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가 최근 개장한 이봉창 기념관... "장애인은 돌아가라?"
용산구가 최근 개장한 이봉창 기념관... "장애인은 돌아가라?"
  • 조봉현 논설위원
  • 승인 2021.04.12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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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 염원 안고 일본의 심장부에서 일왕에게 폭탄 던진 이봉창 의사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빛나고 값진 의거, 다른 의거보다 저평가 아쉬워
용산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이봉창 의사, 일본에서 순국하고 용산에 잠들어
용산구가 모처럼 개장한 이봉창 의사 역사울림관, 장애인에겐 차별시설
단 하나의 단차로 인해 휠체어 출입이 불가능한 이봉창 전시관 입구
단 하나의 단차로 인해 휠체어 출입이 불가능한 이봉창 전시관 입구(입구로 들어가면 건물 전체가 전시공간이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조봉현 논설위원] = 지난 89년 전 1932년 1월 8일, 일본의 도오쿄오 한복판, 일본 국왕의 마차 행렬에서 큰 폭발음이 울렸다. 한국의 독립운동가 이봉창 의사가 히로히토 국왕을 폭살하기 위해 수류탄을 던졌던 것이다. 이 폭음은 일제 강점기 독립을 염원하는 한민족의 함성이었다.

이봉창 의사가 일본사람들이 천황으로 받드는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던진 곳은 일본에서 보안과 경비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경시청 앞에서였다. '황거'라고 하는 국왕의 관저도 바로 뒤에 있다.

아쉽게도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나 일본열도가 발칵 뒤집히고 수많은 관계 공무원들이 경비책임 등으로 목이 달아났다. 의거 다음날인 1932년 1월 9일자 일본 신문들은 조선 청년의 일왕 폭살 시도의 소식과 함께 이로 인해 내각이 즉시 총사퇴를 했다는 사실까지 보도했다. 그 때 일본의 신문들은 호외까지 발행했다고 하니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을 것이다. 이 의거는 성공여부에 불구하고 한국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리는 사건이 되었다.

당시 중국의 신문들은 “한인 이봉창이 일본 천황을 저격하였으나 불행히도 명중하지 않았다.”(韓人李奉昌狙擊日皇不幸不中)고 보도했다. 중국인들도 일본인들에게 얼마나 큰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면 “불행히도 명중하지 않았다”는 표현을 썼을까?

그때 이봉창 의사는 스스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그해 10월 1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32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이봉창 의사의 이 같은 의거는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등과 함께 항일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이다. 어떤 면에서는 중국의 하얼빈에서 조선 통감을 지냈던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한 안중근 의사의 의거나, 중국의 상하이에서 그 지역 주둔군 사령관을 폭살한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비해서 더 값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상대는 앞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은, 일본인들이 살아있는 신으로 섬기는 천황이었다. 일본 그 자체였다. 거사 장소 또한 하얼빈이나 상하이와는 견줄 수 없는 의미있는 곳이다. 적진 깊숙히 일본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도쿄에서도 황거 근처이고, 일본경시청의 현관 앞이었다. 보다 빛나고 값진 의거로 평가받아야 하는 이유이다.

1919년에 탄생한 상해 임시정부는 한동안 침체에 빠졌으나 이 사건을 기회로 다시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 동포들의 기금도 증가했다. 3개월 후에는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폭탄투척으로 일본군 사령관 시라가와 요시노리 대장과 상하이 주재 일본 수뇌부를 한 자리에서 살상하는 등 쾌거를 이루어냈다. 그리고 세계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다시 보게 되었고, 중국 장제스 정부의 지원도 받게 되었다.

윤봉길 의사가 이봉창 의사의 의거에 자극을 받아 김구 선생을 찾아가 제2의 이봉창이 되겠다고 간청했다. 이봉창과 윤봉길이 사용했던 폭탄은 모두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이 구해줬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봉창 의거 때 사용되었던 폭탄의 위력이 기대에 못미쳤던 점을 고려하여 윤봉길 의거 때는 보다 강력한 폭탄이 사용되어 통쾌한 결과를 얻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이 김구 선생이 남긴 백범일지에 잘 나와 있다.

일왕 폭살에 성공을 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이처럼 의거 이후에 나타난 효과 또한 다른 의거에 비해 결코 작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목숨을 빼앗았느냐 아니냐가 의거의 본질은 아니다. 결코 실패한 의거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봉창 의거가 안중근, 윤봉길 의거보다 낮게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정부가 수여한 훈장의 격에서도 드러났다. 이봉창이 받은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은 안중근ㆍ윤봉길 의사가 받은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보다 낮은 등급이다.

안중근 의사의 기념관이 1970년도 서울 남산공원에 건립되었다. 윤봉길 의사의 기념관도 1988년도에 양재시민의숲 공원에 세워졌다. 그외 백범 김구 선생, 김좌진 장군, 도산 안창호 선생, 만해 한용운 선생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에게는 번듯한 기념관이 있다. 남쪽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생가도 성역화 되어 있다. 그러나 이봉창 의사의 기념관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집터는 초라한 표지판 하나가 전부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봉창 의사에게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러던 중 서울특별시 용산구(구청장 성장현)는 작년에 효창동 286-7번지 이봉창 의사가 살았던 집터 근처에 이봉창 의사를 기념하는 건물을 세웠다. 명칭을 '이봉창 의사 역사 울림관'이라 정하고 작년 10월 21일 개관했다.

이 역사울림관은 지상 1층, 연면적 70㎡ 규모다. 수백 수천 ㎡에 이르는 다른 독립투사들의 기념관에 비하면 기념관이라 이름 붙이기가 민망한 미니 기념관이다. 그래서 용산구에서는 그 건물의 명칭을 기념관이라 하지 않고 색다른 이름을 썼을까?

전통 목구조에 기와지붕을 올렸으며, 전시실과 사무실ㆍ툇마루를 갖췄다. 전시공간은 의사의 생애에 맞춰 ‘용산구 효창동에서 이봉창과 마주하다’, ‘거사를 준비하며’, ‘다시 타오르는 불꽃이 되어’로 주제를 설정했다.

지도와 사진, 그래픽에 그치지 않고 키오스크(무인안내시스템), 증강현실(VR) 등 최신 전시기법을 도입한 게 특징이다. 이 의사가 직접 쓴 ‘한인애국단 가입 선서문’, ‘의거자금 요청 편지’ 등 사료와 유품(복제본)도 함께 전시했다.

전시를 둘러보고 나오면서 독립운동가 기념 티켓도 뽑을 수 있다. 티켓에는 백범 김구, 도산 안창호 등 독립운동가들의 주요 활동사항과 명언을 짤막하게 인쇄해 준다.

건물 외 부지는 ‘이봉창 역사공원’으로 꾸몄다. 배롱나무, 사과나무, 매화나무, 소나무 등 수목과 초화류를 심고 공원 경계 일부에 전통 한옥식 담장을 둘렀다. 역사울림관 툇마루와 벤치에서 조경을 감상할 수 있다. 건물부지 역시 다른 기념관의 몇 십분의1에 불과한 미니공간으로서 공원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물론 그 시설을 폄하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역사울림관 및 공원 조성 사업에는 구 예산 7억원이 들었다. 이 의사 집터가 포함된 효창4구역(현 용산KCC스위첸아파트) 주택재개발사업을 통해 마련했다. 구는 조합으로부터 기부채납 받은 ‘소공원’을 서울시와 협의를 거쳐 ‘역사공원’으로 바꿨다. 그리고 5월에 공사를 시작해다. ‘역사울림관’이라는 명칭은 시민공모를 통해서 정했다.

이봉창 의사는 용산구에서 태어났고 여기서 살았다. 그리고 순국 후에는 또 용산구 효창공원에 모셔졌다. 역사울림관 바로 뒤에 들어선 KCC스위첸아파트 단지에 그의 집터가 있었다. 아파트 단지 102동 앞에는 “이봉창 의사의 집터” 안내 표지판이 있다.

필자는 얼마 전 휠체어를 타고 그 '역사울림관'을 방문했다. 규모도 작은 데다 생긴지 얼마 안 된 시설이고, 주변에는 안내표시도 별로 없어서 어렵게 찾아갔다. 스마트폰 지도에서는 '이봉창전시관'이라고 조회를 해야 나온다.

불과 몇 달 전에 개장한 시설인 만큼 장애인 접근성도 당연히 양호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방문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마당에서 연결된 전시관 출입구는 약 한 뼘 정도의 단차를 이루고 있었다. 2개도 아닌 단 하나의 단차로 인해 전동휠체어는 출입할 수 없었다.

출입구에서 안내하고 있던 직원은 난처한 표정으로 미안하다고만 할 뿐 아무런 조치를 취해주지 못했다. 구청에 휠체어 통로가 필요하다는 건의를 해보겠다는 말 뿐이었다. 필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입구에서 돌아서야 했다.

이는 분명 장애인 차별시설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약칭)에서는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 제공을 거부하는 경우”에도 장애인 차별행위로 본다. 그리고 “정당한 편의”란 “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 설치 등 제반 조치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요즈음 각 지자체들은 고도차가 심한 지형도 무장애 개념과 유니버셜 디자인 등으로 장애인이 공중시설을 불편없이 이용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이 곳은 어떤 회사가 설계하고 시공을 했는지, 어느 공무원이 감독과 준공검사를 해줬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러한 개념이 없는 회사와 공무원들이 다른 공공시설을 세우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다.

 

이봉창 의사 기념관의 공식 명칭은 '이봉창 의사 역사울림관'이다. ⓒ소셜포커스
이봉창 의사 기념관의 공식 명칭은 '이봉창 의사 역사울림관'이다. ⓒ소셜포커스

 

"이봉창 의사 역사울림관"의 전경
이봉창 의사 역사울림관의 전경 ⓒ소셜포커스
이봉창 의사의 집터 안내 표지판 ⓒ소셜포커스
이봉창 의사의 집터 안내 표지판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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