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비 100억원 투입한 장애인 차별시설 '전라감영'
복원비 100억원 투입한 장애인 차별시설 '전라감영'
  • 조봉현 논설위원
  • 승인 2021.04.19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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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 있었던 전라감영, 조선 500년간 호남ㆍ제주지역의 최고 통치기관
관찰사의 공무수행 공간인 ‘선화당’ 등 7개 시설 착공 3년 만에 복원
누구에게나 개방하는 실내공간… 휠체어 이용자 등 이동약자 차별하는 시설
다중이용 공공시설, 장애인ㆍ비장애인 똑같은 수준의 이용 보장해야
전라감영의 정청(관찰사의 공무장소)인 선화당, 실내는 누구에게 개방되지만 휠체어는 들어갈 수 없다.
전라감영의 정청(관찰사의 공무장소)인 선화당. 실내는 누구에게나 개방되지만 휠체어는 들어갈 수 없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조봉현 논설위원] = 전주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호남의 정치, 경제, 문화를 아우른 최고 행정기관인 “전라감영”이 있었던 곳이다. 전라감영은 제주도까지 관할 구역으로 두었으니, 오늘날 1광역시ㆍ3도를 통치했던 것이다. 당시에 소속 행정구역으로는 56개 부ㆍ목ㆍ군ㆍ현이 있었다.

조선시대는 전국을 8도로 나누어 각 도의 수장으로 관찰사를 두었다. 관찰사는 지금의 도지사에 해당하지만, 그 지역의 행정은 물론 사법과 교육, 때로는 병마절도사를 겸하여 군권까지 쥐고 있었다. 도지사와는 차원이 달랐다. 관찰사를 “감사”라고도 불렀기 때문에 관찰사가 직무를 수행했던 관아를 '감영'이라고 했다.

경기도를 관할하는 경기감영은 한양ㆍ수원ㆍ광주 등으로 이동했다. 충청감영은 충주ㆍ공주로, 경상감영은 경주ㆍ상주ㆍ성주ㆍ달성(대구)ㆍ안동 등지로 옮겨 다녔다. 그러나 전라감영은 500여 년간 전주에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전주의 전라감영은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전라감영은 근대화 과정에서 옛 건물이 대부분 없어지고 그 터에는 전북도청이 자리잡았다. 감영 내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있었던 선화당은 6·25 전쟁 때 소실되었다. 그리고 2005년 전북도청이 신도심으로 이전하면서 그 자리에 전라감영 복원 논의가 시작되었다. 오랜 준비 끝에 2017년 11월 착공하였고, 3년만인 작년 10월 7일 개장했다.

복원된 건물은 선화당, 내아, 관풍각, 연신당, 내삼문 등 7개 건물이다. 복원공사에는 국비 및 도비와 시비를 합하여 총 104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준공기념식에는 송하진 전북도지사 등 전남북의 많은 고위관료들이 참석했다.

전라감영 복원에 따라 인근에 있는 경기전(조선 태조의 어진이 보관된 곳)과 한옥마을, 풍남문 등으로 이어지는 전통문화유산의 거리의 위상을 한층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선화당의 후면 ⓒ소셜포커스
선화당의 후면 ⓒ소셜포커스
선화당의 측면 ⓒ소셜포커스

감영에서 가장 핵심 건물은 ‘선화당’이다. 관찰사의 공무수행 공간으로서 전국의 모든 감영이 같은 명칭을 사용했다. “임금의 덕을 선양하고 백성을 교화하는 건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현재 감영의 정문격인 내삼문을 들어서면 일직선으로 50m 전방에 선화당 건물이 바로 보인다. 웅장한 외관과 우아한 곡선의 팔작지붕이 돋보인다. 내부의 기물은 구한말 미국의 한 외교관이 이곳을 방문하여 찍었던 사진을 고증하여 장식했다. 그리고 디지털 병풍과 와이드프로젝트비전을 설치해 감사의 지방 통치와 감영의 조직 및 문화에 관한 내용을 상영한다.

선화당 동쪽에는 관풍각이라는 누각이 들어섰다. 이곳에서는 시간여행(타임슬립) 만리경을 통해 관찰사의 관내 순회를 체험해 볼 수 있다. 관찰사가 도입된 초창기 지방통치자로 자리 잡기 전에는 권한이 크지 않았다. 왕명에 따라 각 군ㆍ현을 순회하면서 수령들의 직무를 감찰하고 민심을 파악해서 국왕에게 보고하는 것이 주임무였다. 조선 중기부터 종2품 지위와 함께 완전한 도단위 지방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북쪽에는 전라감사가 휴식을 취하던 연신당이 있다. 이곳 역시 실감형 콘텐츠를 통해 전라감영 건축과 감사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전라북도는 이 감영을 복원하면서 전통과 현대문화의 조화를 통한 상징적 문화공간을 재창조 하고, 구도심 활성화 및 주민 체험 교육장 등으로 활용한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따라서 각 건물은 박제된 시설이 아니라 방문자는 누구든지 건물의 실내까지 들어가서 옛날로 시간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것을 볼 수 있으며 체험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이 휠체어 장애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장애인 차별시설이다. 전라북도와 전주시가 국비와 도비, 전주시 재정까지 100억원 이상을 투입하여 최근에 준공한 시설임에도 휠체어 이용자 등 이동약자를 위한 접근 시설은 갖추지 않았다.

필자는 얼마 전 휠체어를 타고 이곳을 방문했다. 선화당 등 대부분의 건물은 방문자들이 마루에도 올라가고, 신발을 벗고 실내에도 들어가서 구경하면서 체험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휠체어를 탄 필자가 실내로 들어갈 방법은 없었다. 건물 외관만 쳐다보면서 마당만 뱅뱅 돌다 나와야 했다.

이동약자의 통행을 가로막는 건물간의 통로 ⓒ소셜포커스
이동약자의 통행을 가로막는 건물간의 통로 ⓒ소셜포커스

몇 년 전 휠체어를 타고 대구 근대골목 이상화 고택을 방문했을 때이다. 그 고택은 원형 문화재이고 규모는 감영 건물에 비하면 훨씬 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휠체어가 고택의 실내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마루 앞에 매립형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었고, 도움벨을 누르니 안내원이 리프트를 작동시켰다. 리프트를 타고 실내로 들어가서 여러 전시물들을 본 적이 있다.(본지 2019년 12월 3일자 "가로수단풍이 아름다운 대구에서"와 2020년12월8일자 "장애인에겐 닫힌 관광지?" 기사내용 및 사진자료 참조)

그런데 신축한 전라감영은 원형문화재가 아닌 복원시설이다. 선화당은 옛 사진에 의해서 복원했다지만 그 외 시설은 그냥 추정에 의한 재현시설일 뿐이다. 그렇다면 복원공사나 재현공사를 하면서 얼마든지 장애인 접근시설을 갖출 수가 있었을 것이 아닌가? 편의시설을 갖추는데도 원형문화재에 비해 휠씬 간단할 뿐 아니라 설계단계부터 반영되면 별도의 예산이 들어가지도 않을 것이다.

장애인 편의시설은 문화재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재의 가치를 증대시킨다. 또한 장애인 등을 위한 편의시설을 제대로 갖추어야 전북도에서도 밝힌 감영 복원 취지와 같이 전통과 현대문화의 조화를 통한 상징적 문화공간이 될 수 있고, 누구에게나 차별없는 체험 교육장이 될 수 있다.

건물의 정면에 편의시설을 설치함으로써 전통미를 살리는데 문제가 있다면 건물의 측면이나 후면에 설치하면 될 일이다. 현재 복원된 감영시설 중 이동약자를 위한 유일한 편의시설을 들 수 있다면 정문 출입구에 설치된 경사로인 것 같다. 그러나 바닥재가 화강암으로 된 그 출입구의 단차를 해소하기 위해 별도의 이질적인 나무판을 덧대었다. 원래의 복원공사에서는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복원공사를 할 때 아예 단차를 없이 하든지, 경사로를 같은 재질로 설치하든지 할 수는 없었을까?

진정한 의미의 장애인 편의시설이란, 부득이한 사유가 없다면 별도의 구분시설이 없이 동일한 시설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똑같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말한다. 장애인 통행 기준에 맞추면 비장애인에게는 더욱 편리한 법이다.

신축된 전라감영은 모든 시설에서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똑같은 수준의 이용이 보장되어야 할 공중시설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약칭)에서는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 제공을 거부하는 경우”에도 장애인 차별행위로 본다. 그리고 “정당한 편의”란 “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 설치 등 제반 조치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시설을 방치하는 것은 장애인 차별행위이다. 전북도지사와 전주시장 그리고 관계공무원들은 장애인 차별행위가 계속되지 않도록 조속한 조치를 해야 한다.

전라감영 복원사업을 어느 회사가 설계와 시공을 했으며 어느 공무원이 감독을 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러한 개념없는 사람들이 또다른 공공시설을 설치하지는 않는지 걱정이다. 모든 공공기관에서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공사를 발주할 때는 설계단계에서부터 장애인 편의시설 의무화 조건을 명시하고, 공공시설에 대한 공사계약서의 표준 서식에도 명시를 해둘 필요가 있다.

감영 내 외행랑 ⓒ소셜포커스
감영 내 외행랑 ⓒ소셜포커스
감영의 정문 출입구, 내삼문
감영의 정문 출입구에 해당하는 내삼문ⓒ소셜포커스
감영의 내아(내사라고도하며, 관찰사의 관사이다)
감영의 내아. 내사라고도 하며 관찰사의 관사이다.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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