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의집' 수사 7개월째 지지부진... 가해자 5명 업무 복귀
'라파엘의집' 수사 7개월째 지지부진... 가해자 5명 업무 복귀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1.04.12 08: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피해자와 가해자, 다시 한 공간에... 2, 3차 가해 우려
수사본부 없이 인권침해 전수조사?... 장애인 학대, 또 '반짝 이슈'에 그칠 것
경찰청 차원의 '거주시설 인권침해 특별수사본부' 조직 촉구
여주 라파엘의 집에서 벌어진 거주장애인 상습학대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전이 없는 상태다. 이에 장애인권단체들은 사건에 대한 엄중한 수사와 경찰청 차원의 거주시설 인권침해 특별수사본부를 촉구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예지 기자] = 경찰청 차원에서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침해 특별수사본부를 조직해달라는 요구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주 소재 장애인 거주시설 '라파엘의 집'에서 벌어진 중증장애인 상습 학대사건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권단체들은 9일 오전 경찰청 앞에서 회견을 열고 사건 수사 촉구와 거주시설 인권침해 특별수사본부 조직을 요구했다.

라파엘의 집은 시각·발달 중증중복장애인 146명이 거주하고 있는 대형 장애인 거주시설이다. 이곳에서 종사자 15명이 장애인 7명에 대해 지속적, 상습적으로 학대를 가해왔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해 8월 공익제보자가 해당 법인의 소재지인 강남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2020년 9월 강남구청은 현장조사를 진행했고, 서울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도 같은 달 14일과 15일 조사를 진행한 후 경찰에 고발조치했다. 사건이 세간에 드러난 것은 지난 3월 23일 KBS 등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하면서다. 

1년 간의 CCTV 영상에서 학대 가해자로 지목된 종사자들은 장애인들의 몸에 짐볼을 발로 차서 스물다섯차례나 맞추고, 이종격투기 기술을 가하는 등 폭행을 계속했다. 밥을 먹지 않는 것도 폭행의 이유가 됐다.

이뿐만 아니라 널빤지와 벨크로로 모양만 흉내내 만든 기립기에 장애인의 사지를 묶어놓는 불법 치료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기립기는 원래 스스로 앉았다 일어서기 어려운 사람을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보조기기다. 

그러나 시설 측에서 재활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던 기립기는 길다란 세로 모양의 널빤지에 벨크로 벨트 세 개를 붙여놓은 것이 전부다. "불법 기기에 묶였던 장애인들의 온몸에는 멍이 가득했다. 학대하는 데에 쓰이지 않았으리라 할 수 없다"며 회견에 참석한 활동가들은 입을 모았다. 

이 사건에 대한 수사는 7개월째 진행 중이다. 그러나 담당수사기관인 여주경찰서는 1년 간의 CCTV 화면 분석조차 끝내지 못한 상태다. 

수사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학대 가해자로 지목된 15명의 종사자 중 5명이 업무에 복귀했다.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피해자 7명은 자신들을 장난감 취급하며 폭행을 가해온 가해자들과 또 마주하고 있다. 2, 3차 가해가 심히 우려되는 정황이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측에 따르면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는 거주시설이 유닛구조로 되어있어 가해자와 피해자가 만날 수 없는 구조라고 하지만 실제로 가해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피해자를 만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거주시설 인권침해 특별수사본부 조직에 대한 요구는 보건복지부가 전국 100인 이상 대형 장애인 거주시설 37곳에 대해 인권침해 전수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데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보건복지부 권덕철 장관은 지난 6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과의 면담 끝에 위처럼 약속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정민구 활동가는 "대형 거주시설에 대해 전수조사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다. 어마어마한 폭행, 학대, 강제노역 등 인권유린 사태들이 튀어나올 것이다. 경찰청 차원에서 철저하게 본부를 꾸려 수사하지 않으면 사건들은 반짝 이슈로 유야무야 무마되고, 인권침해 사건은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라며 수사본부 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반복되는 시설내 장애인학대 사건은 가해자 한 사람의 일탈이라고 볼 수 없다며 시민들의 책임도 있다고 주장했다. 정민구 활동가는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기반이 있다면 여주 깡시골까지 자식을 왜 혼자 보내겠느냐"며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 중증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은근히 불편해 하는 시민들의 책임도 없다고 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또 발달장애가 있어 소통이 어렵다는 이유로 '피해자 진술없음'으로 조서를 작성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이해하는 전담 경찰관이 조사를 진행하고, 당사자와 신뢰관계에 있는 조력인을 지원해 피해자 진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정민구 활동가가 경찰청 측에 요구서를 전달하고 있는 모습. ⓒ소셜포커스

한국시각장애인가족협회 김경숙 이사장은 "시각장애인 자녀 2명을 둔 엄마로서 억장이 무너지고 기가 막힌다"며 참담한 마음을 토로했다. 

이어 이사장은 "여성과 청소년, 아동을 전담하는 기구는 있는데 장애인을 전담하는 기구는 왜 하나도 없나", "이런 식이라면 수사기관 안에서 장애인 학대 사건은 계속 이 부서, 저 부서로 떠밀리는 신세일 것"이라며 장애인 학대 전담 수사기관의 조직을 거듭 촉구했다.

장애인권단체 측은 회견 마무리에 경찰청 관계자에게 사건의 엄중한 수사와 거주시설 인권침해 특별수사본부 조직을 요구하는 제안서를 전달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