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너도나도 '온라인 쇼핑'이라지만 장애인에겐 '남 얘기'
코로나19로 너도나도 '온라인 쇼핑'이라지만 장애인에겐 '남 얘기'
  • 박지원 기자
  • 승인 2021.01.05 1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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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웹 접근성' 인증 국내 대형 식품몰 전무
온라인 쇼핑 시장 커지는데… 장애인 사각지대 여전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중증시각장애인 손지민씨(38)는 최근 식자재를 주문하기 위해 한 온라인 몰에 방문했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웹 페이지에 나타난 정보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시각장애인용 프로그램을 사용해보니 각기 다른 상품명이 모두 '제품'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상품명 대신 "제품, 제품, 제품"이라는 음성이 이어지는 통에 손씨는 하는 수 없이 쇼핑을 포기해야만 했다.

손씨는 "많은 온라인 쇼핑몰의 제품 안내가 이런 상태라 홀로 장보기가 쉽지 않다"며 "지난 3월부터는 코로나19 감염 우려 때문에 주말마다 방문하던 대형할인점에도 가지 못하고 있어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크다"고 토로했다.

국내 식품업체들이 운영하는 온라인 식품 쇼핑몰이 장애인이나 고령자를 위한 서비스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용 서비스를 구축한다고 하더라도 유지와 관리 비용이 적지 않고, 실효성이 낮을 것으로 판단해 별도 관리를 꺼리는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온라인 쇼핑이 일상으로 자리 잡았지만 취약계층에게는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라는 설명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또 하나의 장애인 사각지대가 코로나19를 계기로 수면위에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시각장애인 두 번 울리는 온라인 쇼핑몰...

28일 식품업계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에 따르면 CJ제일제당·대상·오뚜기·동원F&B·풀무원·삼양식품이 운영하는 온라인 자사몰 중 '웹 접근성 인증'을 받은 홈페이지는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웹 접근성 인증은 장애인이나 고령자가 웹 페이지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맞춤형 시스템을 갖춘 사이트에 인증 마크를 부여하는 공인인증 제도다. 법적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웹 접근성 의무를 시행했는지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인인증이라 부재 시, 법을 위반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관련법 적용 범위는 모든 법인·기관이 운영하는 웹사이트다.

현재 국내 대형 식품업체들이 자사 제품을 전용으로 판매하는 온라인 몰 6곳 중 인증을 신청한 뒤 유효기간이 만료되었거나, 또는 현재 인증을 받은 사이트는 한 군데도 없는 상태다. 오직 CJ제일제당과 오뚜기만 자사몰이 아닌 기업 공식 홈페이지에 웹 접근성 인증을 받았을 뿐이다.

웹 접근성이 낮은 사이트는 '스크린리더'라는 시각장애인용 프로그램을 구동하기 어렵다. 스크린리더는 페이지 안에서 제품 설명과 같은 글자를 추출해 읽어주는 등 일종의 보조기구다. 상품 이미지와 함량·성분·홍보 문구를 하나의 이미지 파일로 만들어 올리는 경우 텍스트 추출이 쉽지 않아 제품 정보를 확인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인증만 받지 않았을 뿐, 충분한 서비스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해당 자사몰에는 제품 설명 대신 알 수 없는 번호를 읽어주는 상품도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기업 공식 홈페이지에 유효기간이 지난 웹 접근성 인증마크를 버젓이 올려둔 곳도 있었다.

제품 정보를 확인했다 하더라도 결제 단계가 걸림돌로 남아있다. 네이버페이를 포함한 결제 모듈을 음성으로 안내해주는 환경 또한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앞서 온라인 몰의 웹 접근성 인증을 시도했지만, PG사(결제대행사)를 포함한 외부 관련 업체까지 인증을 받아야 해 결국 추진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비대면 소비 일상 됐지만... "비용 부담ㆍ실효성 의문" 외면

올해 식품업계는 비대면 소비 트렌드에 맞춰 자사몰 서비스 확대에 박차를 가했다. 자사 제품을 전용으로 판매하면서 맞춤형 행사를 진행하고, 배송 서비스를 더 강화하는 방식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는 전략 중 하나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약 31% 증가한 42조411억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온라인 쇼핑 농축수산물·음·식료품 거래액도 3조2324억원에서 7조2748억원으로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을 위한 온라인 쇼핑 환경 구축에는 여전히 더딘 모습인 셈이다.

식품업계는 인증에 소극적인 이유로 일제히 비용 문제를 꼽는다.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정하는 공인 인증기관 3곳 중 하나인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의 인증심사수수료는 웹사이트의 페이지 수에 따라 최소 120만원에서 최대 250만원으로 책정돼있다. 인증 유효기간인 1년 이후 실시하는 갱신 심사에도 비용이 발생한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초기 심사비용과 매년 인증을 갱신 해줘야 하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며 "경쟁사 온라인몰보다 돋보여야 하기 때문에 웹 접근성 기준에 맞추다 보면 디자인이나 다양한 콘셉트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도 고민거리"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식품업계 관계자는 "쇼핑몰은 하나의 페이지에도 무수히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 그 제품 설명을 일일이 귀로 들으면서 구매하는 시각장애인이 얼마나 있겠느냐"며 "기업에 책임을 묻기보다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전용 쇼핑몰을 구축하는 방법이 더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장애인 수는 전체 인구(5185만여명)의 5%인 261만8000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시각장애인 수는 25만3000명으로 전체 장애인의 약 10%를 이루고 있다.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도 매년 늘고 있다. 통계청이 올해 발표한 '2020 통계로 보는 장애인의 삶'에 따르면 지난해 장애인의 인터넷 이용률은 전년 대비 0.9%p(포인트) 증가한 78%로 나타났다. 장애인 스마트폰 보유율도 약 77%로 전년 대비 1.0%p 늘었다. 적지 않은 수의 소비자가 온라인 웹사이트 이용에 불편을 겪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장애인 웹 접근성을 확대하기 위한 논의는 내년 초 또 한 번 불이 붙을 전망이다. 지난 2017년 시각장애인 963명이 온라인 쇼핑 환경에서 차별을 받는다며 이마트몰(이마트)·롯데마트몰(롯데쇼핑)·G마켓(이베이코리아)을 상대로 낸 57억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최종 선고가 오는 2월로 예정돼있기 때문이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는 향후 웹 접근성 인증에 강제성을 부여하고 미인증시 처벌하는 규정 제정을 촉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현규 웹접근성 평가센터 선임연구원은 "아마존을 포함한 많은 해외 쇼핑몰은 웹 접근성을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이 같은 플랫폼을 제공하기 쉽지 않다"며 "강제성과 처벌 규정을 마련하는 움직임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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