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 마련 촉구 움직임
'중증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 마련 촉구 움직임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1.03.31 1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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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복지법 제40조, 가족에게 모든 책임 전가해" 개정 요구
사법입원제ㆍ공적이송체계 등 마련해 가족의 치료 책임 덜어야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30일 정책토론회 개최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는 중증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30일 오후 이룸센터에서 개최했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예지 기자] = 중증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는 30일 오후 이룸센터에서 이에 대한 토론회를 갖고 방향성을 모색했다.

중증정신장애인은 장애인복지법에서, 정신질환자는 정신건강복지법에서 정의한다. 종전 장애등급제 1~3급에 해당하는 중증일 경우만 등록장애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그 이하는 정신질환자로 분류된다.

중증정신장애인은 1년 이상 성실하고 지속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중증의 조현병, 조현정동장애, 양극성정동장애(조울증), 재발성 우울장애를 가진 사람을 뜻한다. 정신질환자는 망상, 환각, 사고나 기분의 장애 등으로 인해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중대한 제약이 있는 사람이다. 중증정신장애인과 정신질환자를 통틀어 당사자로 칭한다.

정신장애당사자 가족들은 필요한 의료, 복지, 치안을 국가가 책임지고 통합적으로 제공해 가족의 과도한 부담을 줄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신질환 발병 후 첫 치료까지 14개월… WHO 평균보다 4배 늦어

조현병은 조기진단과 치료가 중요한 정신질환이자 뇌질환이다. 환각, 망상, 와해된 언어, 기이한 행동 등이 주요 증상이다. 15세에서 25세 사이에 많이 발생하고 평생에 걸친 관리가 필요하다.

병식(환자가 질환을 자각하는 것)이 없는 것이 특징이어서 임의로 약물치료를 중단하기도 해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재발환자의 경우 이 증상이 더욱 심해 정신과적 응급상황이 벌어질 확률이 높다. 정신장애인이 살인이나 방화 등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주로 이런 경우에 발생한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2019년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신질환자의 평균 치료 시작 시기는 발병 시기로부터 14개월 후다. WHO 국가 평균 첫 치료 시기가 발병 후 3개월인 것에 비해 상당히 늦다.

초기에는 가족들도 증상을 사춘기로 혼동하기 쉽고, 증상이 심해지면 굿이나 안수기도 등 비의료적 접근으로 해결하려 해 치료 적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도저히 가족들조차 감당을 못 할 정도가 되어서야 정신의료기관을 찾기 때문에 장기입원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보호의무자 제도 폐지해야… 가족에게만 책임 지우는 정신건강복지법

정신건강복지법 제40조는 정신질환자 보호의무자의 의무를 규정한다. 보호의무자는 정신질환자가 자·타해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고, 재산상 이익 등 권리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하며, 정신질환자를 유기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적절한 치료와 요양, 사회적응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의무도 있다.

정신질환자 가족들과 전문가들은 이 법 조항이 정신질환자 보호 의무를 전적으로 가족들에게 지우고 있다는 증거라며 국가의 책임을 묻고 있다. 

치매국가책임제는 2016년 대선 공약으로 등장한 뒤, 2017년 정식으로 도입됐다. 핵가족화에 따라 가족 부양을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만연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그러나 중증정신장애인과 정신질환자에 대한 국가적 책임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여전히 미비해 법 개정 추진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정신과적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타해 위험에 노출되는 것 또한 그 가족이지만 경찰이나 구급대에 도움을 청하기도 어렵다. 

보건복지부 등이 발간한 '정신과적 응급상황에서 현장대응안내 2.0'에는 정신질환으로 자·타해 위험이 큰 사람을 다른 유형으로 입원 시킬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의사와 경찰관의 동의를 받아 정신의료기관에 응급입원을 의뢰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호송 주체는 입원에 동의한 경찰관 또는 119구급대원이다. 

김영희 정책위원.
ⓒ소셜포커스

하지만 경찰청이 발간한 '고위험 정신질환자 신고 접수 매뉴얼'에서는 호송 주체가 사설 구급대(129)여야 한다고 되어있다. 민원으로부터 출동 경찰관이나 구급대원을 보호하는 법적 근거가 없으니 대처는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중증정신장애인 당사자 가족이기도 한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은 "경찰관, 소방대원들은 입원이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서가 없으면 출동 현장에서 명백한 폭력이 관찰되지 않는 이상 개입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실제 겪었던 사례에 대해 설명했다.

김영희 정책위원은 이어 "출동 인력이 돌아가면 가족들이 해코지 당할 수도 있으니 사설구급차가 올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호소해야만 보호받을 수 있다. 사법·준사법입원제도로서 경찰이 응급상황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법입원제도 도입 필요… 보호자 혹은 자의에 의한 치료중단 막아야

2018년 7월 경북 영양군에서 정신질환자에 의해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1명은 크게 다친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는 이미 살인 전과가 있는 중증환자였다. 철저한 의료적 보호가 필요한 상태였으나 입원비를 마련하지 못한 어머니가 퇴원을 결정해 집에 머물던 중 사고가 발생했다.

백종우 경희의대 교수.
ⓒ소셜포커스

백종우 경희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만일 이 환자가 해외에 살고 있었다면 정신과적 응급상황으로 인한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백종우 교수의 발제에 따르면, 해외 선진국에서는 사법 혹은 준사법입원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보호자나 당사자가 아닌 사법부나 준사법행정기관에서 치료지속여부를 결정한다.

뉴욕이었다면 정신건강법정에서 전문성 있는 판사와 학제팀이, 영국과 호주에서는 복지부 소속의 정신건강심판원 심사위원회에서 비자의입원 또는 가정방문 외래치료지원제도를 심사했을 것이다. 결정 사항을 이행하지 않으면 경찰이 개입해 입원치료를 지원할 수 있다.

통합적인 커뮤니티 케어로 확실한 관리도 이루어진다. 뉴욕주는 3만9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정신장애인 거주시설을 확보했다. 전원 독실을 제공하고, 의료진이 24시간 상주하며, 사회복지사가 저녁마다 모니터링을 실시한다. 이 시설에서는 설립 이후 10년 동안 단 한 건의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주민들의 반발도 없다. 정신장애인 시설임을 짐작할 수 있는 간판 등이 일체 없어 여느 아파트 단지와 같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입에 올리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도 조성되어 있다.


■자꾸 뒤로 밀려나는 정신장애인 정책… 종사자 처우도 개선 어려워

정신장애인 정책은 범국민적인 국가계획에 포함되어 있어 집중적인 추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이에 전준희 전국정신건강복지센터협회장은 "정책 우선순위가 쉽게 변하지 않아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는 제1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2016~2020)에서 정신장애인 인권 증진과 전달체계 강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자살 예방, 아동·청소년, 재난트라우마 등 다양한 분야를 추가해 올해 발표된 제2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에서 또한 정신장애인 정책은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국가적 지원은 부족하고 일은 힘들기로 소문이 나 인력 확보도 쉽지 않다. 정부는 2024년까지 환자 20명당 종사자 1명이 배정될 수 있도록 인력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국가가 종사자 처우에 대한 지원을 확실하게 하지 않는 이상 목표치 달성은 미지수이다.

정신보건센터 종사자의 평균 근속기간은 3년이 채 안 된다. 근무가 힘들기로 악명 높은 자활기관 종사자들의 평균 근속기간이 4년 정도인 데 비해서도 상당히 짧다.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
ⓒ소셜포커스

전준희 협회장에 따르면, 치매국가책임제가 도입된 이후로 많은 정신보건센터 종사자들이 치매관련기관으로 이직하기 시작했다. 경력이 풍부한 종사자들은 국가 지원으로 안정적인 분야로 일자리를 옮기고, 신입 지원자는 날로 적어지는 추세다. 

전준희 협회장은 "일이 너무 많다. 전국 평균 종사자 1명이 40에서 50명의 환자를 담당한다. 환자 담당만 하는 게 아니라 홍보, 캠페인, 교육사업, 정부평가, 위기개입까지 해야한다"고 현장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했다.

한편, 토론회를 주최한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은 "정신장애인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가장 소외된 장애인이라는 것은 소득수준과 기초생활수급 통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여태까지 정부가 정신장애인 문제를 가족에게만 맡긴 채 손놓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정치권에서 정신장애당사자 가족과 함께하면서 정책을 마련하고 시행해나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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