수성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장애로 인한 질환이 변하는 특수한 경우를 의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단시간에 되지 않는다. 의과대학, 간호대학 교육과정 속에서 미리 '장애'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가르쳐야하고, 장애감수성을 가진 의료인을 배양해가야한다"라고 말했다. 

복수경 교수

복수경 충남의대 재활의학교실 교수는 장애인의 조기사망으로 인한 부담을 줄이기위해 장애 유형별로 주요 사망 원인이 되는 질환에 대한 조기 검진과 추적 검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체장애인의 경우 고혈압 유병률이 가장 높고 골격근계질환에 시달리며, 폐암·갑상선암·위암·간암의 유병률도 전체장애인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 지체와 뇌병변장애인 모두 당뇨병 유병률이 전체인구에 비해 높기 때문에 장애인의 당뇨병에 대한 선별 검사 및 추적검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무엇보다 장애인의 검사를 위한 특수장비(누워서 촬영이 가능한 X-ray) 도입과 이동 동선을 고려한 검사실 배치, 적정 높이의 접수대 및 세면대,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검사침대 도입 등 검진시설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동이 어려운 경우 숙박 및 출장 검진도 고려해야하며, 장애유형에 맞는 건강검진 문진표도 개발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이선영 과장

한편 박은철 연세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2017년에 법이 시행되었지만 여전히 '장애인건강보건관리 종합계획'이 수립되지않았다"라며, 보건복지부에 종합계획 수립을 요구했다. 

이에 보건복지부 이선영 과장은 "1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 '건강권'이 포함이 되어서 아마 별도로 계획을 수립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장애인분들이 병원에 가기 쉽도록 건강검진 병원을 지정하는 것과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알 수 있도록 전달체계를 구축하는 것, 보건의료센터 주치의를 지정하는 등 인프라를 갖추는데 치중했던 것 같다. 때문에 장애인 당사자분들이 느낄 수 있는 서비스가 부족했던 것을 인정한다. 새로운 5개년 종합계획에는 구체적인 대안을 담을 수 있도록 제도 본격화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금일(1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 건강권 보장 및 의료접근성 강화'를 주제로 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국민의힘 이종성 국회의원과 대한재활의학회,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 공동주최했다.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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