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의 성지, 진주성② - 추모시설과 접근 평등권
호국의 성지, 진주성② - 추모시설과 접근 평등권
  • 조봉현 논설위원
  • 승인 2022.03.2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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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동 불편한 노약자의 이동지원을 위한 전기관람차의 색다른 체험
장애인들에게 성심을 다하는 문화해설사들의 노력, 감동으로 다가와
임진대첩계사순의단, 의기사 등 각종 추모시설, 휠체어 접근성은 모두 0점
장애인은 선열을 기리는데도 차별받아야 하나?
휠체어의 성곽길 접근을 방해하는 단차, 중간의 몇 군데만이라도 열어둘 수는 없을까? ⓒ소셜포커스

휠체어 명소 탐방기 - 호국의 성지, 진주성

진주성은 3개의 문이 있다. 동문(촉석문), 서문, 북문(공북문)이다. 그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문은 공북문이다.

서문은 도로에서 성문까지 고도차가 심하여 가파른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휠체어나 유아차 이용자는 통행이 불가능하다. 촉석문이나 공북문을 이용해야 한다.

공북문(拱北門)은 북문의 공손한 표현이다. 그런데 그 공은 ‘공손할 공(恭)’이 아니라, ‘두 손을 맞잡을 공(拱)’이다. 공(拱)은 두 손을 맞잡아 가슴까지 올려 절한다는 뜻이고, 북(北)은 임금이 있는 한양을 가리킨다. 따라서 공북이란 “충성을 맹세한 신하가 북쪽의 국왕을 향해 공손하게 절을 올린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성의 북문을 특별히 공북문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진주성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화려하고 웅장해 보이는 2층규모의 문루 등 현재의 시설은 2002년에 복원된 것이다.

공북문을 들어와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으니, 먼저 들어온 몇 명의 장애인들이 보였다. 그들은 그곳에 비치된 관람차를 이용하기 위해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었다.

진주시는 작년 8월에 보행이 어려운 노약자나 장애인 등의 관람을 지원하기 위해 4,700만원을 들여 전기 카트 2대를 구입했다. 이 관람차는 진주성 관광해설사가 직접 운행하면서 특색있는 해설을 곁들여 보행성 장애인을 대상으로 관람 편의와 더불어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다만, 가파른 언덕과 계단이 많은 진주성의 특성상 그 역할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다.

관람차 이용문제로 장애인들과 이용시간 등을 협의하는 과정을 본의 아니게 듣게 된 문화해설사분(이형주)의 답변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 그런 문제는 걱정 마십시오. 장애인분들을 모시고 이 키트를 운행하는 것은 저의 가장 큰 보람입니다. 시간초과로 점심시간에 걸려서 제가 점심을 한시간 미루더라도 괜찮습니다. 장애인들에게 봉사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나서겠습니다.”

필자에게 배정된 문화해설사분(송미자)도 오랜 시간을 걸어서 함께 이동하면서 한사람을 위한 안내와 설명에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단순 구경이 아닌 취재목적의 필자를 만난 그 해설사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힘들었겠지만 시종일관 성심을 다했다.

원래 이곳의 문화해설사들은 매시 정각에 방문객을 모아 일괄하여 인솔하면서 1시간씩 해설에 임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그런데 장애인에게는 그러한 원칙을 초월하여 보다 적극적인 배려와 정성을 보인 것이다.

북공문의 모습과 이동약자를 위한 관람차(사진=진주성 관리사무소 제공)

정문에서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진주대첩의 영웅 김시민 장군의 동상이 있고, 바로 이어서 우측 언덕길 위로 멀리에 2층 누각 건물이 보인다. ’영남포정사 문루(嶺南布政司 門樓)‘다. 조선시대 진주에는 경상우도의 육군사령관 격인 병마절도사(보통 ’경상우병사‘라 했음)의 관아가 있었다. 그 건물은 관아로 들어가는 정문이다.

1895년 갑오경장 이후 1896년에 병마절도사 제도가 폐지되었다. 그리고 전국의 8도중 중부지방(경기·강원·황해도)을 제외한 각도를 남북으로 나누는 지방조직 개편도 있었다. 그때 개편된 도제는 현재에도 광역지자체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때 분리된 경상남도는 진주를 도청소재지로 하였다. 병마절도사의 관아는 새로 신설한 경상남도 관찰사의 관아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1925년 부산으로 도청이 이전할 때까지 경남의 도청의 정문으로 사용되면서 ’영남포정사‘로 불리운 것이다.

문루 앞에는 당시의 여느 관아처럼 수령 이하의 사람은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오라는 뜻의 ‘하마비’가 있다. 누각 건물 앞에는 당시 정문을 지키던 포졸들의 모습을 한 조형물이 늘어서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일반 탐방로에서 “영남포정사문루”에 이르는 길은 언덕이 심한 데다가 노면은 요철이 심한 판석이 깔려 있다. 휠체어나 유아차 등은 접근이 매우 불편한 구조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멀리서 외곽의 모습만 바라보다 돌아서야 한다.

관광지나 공원 등에서 요철구조의 노면은 빨리 사라져야 할 공법이다. 노면을 판석으로 시공하더라도  요철이 발생하지 안도록 해야 한다. 진주성 안에서도 박물관으로 가는 일부의 통로는 좋은 본보기이다. 

영남포정사 문루로 가기 위해서는 가파른 경사와 요철이 발생하는 노면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휠체어는 접근을 포기하게 된다. ⓒ소셜포커스
같은 판석으로 시공하였으나 요철이 많은 노면과 그렇지 않은 노면 ⓒ소셜포커스

공북문에서 정면으로 150m를 이동하면 진주성 남쪽 성곽을 따라 탐방로는 좌우로 갈라진다. 진주성 남쪽 성곽은 남강을 해자삼아 강변을 끼고 쭉 이어진다. 창칼로 싸우던 시대에서는 군사 요새가 들어서기 딱 좋은 조건이다. 그래서 경상우도의 최고 병영이 있었고, 임진왜란 때는 진주대첩을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2차 전투에서는 백성들의 참혹한 희생이 있었지만, 왜군으로서는 6천도 안되는 병력이 지키는 진주성 하나를 점령하는데 10만의 전 병력을 동원해야 했다.

강변을 따라 길게 형성된 성곽은 일반 탐방로와 성곽 탐방로가 나란히 이어진다. 그리고 그 사이로 5~10cm 정도의 단차가 경계를 이루고 있다. 그 단차는 휠체어 이용자와 자유보행자의 통로를 구분해버린다. 휠체어 이용자는 성곽에 근접한 성 밖의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일반 탐방로와 성곽 탐방로 사이의 평행선을 가르는 반 뼘 정도에 불과한 단차가 휠체어 이용자의 접근을 제한한다. 그 단차를 모두 허물어 달라는 것은 아니다. 중간중간 몇 군데만이라도 평행선 사이의 단차를 없애고 휠체어 통로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탐방로를 좌회전하여 조금 이동하면 촉석루가 나온다. 촉석루는 진주성의 상징이다. 남강을 내려다보며 위엄있게 우뚝 서있는 촉석루는 남원 광한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꼽힌다. 그만큼 경치도 아름답다.

촉석루는 동문(촉석문)에서 불과 50m 거리로서 지금의 진주성에서는 촉석루가 동쪽으로 치우쳐 있다. 그러나 과거 외성을 포함한 구조에서는 가장 중심에 있었을 것이다.

촉석루는 담장으로 둘러쌓여 있고 들어가는 대문이 있다. 대문 건물을 떠받치고 기단은 한 뼘정도의 단차가 있어 휠체어가 바로 진입하기는 어렵다. 기단 한쪽에는 휠체어 출입용 경사로가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그게 휠체어가 통행하기에는 매우 위험한 구조라는 것이다. 경사 각도가 법정 기준을 훨씬 초과할 뿐만 아니라, 폭이 너무 좁은 데다 양쪽으로 휠체어 추락방지턱이 없다. 자칫하면 휠체어가 전복할 우려가 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한 기준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 법정 각도는 1/12 이하가 원칙이다 높이가 10cm일때 밑면의 길이는 1.2m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1/8까지 허용된다. 그러나 그곳은 기준을 현저히 초과한다. 법정 기준을 무시한 편의시설은 때로 위험시설이 될 수도 있다.

촉석루로 들어가는 출입문에 설치된 휠체어용 경사로는 법정각도를 현저히 초과하고 폭이 좁아서 위험한 구조다. ⓒ소셜포커스

촉석루 건물 뒷길 위로 넓은 광장이 있다. 촉석광장이다.

광장 한쪽으로 “임진대첩계사순의단”이라는 커다란 추모시설이 있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임진년의 진주대첩과 이듬해 계사년 2차 진주성 전투에서 10만의 왜군에 맞서 싸우다가 함께 순절한 관군과 의병 및 7만여 백성들의 충혼을 기리기 위한 제단이다.

1987년 문화재 관리국에서 건립하였으며, 2차 진주성 전투가 끝난 매년 음력 6월 29일에 이 단에서 제향을 하고 있다.

제단시설에 접근하면 순국한 선열들의 위대한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여러 가지 기록을 보면서 호국의 정신을 새겨볼 수 있다. 단의 좌우 측면에는 돋을새김으로 당시의 치열한 전투와 순절현장, 그리고 논개가 적장 안고 강물로 뛰어드는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새겨져 있다.

촉석루가 관광지 차원에서 진주성의 핵심이라면 이 순의단은 호국의 성지로서 핵심시설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휠체어나 유아차 이용자 등 이동약자가 접근할 수 있는 통로는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이동약자들에게는 차별시설이 아닐 수 없다. 장애인은 순국선열을 기리는데도 이렇게 차별을 받아야 하는가? 진주성 안에는 순의단 외에도 충무공 김시민 장군 등 39명의 신위를 모신 창렬사, 논개의 충절을 기리는 의기사,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승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호국사 등 추모시설이 많다. 그러나 한결같이 휠체어는 접근이 불가능하다. 일부는 지형의 고도차 및 문화재 등의 이유로 부득이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생각을 바꾸고 대안을 찾아보면 개선방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임진대첩계사순의단의 모습과 단위의 조형물들, 이동약자가 제단으로 접근할 수 있는 통로는 없다.(상단사진=진주성관리사무소 제공)

진주성에는 이번과 전회에 소개한 유적과 시설 외에도 구경할 곳이 무수히 많다. 더불어 개선이 필요한 문제점도 자주 눈에 띄었다. 나머지 문제점은 사진자료와 그 설명으로 대신한다.

필자는 진주성을 나와서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휠체어를 타고 시가지를 한참이나 헤매야 했다. 음식점은 많았지만 문턱없는 식당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진주시는 오래 전부터 무장애도시 건설을 선포하고 공공시설물의 무장애(Barrier Free) 의무화 및 음식점 등 다중이용시설의 문턱 없애기 운동 등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소의 성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운동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보다 진정한 노력이 아쉽다. 진주시의 공공시설부터 점검과 개선이 필요한 것 같다. 진주시는 좀 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공원의 많은 통행로가 계단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이동약자의 통행이 곤란한 실정이다. ⓒ소셜포커스
각종 유적과 시설물은 계단진입로가 많아 이동약자의 이용이 어렵다
각종 유적과 시설물은 계단진입로가 많아 이동약자의 접근이 어렵다.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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