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허기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보내는 위로
끊임없는 허기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보내는 위로
  • 김희정 기자
  • 승인 2021.02.22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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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FOCUS - 헝거,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어린 시절 겪은 폭력이 남긴 상처로 초고도비만이 되어버린 몸
그 몸을 바라보는 혐오를 딛고 일어선 한 여성의 용기 있는 고백이자 치유 에세이

『헝거 –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록산 게이 저, 노지양 역 │사이행성│15,800원

“나는 뚱뚱하지 않았고 그러다 날 뚱뚱하게 만들었다. 나의 몸이 거대하고 아무것도 뚫을 수 없는 커다란 덩어리가 되기를 바랐다. .. 먹고 싶은 모든 것을 먹었고 다른 여자아이들이 원하는 모든 것까지 먹어치웠다. 너무나 자유로웠다. 내가 만들어낸 감옥 안에서, 나는 자유로웠다. ” (221)

12세에 끔찍한 폭력을 당하고 본인의 몸을 요새로 만들어버린 한 여성이 있다. 폭력의 상처를 극복하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던 그녀는 먹고 또 먹었다. 뚱뚱해서 역겨운 몸을 만들기 위해, 그래서 남자들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190cm, 261kg의 거구의 몸에 스스로를 가두어버린 그녀는 오랜 시간 “내 몸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내 몸은 착취되어야 할 무엇이니까. 내 몸은 역겹고 그래서 그렇게 취급되어도 마땅하니까”라며 스스로를 학대하고, 자책하며 고통 속에 몸부림 친다.

이처럼 자기혐오로 점철된 고통의 시간에 대한 내밀한 고백을 담은 책이 바로 록산 게이의 『헝거』다.

퍼듀 대학의 문학 교수이자 소설가, 에세이스트이면서 흑인이자 여성, 동성애자이기도 하기도 한 록산 게이는 이 책을 통해 안전하기 위해 거대해진 몸, 그리고 그 몸을 바라보는 세상과의 사투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헝거』는 2017년 미국에 소개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키며 뉴욕타임스와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한 여성의 “가장 추하고, 연약하고, 가장 헐벗은” 부분을 드러내보이는 이 이야기는 ‘승리’의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용기 있는 한 여성의 고백록이자, ‘치유’ 에세이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시작했으나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더 못한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하던 아이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내는 법을 천천히 배워간다. 여전히 존재하는 과거의 일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덮어두지도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가진 가치에 주목하는 법을 알아간다.

부러진 발목으로 병원 신세를 지던 록산 게이는 “치유란 그다지 거창한 것이 아니고, 먼저 내가 내 몸을 돌보고 나의 몸과 더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는 것”이란 것을 깨닫는다. 내가 가진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고, 내 모습 그대로가 ‘충분’하리라 믿는 건 겁나는 일이라 고백하면서도, 그 믿음을 향해 조금씩 나아간다.

우리가 끊임없이 갈망하는 몸,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허기와 욕망은 누구에게서 기인한 것인지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리 모두 평생 나와 화해하기 위해, 세상과 화해하기 위해 애쓰며 살아간다. 내면의 허기는 스스로를 가장 먼저 돌보고, 나의 가치를 내가 먼저 인정해 줄 때 비로소 채워질 수 있다. 각자의 고통을 덜어내고, 스스로의 가치를 찾는 치유의 여정에 용기가 될 책 한 권을 건넨다.

“나의 슬픈 이야기들은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슬픈 이야기들은 언제까지나 내 어깨를 짓누르는 짐이 될 것이지만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깨달을수록, 나의 가치를 깨달을수록 그 짐은 가벼워질 것이다.” (280)

[소셜포커스 김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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