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애 개념이 절실한 강진 전라병영성
무장애 개념이 절실한 강진 전라병영성
  • 조봉현 논설위원
  • 승인 2021.03.09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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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액을 들인 병영성 복원, 이동약자 접근로 전혀 없어
문화재 복원·재현시 이동약자 접근성 고려할 수 없나?
가족끼리 방문한 병영성, 편의시설 부재로 참담한 경험
매년 열리는 강진 병영성 축제, 이동약자는 외톨이 신세
전남 강진군의 전라병영성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조봉현 논설위원] = 네이버지도나 카카오맵 등에서 병영이라는 지역을 검색하면 2곳이 나타난다. 영남과 호남지방에 각 1곳이다. 하나는 전남 강진군 병영면이고, 하나는 울산광역시에 있는 병영동이다. 이 두 곳은 병영이라는 명칭과 함께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조선시대 병마절도사가 있었던 지역이다.

병마절도사는 각 도의 군사적인 지휘를 총괄하는 관리였으니, 도단위 육군사령관이었던 셈이다. 종2품으로 오늘날 도지사에 해당하는 관찰사와 같은 품계였다. 보통 '병사'로 약칭해서 부르기도 했으며, 초기에는 병마절제사라고 했다.

따라서 강진의 병영에는 호남지역 육군사령부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제주도가 전라도에 속했으므로 강진에 있었던 병사는 제주도까지 담당하였다. 오늘날의 1광역시와 3도를 관장하였다. 그리고 울산의 병영에 있는 병마절도사는 경상좌도의 국방을 담당하였다.

조선시대 병마절도사는 시대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전라도ㆍ충청도ㆍ평안도ㆍ함경도는 1명씩 두었고, 경상도는 좌도와 우도로 나누어 2명을 두었다. 그리고 후방에 해당하는 경기도ㆍ강원도ㆍ황해도는 전임 병마절도사를 두지 않고, 그 도의 관찰사가 겸임하였다.

남부지방을 대표하는 강진의 병영과 울산의 병영에는 조선시대 병영성의 유적이 남아 있다. 이러한 유적이 소재한 해당 지자체는 성체를 복원하고, 문화재 및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2곳 모두 오래전부터 복원사업을 하고 있다.

‘전라병영성’은 1417년(조선 태종 17)에 초대 병마절제사였던 마천목(馬天牧) 장군이 축조하였다. 1895년 갑오경장 때까지 500여 년간 운영되었으며, 53주 63진을 총괄하였다고 한다. 역사적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받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397호로 지정되었다.

1999년부터 강진의 ‘전라병영성’ 일원에 발굴조사가 시행되었다. 그 결과 평지에 축조된 정방형의 성으로 전체 둘레가 1,060m이며, 4개의 문과 4개의 옹성, 8개의 치성(雉城)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흔적은 없지만, 성 내부에는 동헌(東軒), 객사(客舍), 내아(內衙, 수령의 가족이 거처하던 관사) 등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강진군은 2000년부터 조사 결과를 토대로 현재까지 성곽 및 치성ㆍ옹성 등 상당 부분을 정비ㆍ복원하였다. 복원공사는 현재에도 진행 중이며, 과거 병영성의 위용을 갖출 때까지 공사를 지속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도까지 투입된 공사비가 490억원인 것으로 알려졌고, 그 후에도 10년 가까이 매년 복원공사를 해 왔으므로 아마 1천억원이 넘는 비용이 투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매년 4월이면 이곳에서 “전라병영성축제”가 열린다. 작년에는 코로나로 열리지 못했지만 2019년도에 22회 축제가 열렸다.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이 참여하여 병영기 만들기, 조선 병사 의복ㆍ식사 체험하기, 활쏘기 등 다양한 행사를 한다. 퍼레이드와 퍼포먼스, 군문화 페스티벌 등 재밌는 프로그램을 구경하고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축제장에 오는 사람들 중에서는 장애인, 노인, 부모와 함께 온 유아 등 다양한 사람들이 포함될 것이다.

병영성을 방문하면 바로 앞에 있는 하멜기념관도 볼 수 있다. 강진의 병영은 하멜 일행이 이곳 병마절도사의 감시하에 7년 정도 살았던 곳이다. 하멜 기록에 의하면 하멜이 있었던 당시에 거쳐갔던 절도사들의 성품이나 일부 행적에 대해서도 기술이 되어 있다.

아들 내외 및 손주들과 함께 가족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전라 병영성을 방문한 적이 있다.

병영성에 도착하여 성 안으로 들어가 보니 복원된 성곽 전체가 한 눈에 나타났다. 아직은 성체만 복원한 상태라서 내부 전체가 허허벌판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과거에 실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을 모두 복원할 것이라 한다. 성곽 위는 제법 넓은 폭의 길이 나 있다. 옛날에는 병사들의 전투공간이었을 테고, 지금은 관광객들의 산책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성 안에서 그 산책로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성문 양쪽으로 축조된 계단을 거쳐야 한다. 한쪽은 돌계단이고 한쪽은 나무계단이었다. 높이는 5~6m 정도 돼 보였고, 길이(둘레)는 1km가 넘지만 어디에도 휠체어나 유아차가 올라갈 수 있는 경사로는 없었다. 옛날에 군사시설로 사용할 때도 대포 등 무기를 운반하려면 성곽 내벽에는 수레같은 것이 올라갈 수 있는 경사로도 몇 개쯤 있었을 텐데, 왜 그런 시설은 고려하지 않았을까?

휠체어를 타고 간 필자는 성 아래에서 우두커니 앉아 쳐다볼 뿐, 가족들과 함께 성곽 위를 둘러볼 수는 없었다. 성을 방문해서 성곽 위를 둘러보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걸음마를 시작한 지가 길지 않은 손주는 유아차를 이용하고 있었는데, 경사로가 없으니 유아차도 올라 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아들은 손주를 유아차에서 내리게 해서 손을 잡고 나무 계단을 한칸씩 올라갔다. 아기를 유아차에 내버려두고 어른들만 성곽 위로 올라갈 수는 없지 않는가?

그런데 그 손주가 아빠 손을 잠시 놓치는 사이 아랫계단으로 넘어지면서 계단에 머리를 부딛혔다.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는 한 시간이 넘도록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다행이 큰 부상은 없었지만, 하염없이 울어대는 아기의 모습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심정은 참담했다. 지금도 그 아픔이 생생하다. 여행 기분은 완전히 깨졌고, 일정은 중단되었다. 누구나 동등하고 편리하게 이용해야 할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음으로써 일어난 슬픈 일이었다.

정부나 지자체들이 많은 돈을 들여 문화재를 복원하거나 재현하는 가장 큰 목적은 문화유산 보호의 목적이 있겠지만, 관광객 유치 또한 중요한 목적일 것이다. 때로는 관광객 유치가 더 큰 목적일 수도 있다. 어쨌든 문화재이건 관광시설이건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는 이용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시설의 가치도 증가할 것이다.

성곽 복원시 내벽에 성위로 올라갈 수 있는 경사형 접근로가 설치되어야 이동약자도 성위로 올라가 성문누각도 살펴보고 순찰로(산색로)를 둘러볼 수 있다. 그러한 구조를 갖추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까?

보통 성문누각은 그 성의 핵심시설이다. 성문누각에 올라가보지 않고는 그 성을 제대로 보았다고 할 수 없을 게다. 성문누각의 내부시설은 어떤 모습일까? 전라병영성은 이동약자가 성위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니 직접 확인해 볼 수도 없다. 유튜브 및 이미지 검색을 통해 사진으로 본 병영성의 성문누각은 곳곳에 단차가 발견됐다. 올라가더라도 휠체어가 마음대로 둘러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이 역시 장애인에겐 차별시설이다.

이동약자 접근시설이 없는 강진의 전라병영성
이동약자 접근시설이 없는 강진의 전라병영성의 내부성벽 ⓒ소셜포커스
병영성의 성문누각의 내부시설도 이동약자는 둘러보기 어렵다.(사진=Korea Tour TV 유튜브 동영상 캡쳐 화면)
병영성의 성문누각의 내부시설도 이동약자는 둘러보기 어렵다.(사진=Korea Tour TV 유튜브 동영상 캡쳐 화면)

성곽 하면, 아무래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까지 된 수원화성이 가장 유명할 것이다. 수원화성은 원래 조선 정조대왕 때 건설되었지만, 지금의 형체는 대부분 현대시대에 와서 복원한 것이다. 원형이 아닌 복원 문화재이지만, 현존하는 당시의 설계도 및 공사관련 기록물 등으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최대한 원형대로 복원되었기 때문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 화성의 성곽 내벽은 여러 곳에 휠체어나 유아차 등을 이용하는 이동약자도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는 접근로가 설치되어 있다. 그 접근로가 있다고 해서 원형이 훼손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성곽 전체가 이동약자가 아닌 사람과 똑같이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 보장하려고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장애인이건 아니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특히 휴일에는 가족끼리 수많은 시민들이 방문하는 등 더욱 큰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성곽의 내벽 경사로는 휠체어, 유아차, 노인보행기 등이 자유롭게 오르내릴 수 있다. 비장애인들도 계단보다는 경사로를 이용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장애인에게 편리한 시설은 비장애인에겐 더욱 편리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방문했을 땐 가족끼리 유아차를 밀고 통행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른 지역의 성곽문화재를 복원할 때도 수원화성의 경우를 참고하여, 강진 병영성과 같은 오류를 거치지 않았으면 한다. 강진의 병영성도 계속 복원 중에 있으므로 지금이라도 잘못된 시설은 개선하면서 복원이 되어야 한다.

이동약자의 접근성을 갖춘 수원화성
이동약자의 접근성을 갖춘 수원화성의 내부성벽 ⓒ소셜포커스
휠체어 유아차 등이 자유롭게 통행하는 수원화성의 성곽
휠체어, 유아차 등이 자유롭게 통행하는 수원화성의 성곽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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