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당사자 “제 욕구를 맞춤 주문하겠습니다”
장애인당사자 “제 욕구를 맞춤 주문하겠습니다”
  • 노인환 기자
  • 승인 2018.11.30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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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장애인 아고라 광장 토론회 개최
"종합조사표에 반영될 요구 귀기울여야"
한국장애인단체연맹과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는 30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제 욕구를 맞춤 주문하겠습니다'라는 주제로 제4차 장애인 아고라를 공동 개최했다. 노인환 기자

장애인등급제가 폐지되면 장애인의 복지서비스는 당사자의 필요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서비스지원종합조사(이하 종합조사표)를 통해 수급자격과 급여량이 결정된다.

하지만 현재 정부에서 제안한 종합조사표는 장애 유형에 따른 개별적 특성과 사회적 상황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장애등급제의 이름만 바꾼 것이라는 장애계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장애인단체연맹(상임대표 홍순봉, 이하 한국장총)과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상임대표 김광환, 이하 장총련)는 30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제 욕구를 맞춤 주문하겠습니다’라는 주제로 제4차 장애인 아고라를 공동 개최했다.

장애인 아고라는 종합조사표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맞춤형 서비스가 장애인 당사자들의 어떠한 욕구와 환경이 반영돼야 할지, 그리고 장애인이 현실에서 실제 느끼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광장 토론을 통해 제시하는 자리다.

토론의 주제는 크게 ▲경제(소득, 일자리 등) ▲건강(의료 등) ▲사회참여(교육, 문화 등) 등 3가지로 구분해 각 토론자들과 일반 참석자들 간의 자유로운 의견들이 오갔다.

토론회는 각계 장애인단체 실무자들이 참석해 경제, 건강, 사회참여 등 다양한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노인환 기자

경제분야 토론회의 시작은 한국장애인부모회 이길준 사무총장의 의견 발표로 시작됐다. 이 사무총장은 “부모가 장애인 자녀를 놓아야 그때서야 국가가 책임지느냐는 장애인부모들의 하소연을 많이 들었다”며 “자립이 어려운 발달장애인 자녀는 활동보조인이 다루기 어렵기 때문에 부모들이 나서야 한다. 결국 가족 돌봄에 대한 보조금 적용 영역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장애인가족 활동보조는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사무총장은 “고용부담금이나 장애인고용의무도 민간기업은 그렇다쳐도 공공기관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공공부문의 장애인 고용촉진을 강하게 주장했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회 이희정 전 사무처장은 장애인 경제, 소득, 일자리 등을 너무 돈에만 치중해 생각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전 사무처장은 “직업은 돈도 중요하지만 장애인들을 삶의 주체자로 살 수 있도록, 사회참여의 계기가 될 수 있는 장으로 인식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단기간 공공일자리 정책이 많은데, 이것으로는 장애인 일자리의 지속성이 결여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일본 정부는 장애인 일자리 중 재택근무를 늘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의 가계경제를 개선시키자는 내용을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같은 논의는 진행된 적이 있다. 

이에 이 전 사무처장은 “재택근무는 장애인 일자리에서 지양돼야 할 사안이다. 오히려 창살 없는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당사자의 사회성을 더욱 고립시키는 일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한국근육장애인협회 양지원 팀장은 “청년의 관점에서 경제를 논하고 싶다”며 말문을 열었다. 양 팀장은 “취업준비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장애인들은 인턴의 연속생활에 빠져버린다. 1년 인턴, 그리고 1년 인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인턴으로 귀속돼 버린다”며 장애인 일자리의 단기성과 제한점을 호소했다.

양 팀장은 “비장애인들의 일반적인 근무시간인 9~6시, 또는 이후 야근은 장애인들에게는 소화하기 어려운 근무제도다. 근무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돼 장애인들이 원활하게 업무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장애등급제 폐지와 종합조사표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노인환 기자

이와 같이 장애인의 ‘경제’와 관련된 토론이 진행되던 중 장애등급제와 관련된 내용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전현숙 사무처장은 “현재 장애등급제가 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폐지되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정확한 개념, 장애인들의 욕구 등이 제대로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 하성준 사무국장은 “장애등급제 폐지는 복지카드에 급수만 제거하면 끝날 일이다. 그러나 급수가 없어져버리면 복지카드만을 보고 장애인 서비스를 지원받을 때 불편함이 있을 수 있다”며 등급제 폐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하 사무국장은 “이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면서 튀어나온 것이 종합조사표인데, 이것이 별개 아니다. 그저 기존부터 진행돼왔던 장애인 서비스, 그것을 한 데 모아놓고서 장애인에게 필요하냐, 필요하지 않냐를 묻고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종합조사표를 “기존 서비스의 요약본일 뿐”이라고 단정지었다.

하 사무국장은 종합조사표에 따른 서비스에 대한 실효성도 이상한 방향으로 추진된다며 이를 비판했다. “맞춤형 서비스? 이것이 대체 무슨 말인가. 왜 서비스에 장애인들이 맞춰져야 하는가?”라며 뉴질랜드와 같은 선도국들의 장애인서비스는 당사자에게 맞춰진 코디네이터가 준비돼 있다고 비교 제시했다.

건강·의료와 관련된 토론회는 산재장애인 당사자 양기성씨가 “나는 태권도 사범으로 일했는데, 사고가 나면서 장애인이 됐다. 그런데 퇴원하는 것보다 입원해 있는 것이 더 많은 의료지원비가 나왔다"며 "결국 의료비를 지원받기 위해서는 병원에 더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과거 병원생활을 회고했다.

이에 한국여성장애인연합회 이희정 전 사무처장은 “의료비나 그 외에 정부보조금도 똑같다. 장애인에게 급여(소득)가 발생되면 정부혜택이 줄어들거나 없어진다"면서 "경제활동이나 의료지원이 제도적 걸림돌로 인해 막혀 있다”고 말했다.

이 사무처장은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으로서 병원을 이용하기 불편한 적이 있다. 입구 앞까지는 가는데 그 뒤로는 목발로 바꿔야 하는 경우가 있다”며 의료기관의 시설접근성이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최용준 간사는 “나의 경우는 지금의 의료서비스가 잘 유지되고 관리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료서비스를 편리하게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입장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이어 한국근육장애인협회 양지원 팀장은 “근육발달장애인의 경우 지정병원이 많지 않아 매우 불편하다”며 장애인 지정병원의 부족함을 호소했다. 양 팀장은 “특히 근육발달장애인에게만 적용되는 의료혜택이 있는데, 그것도 매우 취약한 제도”라며 “내가 골절수술과 담낭제거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 의료과목이 근육발달장애와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의료혜택에서 제외됐다”고 말했다.

장애인 의료서비스에 관해 한국장애인부모회 이길준 사무총장은 “발달장애인의 경우 질병의 경중을 잘 따지지 않고 약물치료가 너무 과하게 진행된다”며 “전신마취를 하게 될 경우 기존의 약물저항성이 약해지면서 마취가 안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이 사무총장은 의료통보시스템에 대해 지적하며 “발달장애인은 건강검진 관련 안내서가 집으로 와도 이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국가는 쪽지(검진통보안내서)만 보낼 것이 아니라 장애인에게 설명까지 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시각장애인의 안마사 직업에 대한 보험적용 여부, 사회참여에 대한 장애인들의 제한점 등이 활발하게 논의됐다.

한편, 이번 논의는 지난 15일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동 개최했던 ‘장애인서비스종합조사도구 개선을 위한 정책간담회’에서도 화제가 됐다.

현재 장애인 아고라는 당사자들이 경험한 불편사항을 사회 전반에 알리고,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광장토론이다.

현장에 참석이 어려운 경우를 대비해 당일 페이스북(www.facebook.com/kodaf99/) 생중계를 실시간으로 진행하고, 이를 통한 자유로운 의견 제안도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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